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언어는 시가 되고

나를 키워내는 시집이 되고

by FONDOF

가슴 철렁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내뱉는

그야말로 희귀한 시간 속,

사라질세라 잡아두고 싶었던

다급하고 애틋한 기록들.







27개월

한창 손가락에 빠져있을 때였다.

손가락으로 개수도 세고,

어딘가를 가리키기도 하고,

각각 의미도 있다는 걸 알아가며

손가락 갖고 쫑알대던 일상

… 엄지! 이거는! … 최고오! 할 때 쓰는 거야아
(검지를 만지작거리며) … 이거능..!
(근엄한 얼굴로) 마지막이야아! 할 때
쓰는 거야아..



30개월

아이가 크면서 저지르는 크고 작은 잘못들

을 대하면서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다, 그리고

정답도 없다.

우리 부부는 그 와중에 찾은 해답으로

[반드시 사과하는 것]을 지키기로 했다.

앵무새같이 말만 반복한대도,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어본 횟수만큼

사과하는 행동에 떳떳해질 수 있는 거라 믿으며.

그리고 어느 날,

그날도 으레 아이가 할법한 잘못을 훈육하고

혼자 생각하며 반성하고 있어 보라 하니

조금 지나 아이가 내게 다가와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미안해!
... 아까부터 미안했어!



31개월

산책 나온 저녁길,

단지 내에서 엄마!! 소리치고는

메아리치는 걸 듣고는 놀라더니

고개를 사방팔방으로 빠르게 돌리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는다.

자신이 내지른 소리가 되돌아온 것에 휘둥그레 한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와 남편은 웃느라 정신없는 사이,

다시 한번 "엄마?!!!" 큰 소리를 질러보더니

갑자기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 구름에서 태은이 소리가 났다!




39개월

아침,

열에 아홉은 웃으며 일어나는 아이가

웬일인지 쨍그린 얼굴로 눈을 떴다.

안 좋은 꿈이라도 꾼 걸까, 물어보니

경찰아저씨랑 소방차랑 잔뜩 나오는 신나는 꿈이었던 모양.

꿈이 끝나버렸다니... 더 꾸고 싶은데!


엄마 꿈 어떻게 다시 꿔?
어떻게 또 꿀 수 있는 거야?



39개월_2

외할머니 집에 가면 늘 반질반질한 백란이

예닐곱 개씩 삶아져 예쁜 보울에 담겨 식탁에 놓여있다.

끈끈한 손끝에 온 집중을 모아 껍질을 까는 맛을 알아버린 아이가

할아버지께, 할머니께 "드세요!" 하며 기세등등 내밀면

짭조름하고 꼬질꼬질한 계란을 받아 맛있게 잡숫는다.

그 모습에 아이도 "히야아" 신이 나서 끝도 없이 까는 반복,

그러다 계란 하나를 식탁에 팍 쳐내리더니

어, 계얀이 거미줄처럼 깨졌다!



40개월

장도 볼 겸 간단히 마트에나 갈까 싶어 나가기로 한 저녁,

뭘 입을까 보다가 매일 입는 옷도 지겨워서 오랜만에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검정에 자잘 자잘한 꽃이 수놓아져 있는 옷을 입고 나가자

"엄마 이쁘다! 공주 같아 예쁜 꽃도 있고!"

라며 냅다 찬사를 퍼붓는 아이.

"태은이 어쩜 그렇게 말을 해? 우리 아들 천사야~"

나도 평소 잘 안하는 '천사'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어쩌면 아이는 정말로 천사인가보다,

내 감탄에 가만히 나를 안아주며 하는 말에

그런 확신이 들었다.


엄마가 사랑이야.
엄마, 엄마가 행복이야



40개월_2

낮잠 들기 전 루틴 같은,

어떻게든 조금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를 재우기 위해

나는 늘 자는 척을 한다.

가볍게 코 고는 소리까지 섞어 가면서.

잠든(척 하는) 나를 아이가 빤히 쳐다본다, 는 게 느껴진다.)

코가 맞닿을 정도로 바짝 얼굴을 가까이 갖다대서

아이의 달큰한 숨결이 간질간질,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다.

그 때 갑자기 따뜻퐁신한 양손으로 내 볼을 감싸더니

혼잣말로 소곤소곤,

감탄하듯


히 엄마 진쨔 이쁘다
귀여워.. 귀엽다 엄마 진짜 귀여워..






#끝도없다

#너의어록

#끝도없이널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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