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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남.소 : 내 거 인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

by 와르다


만인의 연인이자 공공재(?)같은 사람. 결혼하고 남편이 그렇게 느껴졌다. 아기를 낳은 뒤부턴 이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주일에 함께 예배 드리고, 식당에서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식사를 하는 성도님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든다.


한국 교회에서 사모는 단순한 목회자의 아내로 머물러 있지 않다. 회사원 A씨의 아내, 정육점 사장님의 아내, 카페 사장님의 아내, 세무사 B씨의 아내. 수많은 누군가의 아내는 그렇게 누군가의 아내로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모는 ‘목회자의 아내’이기보다 ‘사모’로 소개될 때가 많다. 호칭 자체에 이미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거다.


최근 한 회사 대표님께선 “정치인이나 목사 아내는 비슷해. 오랜 기간 고생하는데 나중엔 빛을 봐”라고 하셨다. 정치인에게 내조가 중요하듯 목사에게도 그같은 내조가 뒤에서 묵묵히 감내하는 희생이 중요하단 의미의 말씀이셨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도 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교회 안에선 어떨까?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 가정에서나 사모는 남편 목회자의 사역을 지원하는 지원군으로 역할한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예배 준비를 돕고, 토요일엔 최대한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며, 성도님들께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모, 청년들이나 부서 아이들을 위해 맛있는 밥을 거뜬히 차려낼 수 있는 사모. 이런 사모가 되고 싶었다. 물론 많이 부족했고 여전히 그러하다.


그렇다면 가정에서 사모인 아내는 어떤 대접(?)을 받을까? 공주 대접을 받고 싶어 결혼한 건 아니지만 한 남자의 아내로서 고귀하게 여김 받고 싶지 않은 ‘아내’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한국 교회 현실적으로 부교역자들이 가정에 헌신할 시간 내기 참 쉽지 않다. 명절이나 휴가 기간에도 장례가 생기면 그곳이 어디든 달려 가야 한다. 아내는 번호표 50번 정도 되려나 싶은 순간도 가끔 찾아 온다.


아내가 아기를 낳아도 출산휴가? 사용할 수 없다. 법적으로 10일 의무적으로 남자도 출산휴가를 사용해야 한다. 내년에는 20일로 늘어난다. 이같은 법적 테두리의 ‘예외’로 머무는 삶에 익숙해졌다. 가정보다 교회가 우선이어야 하고, 아내와 자식보다 교회 일을 우선으로 해야 ‘마음에 흡족함’을 느끼시는 몇 몇 성도님들을 경험하고 초보 사모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었다.


속상한 마음에 후회할 걸 알면서도 던지는 남편을 할퀴는 말 혹은 부부싸움의 극단적 결말 정도였다. ‘사랑꾼’ 목사님, ‘애처가’ 목사님이면서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는 목사일 순 없을까? 이건 슈퍼맨만 할 수 있는 걸까? 란 생각이 들 때쯤 어느 정도 ‘포기’가 되었다. 남편이 측은해지기도 했다.


남녀가 하나되어 부부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이 태어나고 이러한 시간들을 거치면서 ‘목회자 가정’도 자라난다. 미숙하고 어리숙한 남편이자 아내의 모습을 조금씩 벗겨내며 성숙해 간다. 이러한 시간들이 목회자 부부에게도 똑같이 필요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누구나 처음은 어려운 법이다.


새벽에 일어나 어린 아기의 맘마를 먹이고 아침 일찍 나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주일’은 예배드리는 날, 쉼이 있는 날 이라기 보단. 전투에 나가는 전사처럼 보내는 하루가 됐다.


중간중간 찾아오는 ‘꿀 맛 같은 휴식’이 없었다면 진작 번아웃 됐을 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섬기는 부서 아이들이 딸 사랑이를 자기 동생처럼 예뻐해줘서 물 마실 시간도, 화장실 다녀올 시간도 번다.


혼자 사랑이를 데리고 식당에 내려가 후다닥 점심을 먹고 자모실로 올라가 사랑이와 두-세 시간 시간을 보내면 오후 4시, 아직 남편 퇴근 시간이 2시간 정도 남았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교회에 사랑이와 단 둘이 장난감을 가지고 여러 놀이를 한다. 남편이 보고 싶다.


남편은 사랑이와 나를 번갈아 보며 고생했다고 말한다. 저녁 7시가 돼야 집에 도착한다. 아침 7시에 출발해 12시간 만에 집에 들어와 앉았다. 집과 교회가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남편과 같이 나가 같이 돌아오는 일정을 선택했다. 나보다도 아직 어린 사랑이가 고될까 마음이 부산하다.


이 시기도 추억으로 회상할 날이 오겠지, 란 생각으로 하루를 보낸다. 교회와 가정, 둘 중에 무얼 선택하라고 누군가 물으면 남편이 ‘가정’이라고 답하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는 못된 사모인 걸까? 이런 질문들이 자주 나를 찾아 온다.


가정보다 교회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목회자 분들이 한 달에 하루 이틀 정도는 조금은 이기적이면 좋겠다. 아내와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어쩌면 모두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그 마음들이 충분히 이해되고 용인받는 분위기의 교회가 되었으면, 이것이 요즘의 기도제목 중 하나이다. 나만을 위해서가 아닌, 한국 교회의 모든 목회자 가정을 위해서, 더 크게는 교회와 가정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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