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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기 Jan 12. 2021

마이클 돕스, '1945'

정말 길고 자세하다. 너무 상세해서 이렇게까지 읽어야 하나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잼나다.  


드레스덴 공습은 얄타회담 이틀 뒤인 2월 13일 저녁에 실시됐다. 영국 공군이 먼저 오후 10시 14분에 도심부를 고폭탄 500톤과 소이탄 375톤으로 융단폭격했다. “엘베강의 피렌체”로 알려진 이 바로크 시대 도시의 심장부가 불길에 휩싸였고 철도조차장과 성당, 궁전과 주택이 모두 불탔다. 영국 공군의 랭커스터 중폭격기는 세 시간 뒤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 새벽에 찾아와 한참 불을 끄느라 소방대가 분주할 때 또 다시 폭탄 1800톤을 퍼부었다. 미공군 중폭격기 527대가 2월 14일과 15일에 일을 마무리하려고 찾아와 폭탄 1247톤을 주간 ‘정밀’ 폭격으로 철도조차장에 퍼부었다.
영국 공군 폭격사령부의 사령관 아서 해리스 원수는 모든 것이 끝난 뒤 이렇게 쏘아붙였다.
“드레스덴? 그런 곳은 없소.”
(145쪽) 
이란에 한방 먹은 스탈린은 늘 하던 방식으로 목표를 달성하려 했다. 민족문제인민위원장 출신인 스탈린은 국내에서든 국제적으로든 민족 문제를 카드로 활용하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스탈린은 영토를 재편하고, 민족 간 마찰을 부추기며, 분리주의 운동을 악화시키거나, 말 안 듣는 민족을 강제이주시키고, 영토 수복 명분을 지어내는데 이골이 났다.
이란을 상대로 민족카드를 꺼내기는 쉬웠다. 이란 북부에는 사실상 국경 너머 소련의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주민과 민족적 기원이 똑같은 아제르인 수백만 명이 살고 있었다. 이란에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제르 민족주의에 불을 지피는 것이었다. 이란의 아제르인들에게 테헤란 중앙정부에 자치권을 달라고 요구하도록 부추기면 되는 것이다. 7월 7일 크렘린은 남부 아제르바이잔 “분리주의 운동”을 시작하고, 소련 측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수도 바쿠에서 이를 통제하도록 지시했다. 새로운 정당인 아제르바이잔 민주당이 이 운동을 주도하기 위해 창설됐다.
(376-377쪽)
“히로시마는 워싱턴 시각으로 오후 7시 15분에 10분의 1의 적은 구름층만 있는 양호한 시계하에 육안조준으로 폭격당했음. 적 전투기 및 방공포의 저항은 없었음 . 모든 측면에서 아주 성공적인 결과임. 그 어떤 실험보다도 장대한 시각적 효과를 목격함.”
트루먼이 전령의 손을 잡으며 외쳤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이군!" 대통령은 펄쩍 뛰면서 식당 건너에 있는 번스에게 외쳤다. “이제 집에 갈 시간입니다!” 대통령 명의로 된 발표문이 맨해튼 계획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적 도박”이라고 묘사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원자폭탄에 관한 뉴스를 접하면서 생긴 “당혹스런 경외감"을 묘사했다. “그것은 아마 이런 발견을 가능하게 한 문명의 말살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사랑하거나 죽여야 한다."
뉴욕타임스의 군사평론가 핸슨 볼드윈은 폭탄의 “부수적 효과”가 초기 폭발에서 살아난 생존자를 “부상당하거나 팔다리를 못쓰게 만들 수도 있고, 시력과 청력을 빼앗거나 질병으로 죽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어제 인류는 원자의 힘을 해방시켜 상대를 파멸시키려 했다. 이로써 인류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이상하고 기묘하며 끔찍한 일들이 흔하고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어제 우리는 태평양에서 승리를 확정지었지만, 돌풍의 씨앗도 뿌렸다." 영국 외교관 피어슨 딕슨은 그날 밤 일기의 간결한 도입부에서 당혹스런 가능성을 이렇게 요약했다. “유토피아, 혹은 세계 종말의 여명."
(524-526쪽)
스탈린과 고위 측근은 트루먼의 진짜 의도에 대해 일말의 의문도 없었다. ‘영도자'는 히로시마가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균형이 무너졌다"고 생각했다. 몰로토프도 원자폭탄이 “일본이 아니라 소련”을 겨냥했다는 주군의 생각에 공감했다. 미국인들은 사실상 “너희들은 원자폭탄이 없고, 우리는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이건 너희가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경우 얻게 될 결과다!”라고 말한 셈이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대해 스탈린은 대일전 참전을 가속화하는 것으로 맞섰다. 8월 7일 저녁 스탈린은 바실레프스키 원수에게 일본이 점령한 만주 지역에 대한 작전을 현지 시각으로 8월 9일 자정에 개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스탈린은 얄타에서 대일전 참전을 대가로 루스벨트에게서 약속받은 모든 영토적 양보를 쥐어 짜낼 작정이었다. 일본이 미국의 폭탄에 완전히 굴복하기 ‘이전’에 소련군이 만주를 정복하는 것이 특히 중요했다.
