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1편] 이제 고작 엄마 나이 네 살입니다.

Part 1_믿음이 무너지던 날

by FONDOF

2025년 11월, 46개월








46개월 연우와 엄마 경희

42개월 유하와 엄마 혜미

40개월 채아와 엄마 아름

40개월 규민 그리고 7살 규비 남매와 엄마 현아

그리고 46개월 태은이와 엄마 나까지


엄마 다섯에 아이 여섯으로 우리 11명은

북한산 생태탐방원으로 1박 2일간의 가을 여행을 떠났다.

산은 갈빛 플라타너스, 붉은 단풍, 노란 은행잎 온통 가을로 물들어있었고

마른 참나무 이파리, 도토리와 이름 모를 열매들이 깔린 산길은

한 발짝 뗄 때마다 바작바작 기분 좋은 소리가 났다.

코로 깊이 숨을 들이쉬자 찬 공기가 천천히 들어오면서

그리운 겨울냄새가 느껴졌다.


우리는 방 둘 짜리 C생활관을 2개 예약했다.

101호에서는 남매 규비+규민이와

그리고 오기 전날 밤부터 규비언니랑 같이 자고 싶다고 한 채아가 짐을 풀었고

102호에서는 연우 유하 태은이 이렇게 남자애들 셋이 자게 되었다.


도착해서 짐을 풀고 조금 정리를 하는데

카드키로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남자아이 셋은

아직 묶지 않은 팽팽한 풍선이 손을 떠난 모양새로

그야말로 발광하며 날뛰기 시작했다.

게다가 102호에는 2층 침대도 있어서

아이들은 순식간에 침대에 올라가 요새를 만들고 다시 부수고

나무 계단을 위태롭게 오르내린다.

결국 2층 침대방 앞에 의자 2개를 놓고 문을 닫아


"여기는 잠잘 때만 들어가는 곳이야. 위험하니까 들어가지 말자."


못 들어가게 조치를 했다.

아이들은 잠깐 실망했지만 금세 잊고 옆방으로 가더니

두 개의 싱글침대를 벌려놓고 그 사이를 점프하며 뛰어논다.


나랑 혜미랑 경희는 짐정리를 대충 마치고

이 발광의 현장을 말없이 바라보며

아무래도 방 배치를 잘못한 건가 농(진)담하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탐색을 끝낸 아이들이 옆집도 가보고 싶다고 하길래

그래 얼른 가라, 신발만 신겨가지고 옆집 벨을 눌러주었다.


남자아이 엄마 셋이 신나서

보냈다! 보냈다! 잘했다! 잘했다! 수요 없는 아이들 방문을 공급했다!

신이 나서 얼른 컵라면을 세 개 꺼내어 뜨거운 물을 부었다.

이것만 먹고 얼른 가봐야지 하는 생각이긴 했지만


야 그냥 우리끼리 도망갈까? 이대로 빨리 차 타고 어디 부산이라도 갈까? 전화기 다 끄고?

이런 얘기를 하면서 낄낄대며 컵라면을 먹었다.

서른 중반, 마흔 중반에 만난 인연들이지만

만났다 하면 아이들 못지않게 엄마들도 해맑아진다.


바닥 난방이 뜨끈하게 엉덩이를 지져주고 컵라면 한 젓가락 입에 물자

열어놓은 베란다 문으로 차가운 공기가 묵직하게 들어와 깔린다.

아이들 비명 소리에 먹먹하던 귀도 비로소 숨을 쉰다.


아, 너무 좋다!






갑자기 101호에서


안돼! 안돼! 혜미언니! 언니 빨리 와봐!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고 또 무슨 일이 났구나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현관문을 열어

바로 맞은편으로 5미터 남짓 달려가는 와중에


유하야 하지 마! 하지 마!

채아엄마 아름이의 다급한 목소리,

들어가 보니 유하는 바닥에 앉아서 엉엉 울고 있고

그 옆에서 태은이가 멀뚱멀뚱 앉아있다가

나를 보자마자 "엄마 미안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유하와 태은이를 둘러싸듯

규비와 규민이가 엄마 현아 옆에 서있었고

아름이도 채아를 안고 자초지종을 얘기해주고 있다.

대충 듣기로 유하가 태은이를 마구 때려서 말리던 차였던 거 같다.


정신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태은이 앞으로 가 반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속을 알 수 없는 멀뚱멀뚱,

아무리 봐도 속상하거나 억울해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유하의 울음이 분에 가득 차 보인다.

벌게진 얼굴로 크게 울면서 태은이 때릴 거야!

라고 연신 분에 겨운 소리를 지른다.

혜미는 그런 유하를 엄하게 쳐다보며 무릎에 앉혔고

나는 태은이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


벽을 등지고 앉아 태은이를 보며

다시 차분하게 물어봤다, 무슨 일이냐고.


어, 내가 갖고 놀고 있던 자동차를..
규민이가 가져온 자동차?
응, 그거 내가 먼저 갖고 놀고 있었는데 유하가 와서 뺏어갔어!
그래서 태은이가 어떻게 했어?
다시 가져왔어, 그래서 유하가 나를 이렇게 때렸어!
그랬어? 어디 맞았어?
어, 여기 팔이랑 또 머리! 유하가 손바닥으로 이렇게 이렇게 때렸어!


'그래서 그런 일이 있었구나..'

일단 아이를 안아주고 아팠냐고 물어보니까 뭐 별로 아프진 않았어!라고 한다.

'그래 그랬구나 놀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긴 하지..'




사실 며칠이 지난 지금에 와서 돌아보건대

나는 태은이가 유하를 때린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아니, 태은이가 때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

.

.

아니, 태은이가 때렸을 리는 없을 거라고,

처음부터 그렇게 믿고 있었던 거 같다.




괜찮지? 이제 나가보자.






아이 손을 잡고 거실로 나왔는데

혜미가 무릎에 앉아있던 유하의 손을 들어서 보여주며

이거.. 왜 그런 거야?

라고 한다.


유하의 작은 손등에 새끼손톱 크기만 하게 빨갛게

물린 자국이 있었다.

나는 즉각적으로 태은이의 양쪽 어깨를 잡고 물었다.


저거 니가 물은 거야? 니가 유하 물었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응!

이라고 대답했다.


웃고 있었다.

마치 콧구멍을 파다가 걸렸을 때처럼

조금은 민망한 듯,

재미있는 장난을 하다 걸리기라도 한 듯.



바로 지난주에 유하가 태은이의 등을 물었을 때

태은이의 등에 물린 빨간 자국을 봤을 때는

내 마음이 생고기 같았고 누가 그걸 무딘 칼로 억지로 짓이기는 것 같은

가슴 철렁한 욱신한 아픔이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

태은이가 유하를 물었다고 인정하는 순간에는

내 안에 무언가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무언가 중요하고 견고한 것이 툭,

끊어지는 기분.


엄마! 내가 유하를 깨물었어!

빙글거리며 두 손을 모으고 미안해!라고 하는 아이를 보자

참기 어려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태은이의 손을 세게 눌러 잡고

신발도 신기지 않은 채 맨발로 아이를 끌듯이 나와

102호로 건너갔다.










...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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