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 있다가 온다며
2017년 초 어느 날, 내가 독일로 떠난다는 소식에 당시 부산에서 살고 있던 친구가 KTX를 타고 서울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오래된 친구이다. 작고 누추하기는 해도 마땅히 우리 집에서 재워야 했는데 친구는 벌써 자비로 호텔까지 잡은 뒤였다. 친구의 사정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기에 마음이 더 찡했다. 지금도 한 번 통화를 하면 5시간은 가볍게 넘기는 사이라 그때도 필시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테지만, 내 기억에 가장 또렷하게 남아있는 대화가 있다.
“일 년 금방 가는 거 알면서 뭐 하러 서울까지 왔노. 갔다 와서 또 보면 되지.”
“아니. 내 생각에 니 일 년만 있다 올 것 같지가 않다.”
“먼 소리고. 워홀로 일 년만 받아서 가는 건데. 그리고 내 진짜 일 년만 있다 올 건데?”
“몰라. 왠지 지금 안 보면 오래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왔다 고마 ㅋㅋ”
그리고, 친구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실제로 우리는 저 날 이후로 지금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첫 계획과는 달리 독일에서 계속 지내고 있고, 친구는 그 이후로 몇 년 지나지 않아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정착을 했기 때문이다. 저 때는 친구가 캐나다로 갈지를 모르던 때였다. 사는 게 너무 빠듯해서 여태 서로가 살고 있는 나라를 찾아가지도, 한국으로 들어가는 일정을 맞추지도 못한 채 벌써 9년이 흘렀다. MBTI P인 나와 달리 대문자 J인 이 친구는 이제 전화로 내 영주권 상담을 해주고 있다. "아직도 안 알아보고 뭐했노?" 라는 일침과 함께.
그렇게 나는 모르고 내 친구만 알았던 나의 미래는 현실이 되어 나는 지금 9년째 독일에서 살고 있다.
낯설기만 한 독일은 매일 나를 흔들고, 웃기고, 가끔 울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이 글은 누군가의 성공담도, 완벽한 가이드북도 아니다.
그냥 “외국에서 혼자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고,
때론 웃고, 때론 공감하며 읽어주면 좋겠다.
한국에서 좋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자존감이 낮았던 내가
다 내려놓고 독일에 와서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한,
아니 여전히 회복하는 중인 나의 성장 기록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쩌면,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낯선 땅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작은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