(527쪽)
일본에 대한 마지막 결정타를 앞다퉈 날리려는 경쟁, 즉 러시아의 지상전력과 미국의 항공전력이 맞붙은 경쟁은 사실상 무승부로 마무리됐다. 제2차 세계대전은 마침내 끝났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의 한 세대 전체가 수많은 인명과 에너지, 그리고 이념적 정열을 소모할 새로운 형태의 국제분쟁으로 대체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동맹이 냉전의 라이벌로 바뀌는 과정은 단 6개월 만에 이루어졌다.
(530-531쪽)
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단일 사건은 없다. 일부는 1948년 2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공산주의자들이 감행한 쿠데타가 누가 뭐래도 유럽을 분명하게 두 라이벌 진영으로 나눴다고 본다. 일부는 1947년 3월 “무장한 소수파나 외부의 압력에 굴복하고 싶은 유혹과 맞서 싸우는 자유로운 국민들을 돕겠다”는 선언에 따라 그리스와 터키에 군사원조를 제공한 트루먼의 결정을 시발점으로 본다. 전통주의적 역사학자들은 1946년 3월까지 이란 북부에서 병력을 철수시키겠다는 약속을 위반한 스탈린이 냉전기 최초의 대립을 일으켰다고 본다. 수정주의자들은 트루먼이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를 폭격함으로써 “원자폭탄 외교" 정책을 시작해 초강대국들 간의 수십 년에 걸친 대립을 촉발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대립하는 여러 역사관에 깔린 전제는, 어느 쪽 이념에 서있건 정치 지도자 한 명이 냉전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역사 자체가 의도를 가진 것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의 결정을 비웃으며 그 반대 방향으로 내달린다. 때때로 역사는 정반대의 흐름에 말려든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하지만, 한 발 물러서서 보면 100퍼센트 말이 되는 내부의 논리를 따른다. 냉전은 100년 이상 전에 예견되었음에도 여전히 당사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의 완벽한 사례다. 
(533-534쪽)
베를린의 무인지대는 처칠과 괴벨스가 일찌기 “철의 장막"이라고 표현한 그 경계선을 표시하게 된다. 아시아에서 스탈린은 사할린섬과 쿠릴열도를 소련 영토로 편입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일본과 새로운 영토 분쟁의 서막을 연다. 한반도에서 북위 38도선은 공산주의 북한과 자본주의 남한을 나누는 아시아판 베를린 장벽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동서 대립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이란 북부에서 벌어졌다.
“냉전”이라는 표현은 1947년 미국 자산가 버나드 배룩과 평론가 월터 리프먼에 의해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흔히 쓰이는 정치적 용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말이 사용된 기원은 반공풍자소설 ‘동물농장’을 갓 집필했던 작가 조지 오웰이 1945년 10월에 쓴 에세이에서 찾을 수 있다. 오웰은 원자력 시대의 대두에 관한 글을 쓰면서 전 세계를 날려버릴 능력을 가진 라이벌 초강대국들 간의 대립을 경고했다. 그 결과는 “마치 고대의 노예제 제국만큼이나 끔찍하게 안정적인 새로운 시대 이며, ‘냉전’이라는 영구적 상태로 상징되는 ‘평화가 아닌 평화’일 것이다”라고 예견했다.
(536쪽)
한반도부터 이란 북부와 발칸반도, 이제는 사라진 제3제국의 심장부에 이르기까지 잠재적 분쟁 지역이 급증했다. 해가 저문 뒤 밤이 찾아오는 것과 같이, 1945년의 희열, 실망, 혼란은 1947~1949년의 극적 대치로 이어졌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그 어떤 주요 인물도 냉전을 원하지는 않았다. 루스벨트, 스탈린, 처칠, 트루먼 모두 자기 방식으로 세계가 이념적 군사적 라이벌 진영으로 분열되는 것을 막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도 알렉시 드 토크빌이 한 세기도 더 전에 “하늘의 뜻”이라고 부른 것을 꺾을 수는 없었다.
(5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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