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었습니다.

다이어터는 고개를 들어주세요.

by 안스

엄마는 요즘 좀 힘들어.

평소라면 늦어도 9시에는 육퇴 하는데, 미운 네 살에 접어든 너는 졸음에 두 눈이 끔벅끔벅 감겨도 절대로 안 잘 거라며 부득부득 우기다가 10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어버리잖아.

게다가, 이제 6개월이 된 네 동생도 너를 보고 배웠는지 오빠인 네가 잠드는 걸 보고 나서 11시가 넘어서야 마지막 분유를 원샷하고 잠들거든.


그래서 엄마와 아빠는 매일이 야근이야.

원래 엄마는 회사에서도 야근을 정말 싫어해서 왠지 야근할 것 같은 느낌이 오면 점심도 안 먹고 집중해서 일을 끝내버려. 출퇴근 왕복만 100km가 넘는 거리를 다니다 보면 칼퇴근은 엄마의 사명과도 같단다. 한 시간 야근을 한다면 집에 오면 거의 여덟 시가 넘어버리니까 칼퇴는 나의 숙명이라는 생각을 하며 일해. 그래서 회식도 별로 안 좋아하긴 해.


어쨌든 이렇게 야근을 싫어하는 엄마에게 같이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얄미운 직장상사보다도 더 얄미운 너희들 덕분에 엄마의 다이어트는 요즘 오리무중이야.


평소에도 야근을 하거나 그날따라 유독 육아가 힘들었던 날에는 엄마와 아빠는 ‘육퇴 후 야식’을 인생의 좌우명처럼 품고 살아가고 있어. 치킨, 닭발, 족발 등 메뉴는 그날그날 다르지만 열 시가 넘은 야심한 밤에 몰래 먹는 야식이야말로 그날의 지친 나를 위로해 주기 때문이야.


처음에 다이어트를 결심하면서 나는 그것이 조금 두려웠어.

나에게 매일 찾아올 그 밤이 말이야.


매일매일 밤은 찾아오고, 다이어터는 눈치를 보면서 고개를 살금살금 들지.


처음엔 그런대로 참을 만했어. 엄마가 오죽 야식을 안 먹었으면 네 아빠가 요즘 사는 재미가 없다는 그런 소리를 하겠니.


규칙적인 생활과 또 올바른 식습관으로 건강하게 만들어지던 나의 일상이 요즘 육퇴가 늦어지면서 조금씩 무너지고 있단다.


12월 마지막 주에 어린이집의 겨울방학을 맞이하면서 헬스장 운동 출석을 못하게 되었고 더더욱 정크푸드에 대한 나의 열망은 높아져버리고 말았어.


꿈에서도 더블치즈불고기버거와 감자튀김, 탄산이 찐하게 들어간 사이다를 먹는 꿈을 꿀 정도이니까 말 다했지 뭐.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우리 집은 말 그래도 긴급보육모드에 들어갔고, 나는 너를, 네 아빠는 네 동생을 일대일 전담마크하며 장장 일주일을 지지고 볶으면서 지냈지. 나름대로 겨울방학이니 어디로든 나들이는 다녀와야겠다 싶어서 대형 키즈카페에도 가보고, 물론 거기서도 돈가스와 짜장면으로 외식하면서 트랜스지방을 축적했지만. 평소라면 자주 사주지 않는 액상과당 음료수를 너에게 사주며 ‘이번 한 번 만이야~’하면서 엄마도 당이 낭랑하게 들어간 인스턴트커피를 쭈욱 들이켰어. 그리고 밤이 되면 네 아빠와 눈짓을 주고받고 배달 어플을 켜서 양식, 중식, 일식 종류별로 시켜 먹었지. 일주일 동안 평균 걸음걸이수가 7 천보였으니, 이 정도의 당분과 야식은 충분히 먹을 만하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말이야.


일전에 엄마가 말한 적 있었지? 육아는 운동이 아니다. 노동의 범주다.라고 말이야.

맞아. 평균 7 천보씩을 걸으면 뭐 하니, 설탕 덩어리 커피와 각종 인스턴트 푸드들은 내 각고의 노력 끝에 내려놓은 내 내장지방 레벨을 다시 업그레이드해버렸어.


거의 10일을 제대로 된 운동을 하지 않고 먹기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더니, 겨울방학이 끝난 오늘 엄마는 체중계위에 올라가기가 너무 무서웠어. 그래도, 사실을 직시하고 다시 다이어터의 모드로 들어가야 하지 않겠니?

엄마는 무조건 복직 전 3월 말까지 최소 5kg은 더 뺄 거니까 말이야.


다행히 몸무게는 1.3 kg밖에 더 찌지 않았어. 이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 새로운 각오를 되새기며 유산소운동 30분까지 완료했어.


그리고 내일부터는 엄마의 숨어있던 플레이리스트를 켜고, 유산소운동의 강도를 더 높여서 일주일 동안 얇게 펴 바른 나의 체지방을 다시 깎아내려고 해.


마치 마피아게임 속 밤이 될 때마다 고개를 드는 마피아처럼, 야금야금 야식들을 점령해 가며 무고한 시민을 속이는 그런 짓은 이제 그만하려고 해.


이제 또 밤은 찾아오지만,

다이어터는 고개를 들지 않고, 그대로 까무룩 잠이 들 거야. 물론 저녁은 가볍게 먹은 상태겠지.


아들,

겨울 방학 끝났으니까 이제 또 열심히 어린이집 가야지.

엄마, 살 좀 빼고 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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