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30개월
식습관 교육 기간,
흔히들 말하는 [밥태기]가 왔다.
잘 먹던 밥을 거부하고
식사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하이체어를 오르락내리락 산만해진다.
숟갈로 잘만 푸던 밥을 손으로 한 움큼 집더니
그대로 촉감놀이를 시전 하질 않나..
오랜만에 팬트리 깊숙한 곳에서 [횟집비닐]을 다시 꺼내 깔고 만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퇴행과는 다른 행동이다.
퇴행은커녕 [진화]라고 해야 옳다.
그래,
[영악]해진 작은 인간이다.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하면 안 되는 것도
점점 많아지는 중인 탓이다.
식사 따위에 집중할 수 있을 리가.
파이리가 리자드로 진화하듯
이 즈음의 아이들도 무언가로 진화한다.
세상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소화력이
폭발적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이 작은 인간에게는 제법 많은 데이터가 쌓였다.
'밥 좀 안 먹고 딴짓해도 결국 엄마가 다 입에 넣어주더라, 뭐'
'밥보다 과자가 좋은데.. 밥 안 먹으면 과자 주겠지?'
이를테면 이 녀석에겐 딱히 [아쉬움]이랄게 없다.
신생아 시절, 밥때가 조금만 늦어도 울던 모습이 내게는 선한데!
'기껏 배 좀 고픈 거 가지고 저렇게까지 울다니.. '
'배가 고픈 느낌이 신생아에게는 생존을 좌우하는 공포인 걸까?'
배고픔에 우는 아이를 보며 나는
이 공포를 다시는 느끼게 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나를 훈련시켜 왔다.
그리고 아이는 성장하며
볼거리, 놀거리, 폭발하는 자극과 호기심에
배고픔 따위 쉽게 잊고 마는 내공이 쌓였고
나는 여전히 잘 훈련된 병사처럼
허기의 공포로부터 아이를 지켜내야 한다는,
해묵은 관성에 싸여있었다.
두 주먹 꼭 쥐고 으앙 울며 벌린 입에
젖병 물려주면 뚝 그치고 허겁지겁 빨아대던
신생아 시절 생각 못하는 30개월 작은 인간.
나는 어쩌면 이렇게
단순한 명제 앞에
홀로 복잡했을까.
섬광 같은 깨달음을 얻고
나는 이제 밥태기 따위 날려버릴 자신이 충만해졌다.
[식사는 제 때에, 제대로 하는 것]이라는 원칙 하나를 세우고
잘 지켜지지 않으면 미련 없이 식사를 끝냈다.
이러면 아이는 배고픔을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이런 에피소드를 맞닥뜨린다:
"엄마~ 우유 주세요.."
기다렸던 반응이다,
드디어 배가 고프군.
"... 배고파?"
"응!"
"(훗)그럼 밥 먹자."
밥이 제일 중요해, 우유는 그다음이야.
나는 기다려온 회심의 일격을 날린다.
"아니이~ 우유우~"
아이가 아무리 애처롭고 귀엽게(!) 애원해도
"우유는 자기 전에 먹는 거지.(단호)"
나는 흔들리지 않아,
원칙을 지켜내고 말겠어!
"(침대로 올라가며) 엄마 쪼꼼만 더 잘게요! 불도 끄고 문도 닫고!"
#자기전에먹는거라면 #지금자면되겠다
#영악한작은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