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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스 Feb 27. 2024

포대기와 돌담길(17)

눈물을 꼬집는 아이

태어난 지 23개월에 접어든 나의 아이는 '싫다'라는 감정을 인식한 시기부터

엄지와 검지 끝을 모아서 꼬집거나 손톱으로 할퀴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내 새끼손가락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손가락을 야무지게 모아서 살갗을 비틀어 꼬집는 그 손길은

두 돌도 안된 아이의 감정표현이라고 하기엔 나도 비명이 튀어나올 만큼 아플때가 있다. 


내 몸 곳곳에 심지어 얼굴까지 아이가 꼬집은 흔적과 또 꼬집다가 실패하여 할퀴기에 끝나버린

상처들은 하나가 사라지면 하나가 또 생겨나며 양지바른 곳의 잡초처럼 끝도없이 자라났다. 


감정표현이 아직은 서툰 시기라 이렇게 밖에 표현을 할 수 없다고 백 번 양보해서 이해하려고 했지만,

어쩔때는 정말 내 아이지만 얄미워 보일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언제쯤이면 엄마와 아빠를 꼬집거나 할퀴지 않고,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여 '싫어요'라고 예의바르게, 평화롭게 소통할 수 있는 날이 오게될까. 매주 손톱을 깎아주며 그 날이 얼른 오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얼마 전 주말 아침이었다.


뱃 속의 둘째는 점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둔해지고 또 정신적으로도 쉽게 피로해지는 시점에 접어들면서 육체와 정신이 결합된 피로도가 내 온 몸을 지배하던 날이었다. 


호르몬의 장난인지, 켜켜이 쌓이던 감정에 어느 순간 컥하고 짓눌린 탓인지 그 날 따라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남편은 집에 없었고, 티비를 보다가 또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혼자 놀던 아들만이 내 옆에 있었다.


전에 아들들은 딸보다 엄마의 감정을 더 깊게 공감하지 못한다는 어느 미디어를 보고 난 후, 아이 앞에서 우는 척을 해 보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실쭉실쭉 웃으며 오히려 재밌어하는 걸 보고서 역시 남자아이는 남자아이구나 하고 포기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가 생각이 나서인지  나는 아이를 신경쓰지않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냥 흘려보내며 이 감정이 비워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동요 영상을 보고있던 아이는 어느새 내 앞에서 나를 두리번 거리다 항상 그랬듯 내 앉은 자리 위에 자신의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티비를 보려나 했는데, 아이는 곧 뒤를 돌아 나를 살짝 보더니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본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는 엄지와 검지 끝을 모아서 얼굴위의 눈물을 꼬집었다. 


번. 번. 번. 

우연이라기엔 눈물이 흘러내릴 때마다 아이는 손가락을 들어 얼굴을 할퀴었고, 꼬집었다.

표정은 딱히 아무 감정이 없는 얼굴이었지만, 아이의 손가락은 분명 '싫다'는 표현을 하고 있었다


울다가 웃으면 일이 난다는데.

아이의 행동에 나는 곧바로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없었다. 


그래, 그래, 엄마 이제 그만 울게. 


순수한 아이의 행동이 나를 다시금 정신차리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아이는 아직도 본인이 뭔가 마음에 안들면 꼬집으며 감정 표현을 한다. 

그렇게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다음에 또 아이 앞에서 눈물을 보이게 되는 날이 오면 내심 그 손길이 기다려질 것 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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