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떠나 지지 않았다
독일에 와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 “언제부터 여기 살았어요?”다.
대부분은 그냥 짧게 “2017년부터요”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내 인생의 타임라인을 따라가 보면, 그 무렵은 내가 딱 서른이 되던 해였다. 그러니까 여자 나이 서른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 훌쩍 독일로 건너온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다음으로 묻는다.
“여러 나라 중 왜 독일을 선택했어요?”
사실 독일은 내 계획에 없던 나라였다. 여행조차 와 본 적이 없었다. 독일 땅을 밟게 된 계기는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가 독일계 기업의 한국 지사라 업무 차 여러 번 독일 출장을 다니게 되면서부터였다. 회사를 다닌 지 일 년쯤 지났을까, 나는 서른을 앞두고 있었다. 원래도 생각이 많지만, 이 무렵은 정말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았었다.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는 걸까,
내가 살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결혼을 하기 위해 연애 전선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까,
나는 무엇을 위해 혹은 왜 사는 걸까,
그리고 언제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안정적인 연애를 하게 될까.
이 고민 저 고민이 커질수록 점점 다시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 커져갔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다니고 있던 독일계 회사의 본사로 전근을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사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본사가 인수합병을 한 직후라서 분위기가 어수선하던 때였다. 담당 프로젝트의 성적이 좋으면 본사에 이야기해보겠다고 상사가 말했다. 애매했다. 물론 상사의 말처럼 시도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변화를 겪은 회사라 상사의 말이 진심이라고 해도 회사의 상황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상사의 말만 믿고 기다리기엔 리스크가 너무 큰 상황이었다.
고민하던 중 워킹홀리데이가 번뜩 머리를 스쳤다. 지금은 몇몇 나라로의 워킹홀리데이 비자의 나이제한이 만 34세로 늘었지만, 당시에는 대부분 만 30세가 마지노선이었다. 그리고 내 나이는 아직 기회가 있었다. 그렇게 상사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퇴사를 했다. 일본은 이미 다녀왔기 때문에 제외하고, 독일어를 전혀 못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영어로만 일을 했다) 캐나다, 영국 등의 영어권 국가에 먼저 지원을 했다. 역시나 인기가 많은 영어권은 추첨이나 쿼터 경쟁 등이 있어 심사 통과율이 높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눈을 돌린 게 독일이었다. 독일은 서류만 꼼꼼하게 준비한다면, 심사 통과율은 매우 낮은 편이었다. 돌고 돌아 다시 독일. 그렇게 '독일에서 딱 1년만 살다 오자, 거기서 리프레시하고 돌아오자'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캐럴라인 냅이 쓰고 김명남이 옮긴 '명랑한 은둔자'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장소에 정착하는 것은 특정한 목표와 기준에 따라 인생의 특정한 시기에 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자신에게 알맞은 대학을 고르거나 직업을 선택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라고 여긴다. 먼저 계획을 짜고, 어떤 장소를 고르고, 그다음에 신중한 고려를 거듭하여 집이나 배우자나 자녀 같은 영구적 정착의 장식물들을 제 주변에 배치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 과정이 훨씬 더 무계획적으로, 훨씬 더 우연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졌다. (중략) 의식적으로 그 도시를 자기 삶터로 결정한 게 아니라 그냥 떠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이 공감했는지 모른다.
작가는 보스턴에 살고 있는데, 처음 보스턴에 갈 때만 해도 1년, 길어야 2년 정도 살 생각이었던 것이 11년이 넘었다고 한다. 내가 딱 그랬다. 1년만 살다가 한국으로 가겠지. 아니면 또 다른 도시를 찾아가려나. 그런데 어느새 9년. 떠날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저 오늘 이 순간까지 그냥 독일이 떠나 지지 않았다. 독일이라는 나라에 살게 된 것도, 이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오래 있게 된 것도 사실은 매우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 나는 매우 깊이 공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여기까지 온 과정을 돌아보면, 모든 선택이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작은 인연들이 알음알음 이어진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 시작점은 의외로 일본어였다. 독일과 일본어가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맞다, 직접적으로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나는 늘 지금 내가 독일에 살고 있는 이유를 일본어에서 찾곤 한다.
나는 일본어를 전공했지만, 영어는 전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일본 관련 업무를 맡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일본사업부에서 일을 했다.
그런데 회사에서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 지사로 파견을 보낼 직원을 찾고 있었는데, 그 지사의 주요 파트너사가 일본 기업이었다. 높은 직급의 인력을 보내기엔 부담이 있었고,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원급 인력이 필요했는데 그 자리에 내가 딱 맞았다. 문제는 영어였다.
"노이, 우리랑 같이 미국 가보지 않을래요?"
"전 좋아요. 그런데 미리 말씀 드리지만 전 영어를 못해요... 그래도 괜찮으신가요?"
"괜찮아요. 노이는 일본어만 맡아줘요. 영어는 다른 직원이 맡아줄 거에요."
"네, 좋습니다!"
그렇게 미국행을 결정했다. 그런데 미국으로 떠나기 전, 영어를 맡아주기로 했던 사수가 돌연 미국행을 취소했다. 사유는 결혼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구하려고 했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우리는 결국 그대로 사수 없이 미국으로 갔다. 그렇게 나는 미국 지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라도 영어를 써야 했다. 회의에서 말이 막혀도, 이메일에서 실수를 해도, 그 모든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발버둥 치듯 부딪히다 보니 어느 순간 ‘생존형 영어’가 몸에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익힌 영어 덕분에 독일계 회사의 한국 지사인 회사 B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거기서 여러 차례 독일 본사와 교류하게 되었고, 출장으로 독일을 오가며 나도 모르는 사이 독일과 내적 친밀감이 쌓인 것이다.
돌아보면 모든 게 우연처럼 보인다. 일본어 때문에 미국으로 갔고, 거기서 익힌 영어 덕분에 독일계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들이 결국 나를 독일까지 데려왔다. 언뜻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일본어, 영어, 독일어가 하나의 실처럼 이어져 내 삶을 이끌어온 것이다.
지금은 누가 왜 독일에 왔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그냥 발길이 닿는 대로 와진 것 같아요.
그리고 아직은 떠나고 싶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