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한 줄 알았던 뻔뻔함

by FONDOF

2024년 12월, 35개월







분명 별것도 아니었을 텐데

그 별것 아닌 걸로 잠들기 전 남편과 작은 갈등이 있었다.

돌아보니 역시 그랬다,

그날 밤,

뭐 때문에 갈등이 일었던 건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 걸 보니.


모든 갈등은 아주 별것 아닌 걸로부터 시작하므로

별것 아닌 것을 가볍게 여길 일은 아니다.

사실은 너무나 [별것]인 거다.

그리고 그 순간의 갈등 자체는

돌아보건대 [원인]이 아니라 [트리거]의 역할일 뿐.

아마도 이 즈음의 연속된 피로와 잡다한 스트레스 등이 쌓여

한계치에 다 달았던 것 같다.



아침이 되어 남편은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벌써 출근을 해버렸고

나는 전 날 밤의 무거운 기분에 매몰된 채 하루를 시작했다.

천일도 넘게 시작한 아이와의 일상이 그날따라 어려웠다.

아, 내 역치가 이만큼이나 내려와 있구나 정도로 인지했다.

하필 아이도 코감기로 컨디션이 좋지 않다.

아슬아슬.



이사오기 전 집 근처에

아이가 아주 어릴 적부터 다녀온 이비인후과가 있다.

네이버지도에서 [영업 중]이라 뜨는 것까지 확인하고

바로 네비를 찍고 20분 거리를 달려갔으나

굳게 닫힌 유리문에 붙어있는 A4용지, 그리고 뭐라 뭐라 손글씨.

내용을 읽기도 전부터 짜증이 확 났다.

'연말휴가로 며칠 닫을 거면 공지라도 해놓지 않고.'

늘 웃는 얼굴로 아이를 대해 주시는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속으로,

째려보았다.


"엄마, 왜 안 들어가? 공뇽선생님이 사탕 주시는데!"

선생님의 청진기에는 공룡인형을 달려있다.

그리고 진료를 잘 견뎌낸 아이에게 꼭 잊지 않고 막대사탕을 주신다.

나이 사십이 넘도록 나에게 이비인후과는 너무 무섭고 불편한 곳인데

아이에게는 이비인후과가 그저 설레는 기대로 가득 찬 곳이다.

병원을 나설 때면 항상 "엄마, 공뇽선생님 보러 또 오자?!" 약속까지 하는.


'그래서 굳이 굳이 여기까지 온 건데..'

이미 예열이 되어있던 마음속에서

모를 원망과 화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응, 선생님이 어디 가셨대. 그래서 다른 데 가야겠다."


순간 아이의 얼굴에 서운함과 불안감이 일렁였다.

"엄마, 다른 선생님도 사탕 주실까?"

울먹거림을 참으며 아이가 물어온다.

"하 몰라.. 일단 카시트에 좀 앉자."

아이를 태우는 내 손길이 불친절하다.


아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아이에게 화가 난 것도 아닌데

아이를 이렇게밖에 대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어서

아이의 눈을 보지 못하고 벨트를 딸깍, 채웠다.


이런 때를 대비하여 혹시나 하고 저장해 뒀던

집 근처 이비인후과를 네비에 찍어본다.

예상소요시간 25분.

길바닥에서 버리는 시간을 생각하려니 또 울화가 치밀었지만

코가 찡찡한 아이를 보며 주저 없이 다시 액셀을 밟았다.


이비인후과는 대로변에 위치한 큰 건물 4층인데

도무지 주차장이 어디인지 보이질 않는다.

초행길에 네비가 가라는 대로 골목골목 들어갔다가

'아닌데..' 하며 돌아 나오니 다시 큰길.

왔던 길을 되돌아가 유턴을 하고 다시 골목을 들어가 봐도

도대체 주차장 입구는 보이질 않는다.

네비의 파란 선이 골목만 들어가면 빙글빙글 어지럽게 돌며

로딩하느라 멈췄다가 다시 작동되면 이미 지점을 벗어난 상태.


'와.. 이젠 네비까지..'

나는 애꿎은 네비화면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로

화를 참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일단 골목으로 다시 들어가

적당한 곳에 잠깐 멈춰서 핸드폰 네비까지 켜고 확인하려는데...


내가 간과한,

아이도 오래 참고 있었단 사실.

코가 막혀 숨쉬기도 불편한 채로 카시트에 앉아 1시간가량을

별 짜증 없이 잘 있어줬던 거였다.

힘들다 소리도 않고 그냥

아이도 충분히 궁금했을법한 것들을 물어보고 있었을 뿐인데

나는 그 질문들에 답해줄, 요만큼의 공간도 없었던 거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고 나서야 알아지는 것,

당시의 나의 빨간 수은은 수직상승 중이었다.



"엄마, 언제 도착해?"

"엄마, 왜 계속 돌기만 하는 거야?"

