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문 사이의 삶과 죽음

환자인 딸과 보호자인 엄마

by 따뜻한 선인장

아플 때 가장 미안한 사람은 엄마였다. 염려를 애써 드러내지 않으려고 해도 자기보다 훨씬 어린 사랑하는 딸이 갑자기 뇌출혈에 걸려 힘없이 누워 있는 이 상황이 엄마에게도 얼마나 황당한지 엄마의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나는 환자라서, 아픈 사람이기 때문에 웃으면 다행이고 짜증 내거나 화를 내도 당연했지만 보호자인 엄마는 슬퍼도 괜찮고, 화가 나도 티를 낼 수 없었다. 그렇게 괜찮지 않으면서 애써 아닌 척 괜찮은 척 보이려 무던히 노력하는 엄마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어쩌면 환자보다 더 힘든 사람이 보호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엄마 옆에선 나 역시 최대한 이성적으로, 감정을 조절해야 하고 싶었다. 내가 힘들어하면 엄마가 더 힘들걸 알았으니까. 그런데 그게 내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머리가 그런 것처럼 마음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 마음보다 더 큰 두려움이 그땐 내 몸 안에 가득했.


병원에 있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머리를 깜는 것이었다. 몸을 다 씻기엔 너무 힘들어 욕실에 쭈그려 앉아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깜으려 했는데 머리를 내리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갓난아이들이 머리를 가눌 수 없으니 고개를 받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고개가 내가 원하지 않을 때,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평생 너무 아무렇지 않게 감아온 머리를 나는 어떻게 매일같이 해냈던 것일까. 그렇게 머리를 한번 감고 나면 녹초가 돼서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가만히 누워 움직임을 멈춰도 머릿속 생각은 아프기 전처럼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다. 예전에 했던 생각들과 더불어 이제는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오히려 생각은 전보다 더 많아지고 걱정은 더 활발해진 것도 같았다. 불안함이 커지면 신기하게도 왼손이 조금씩 움츠러들었다. 티브이나 드라마를 보면 뇌출혈이나 뇌졸중에 걸리는 분들이 왜 손이나 손목이 구부러지거나 움츠리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걱정이 커지면 커질수록 손목은 자꾸 안쪽으로 들어갔고, 그게 싫은 내 생각이 손을 펴려고 하면 할수록 손은 반대로 더 구부러 들었다.


매일같이 손과 생각이 싸우다 보니 앞으로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면. 이제 겨우 스물다섯인데, 지금껏 살아온 시간도 이렇게 스펙터클 한데 앞으로 운이 좋아 혹은 남들 사는 만큼 살게 되어 지금껏 살아온 시간의 두배, 세배인 오십이 되고 칠십오 세가 된다면, 그런데 장애인으로 살게 된다면. 한 번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혹시나 죽게 된다면 어떨까. 지금 죽는다면 나는 어떨까. 드디어 그렇게 오랫동안 궁금해하던 신을 드디어 만날 수 있을까. 누구 하나 지금 당장 세상을 떠나는 것에 있어 억울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다른 사람들도 그렇듯이 내 뜻과는 상관없이 죽음이 찾아오면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만약에 그럼에도 내가 아직 죽기에는 너무 아쉬운 이유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뭐가 제일 아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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