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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r 02. 2018

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달

타지에서 자다가 깬다는 것


요즘 계속 새벽에 잠에서 깬다.

원래는 업어가도 모르게 잘 자는 사람인데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치 출근날 엄청나게 늦잠을 자버린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보는데, 오늘 새벽은 마치 누군가가 내 창문 앞에 등불을 달아놓은 것처럼 환히 빛나고 있었다. 

우리 집은 꽤 높은 4층이라 가로등이 저 위치에 보일 리는 없었다.

졸린 눈을 억지로 뜨며 고개를 기울여 자세히 바라다보았다.

달이었다.

환하게 둥근달이 마치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커다랗게 내 창문 밖에 떠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잠결에도 손을 더듬어 아이폰을 찾아내고는 졸음을 이겨내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도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예쁘다', '예쁘다' 생각하며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생각해보니 잠에서 깼을 때의 기분도 한국에서와 독일에서의 느낌이 다른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자다가 깨면 지금이 몇 시인지 확인을 한 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다시 잠이 들곤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자다가 깨면 내가 지금 다른 세상에 와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화들짝 놀란다. 

굉장히 불안정한 감정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쓴다. 

그러고 보니 무의식 중에 긴장이 몸에 베여있는 것 같았다. 

해외에서 홀로 산다는 건 그런 일이다.

내가 잊고 있는 순간마저 내 무의식은 어딘가 편하지가 못하다.

그래도 오늘 새벽은 이렇게 예쁜 달을 볼 수 있어, '자다 깨서 다행이야'라고 기뻐하며 다시 잠들 수 있었다.








'독일이 좋으면 좀 더 있고, 아니면 그냥 돌아가지 뭐'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독일 땅에 와서 참 무사 태평하게 살아온 나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비자가 끝나가고, 임시비자를 받아야 하고, 또 다른 비자를 받아야 하는 일련의 과정을 생각하면, 시작도 하기 전에 신경이 이만저만 쓰이는 게 아니다.

그리고 지나친 스트레스는 내가 그 일을 자꾸 회피하도록 만든다. 

벌써 비자 만료일이 2주도 안 남았다는 사실을 오늘 문득 깨닫고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냥 한국으로 바로 돌아갈걸 그랬나 싶다가도, 작년의 함부르크의 여름 나날들이 너무 좋았기에 다시 한번 그 시간을 느끼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1년이 다돼가도록 독일어를 전혀 할 수 없는 부끄러움도 한몫했겠다. 

거기다 비자 기간이 거의 다 돼서야 시작한 작은 내 사업을 위해서라도 이 곳에 더 있고 싶었다.

처음으로 스스로 시작해서 실패든 성공이든 작은 결과가 눈 앞에 놓인 나의 일이었다. 

내 사업을 한다는 게 이런 기분인 건가,라고 어렴풋한 감정들을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니 생활도, 일도 모두가 불안정한 것들 뿐이었다.

내 성격이 더 예민해서 그 불안을 증폭시키는 것이겠지만, 잔뜩 예민해진 나는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지도 않고 점점 외골수 성향이 짙어지고 있다. 

그래도 행복의 정도를 굳이 측정해볼 수 있다면, 회사를 다니던 때보다 훨씬 행복하다.

참 아이러니한 삶이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얻은 경험들이 지금 내 사업에 분명한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또 감사하기도 하다. 






오랜만에 헬스장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늘도 둥그렇게 달이 떠있다.

마음속으로 작게 속삭여본다.






오늘도 올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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