"엄마.. 그런데 공뇽선생님은 언제 오신대?"

무자비하게 날아드는 잽처럼 아이의 질문이 뒤통수를 친다.

나는 최선을 다해 아이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려 애쓰며

주차장의 입구를 확대시켜 확인했다.

.

.

.

"엄마아! 왜 대답을 안 해? 왜 대답을 안 하냐고!"



그리고 그 소리에

결국 폭발해 버렸다.




“대답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잖아!

할 수 있는데 안 하니? 좀 기다려!”


너무 큰 소리에 나도 놀랄 정도였다.

목이 살짝 긁히는 느낌이 들 정도의 큰 목소리로 고래고래,

누군가에게 이 정도로 큰 소리를 지른 적이 있던가.


“엄마가 이렇게 소리 지르니까 어때? 기분 안 좋지?

너는 매일매일 엄마한테 소리 지르잖아! 엄마 기분 어떨 거 같아?!”


너무너무 그만하고 싶었는데

한번 내질러버린 발광에 관성이 붙었는지

모질고 못난 말들이 계속 큰 소리로 뱉어져 나온다.

천둥 같은 화에 아이가 얼어붙은 게

운전석에서도 느껴졌다.


드디어 찾은 좁은 지하주차장 구불길을 내려가면서

목구멍에 걸린 뜨거운 것들을 간신히 삼켜 소리 지르는 걸 멈췄다.

동시에 온갖 속상함이 밀려와서 눈물이 터져

핸들을 부여잡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아이는 차마 울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주차를 하고 내려서 뒷좌석 문을 열고

아이의 옆자리에 앉았다.

언제 벗어뒀는지 모를 운동화를 양손에 한 짝씩 주워 들어 쥐고

눈치를 살피며

"엄마.. 속상했어?"라고 한다.


아이를 안고 엉엉 울었다.

운동화를 왜 손에 장갑처럼 끼고 있는 건지 너무 알겠어서 더 눈물이 났다.

나도 그런 아이였다.

엄마가 오빠를 혼내고 있거나

잔뜩 어지른 집안을 청소하느라 화가 나있으면

나는 두려웠다.

그래서 살금살금 내 방을 정리하고

반듯하게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척을 했었다.


이렇게 작고 어린애한테 내가

뭘 바라고 무슨 짓을 해버린 건가..

견디기 힘들었다.


벨트를 풀고 아이를 앉아 무릎에 앉히고 마주 안아주었다.

작고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아이가 품에 들어온다.

아이가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이런 순간이 가장 어렵다.

아이에 대한 나의 사랑은 무한정이지만

무작정 사랑'만'을 줄 수는 없다.

내 안에 공존하는 여러 감정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튀어 오르면

나는 그중에서 가장 순하고 유하고 안전한 것들을 선별해서

아이에게 내보인다,

매 순간 그런 애를 쓴다.


하지만 나는 결코 완벽하지 않고 너무나 미숙한 존재다.

그렇기에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온갖 부정적 기운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회오리가

피로와 스트레스, 서운함이나 원망 등의 감정을 먹고

그 덩치가 커지는 때가 한 번씩 온다, 마치 자연재해처럼.


그럴 때는 그냥 별 수가 없다, 그저 맞고 마는 수밖에.

그것이,

내 삶이 그저 나 하나였을 때는 괜찮았다.

타격은 좀 있어도 털고 일어날 맷집도 있었고

황폐해진 자리를 복구할 시간이 필요해도 결국 해내는 내공도 있었다.

'이러고 좀 자빠져 있어도 되지 뭐' 하는 여유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 하나만 살피면 될 일이 아니어서 그게 어렵다.


나의 이 온갖 정당하고 그럴만한 마음 따위,

아이라는 존재 앞에서는 정말 쨉도 안 되는 것이기에.


내 마음에 떳떳했던 내 감정은

아이 앞에 뻔뻔했던 것이 된다.


나는 이제 [나 하나]만 운운할 처지가 아니란 걸

이런 날, 이런 때에 한 번씩 아프게 깨닫는다.








깜깜한 차 안에서 눈물범벅이 된 내 얼굴을 열심히 살피며

아이는 그제야 같이 운다.

"엄마가 너무너무 미안해.. 정말 미안해.."라고 하니

".. 나도 미안해"라고 한다.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생각보다 금세 분위기가 풀리고

"이제 뭐 먹을 거 줘, 약과 먹고 싶어" 라며 웃는 아이에게

몽쉘통통을 주고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 시간을 온몸으로 두드려 맞았다.

속없이 몽쉘통통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노라니

안심이 되려 하는 뻔뻔함을 누르며,

계속해서 사과하는 것도 이기적인 거 같아 아껴가며..


'다시는 이런 발광 같은 화는 내지 않겠노라'

장담할 수 없기에 더욱 무거운 마음으로 다짐하며



미안하다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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