짝짝짝
스타필드 내 토이킹덤
"정원아 일단 머릿속에 생각하고 다시 오자 응?
정원아 지금은 가고~~?
엄마 저기서 기다리는데?
엄마 보러 갈까?
엄마가 정원이 언제 오나 하고 있대.
그거 그거 아빠가 응, 다음에 꼭 사줄게.
지금은 일단 가자.
갈래?
갈까?"
정원아...
아이는 쭈그려 앉아 장난감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콩순이 섹션에서 꺼내든 화려한 박스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울룩불룩한 투명 비닐 커버에 빛이 반사되는 게 거슬리는지
이리저리 돌려가며 보고 있다.
귓등으로 쏟아지는 아빠의 애걸복걸에 음소거 버튼이라도 눌린 듯하다.
그런 아이의 뒤통수에 대고
최대한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며 상냥하게 얘기하는 아빠의 두 다리가
마치 소변 마려운 듯 들썩들썩하고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초등학생 남아들을 타겟으로 하는 섹션이 나온다.
조립도 어렵고 조작도 쉽지 않아 보이는 자석팽이 섹션,
"이거 재밌겠다 그치?
이렇게 여기 지나갔다가 터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수 있네?
아빠가 따로 사줄게.
어, 이거 지금.. 보자. 쿠팡에는 없고 일단...
뭐, 이거? 이것도 괜찮네.
이걸로 할래?"
열한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
투명한 안경테가 인상적이었는데
아이 뒤에 서서 다정하게 쇼핑을 독려하는 아빠도
같은 투명 안경테의 안경을 썼다.
핸드폰을 두 손으로 들고 있다가
아이의 반응이 심드렁하자 카톡을 열어
“두찬이 계속 고민 중”이라고 쓰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캘리클럽 키즈카페
2층에서 타면 1층까지 내려가는 투명 슬라이드가 있는 곳.
미끄럼틀이 꽈배기처럼 꼬아져 있고 경사도 제법 급해서
나는 절대로 같이 타준 적 없는 난이도 높은 기구다.
이미 2년 전에
엄마가 같이 타주지 않자 몇 번 갈등하다가
결국 혼자 타는 법을 터득한 태은이는
"엄마, 밑에서 만나!" 하고는
엎드려서 팔을 쭉 펴고 날아가는 자세로 쌩하니 내려가버렸다.
'어휴, 저 극성..'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려가려는데
"야, 동생 정말 용감하다 그치?
아이구 쟤는 이야… 거꾸로 타네.. 응?
우리도? 타고 싶어? 이거?
... 그래 타자."
딱 봐도 순해 보이는 내 또래의 남성,
7살 즈음되어 보이는 아이와 함께 온 아빠가
같이 타자는 아이의 성화에 끄응 소리를 내며 몸을 구겨
좁은 미끄럼틀의 입구에 간신히 앉았다.
"이거.. 어른이 타시면 속도 엄청 빠를 텐데요.."
평일에 휴가라도 냈는지 아이와 단 둘이 키즈카페에 온 것만으로 갸륵하다 생각하던 차에
기어이 아이와 함께 슬라이드를 타려는 모습에 나는 안쓰러운 마음마저 들어
괜한 참견을 한 마디 던졌다.
"그렇더라고요.. 지난번에 한 번 타봤는데… 하하"
아, 타보셨구나.. 그렇다면야.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7살 아이와 아빠, 도합 100 킬로그램은 되어 보이는 조합이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투명한 슬라이드 통 속을 가른다.
"아악! 으아아악! 아 따거따거! 아따거!"
'아.. 정전기 엄청 세게 왔겠다...'
롯데 아웃렛, 휘게 문고
평일 저녁이라 한산하다.
나는 서점 특유의 냄새를 실컷 킁킁대면서
토미카를 십 수분 째 구경 중인 태은이를 너그럽게 기다리며
소파에 앉아있었다.
이른 퇴근을 한 아빠들이
태은이 또래만 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삼삼오오 드문드문 흩어져있다.
서점 내 장난감 코너는
일반 장난감 가게 보다
왠지 모를 차분함이 있어서 좋다.
압도적인 물량과 휘황찬란한 그래픽도 없고
간간히 책 읽는 사람들이 항상 앉아있어서
아이들도 알아서 조용조용해지는 곳.
묵직하게 깔린 서점 카펫도 한몫하는데
잡담한 백색소음은 깔끔하게 먹어주고
발소리도 먹먹하니 포근해지는,
하루 종일 있어도 은은하게 평화로운 곳.
"아빠!"
벨벳 같은 공기에 누가 찬물을 끼얹듯 날카로운 외마디에 돌아보니
네 살 즈음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우직하게 멈춰 서서
아빠를 불러 세우곤 올려다보며 씩씩대고 있다.
지퍼 열린 두꺼운 패딩이 어깨 뒤로 흘러내려
양팔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아빠아!"
다시 한번.
대엿 걸음쯤 떨어져 있던 아빠가
단숨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아이 앞으로 가
허리를 굽혀 아이와 눈을 맞춘다.
"왜?"
"아니이."
"왜? 뭐?"
"아, 아빠아!"
부르게 만든 것도 서운한데
기껏 불렀더니 왜 내 맘을 도대체 몰라주냐는 듯
묘한 원망 섞인 아이의 목소리,
왜 불렀는지 절대 말하고 싶지 않다.
황당한 아빠의 동공이 열렸고
누가 실을 꿰어 잡아당긴 듯 입도 아 벌어졌다.
'쟤, 응가 마려운가 보다..!'
하는데 이미 다음 순간,
"아아니 나 응가 마렵다고오!"
아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빠는 아이의 흘러내린 패딩을 포대기처럼 감싸 안고
그대로 보쌈하듯 왼 팔에 들쳐 안더니
자동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야, 너 아까 괜찮다며! 어? 응가 안 마렵다며!"
키가 큰 아빠가 겅중겅중 뛰자
아이의 긴 머리카락이 풀썩인다.
엉덩이를 쭉 빼고 아빠 어깨에 매달려가는 아이의 얼굴,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다물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
몰래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