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의 움직이는 병실

가장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

by 따뜻한 선인장

갑작스레 머물게 된 병실에는 나 외에도 5분이 더 계셨다. 모두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들이셨다. 그래서 종종 방문하시는 가족분들도 계셨지만 할머니들을 보살펴 주시는 간호조무사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느 한가한 오후, 모두가 낮잠을 주무시는 시간에 옆에 계신 간호조무사 한 분이 조용히 나에게 말씀하셨다.


“여기 할머니들이 먼저 가실 것 같지? 근데 나이를 든다는 게 몸만 늙는 게 아니야. 세포도 같이 늙거든. 그래서 걷고 움직이는 게 느린 것처럼 세포들도 느릿느릿 퍼지거든. 그래서 빨리 낫지도 않지만 빨리 죽지도 않아.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빨리빨리 낫거나 갑자기 훅 세상을 뜨거나 하지.”


나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할머니들만 계신 병동에서 젊은 사람이라고 하면 나뿐인데 내가 빨리 나을 거라는지, 죽을거란지. 이 아주머니께서 무슨 의미로 지금 나에게 이런 말을 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할머니들만 계신 병동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단조로웠다. 아침 뉴스와 함께 아침을 먹으면 문진을 돌았고, 약을 먹고 조금 기다리다 보면 또 점심을 먹고 약을 먹었다. 한가롭게 낮잠을 자고 나면 이른 저녁 식사가 도착했고, 그제야 병실에는 잠깐 있는 활기가 돈다. 내 고향 여섯 시를 시작으로 사람들의 눈은 티브이를 향하다 9시 뉴스 전, 8시 20분의 일일 연속극 시간이 되면 모든 사람들은 숨죽이며 주인공들의 감정에 이입된다. 어찌나 모든 분들이 몰입하시는지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도 방해가 되는 소음이 될까 조심스러운 시간이 된다. 할머니들과 있으면 그 많은 티브이 속 채널들도 별 소용이 없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공영방송에 대한 사랑은 늦은 저녁 시간까지 이어지고, 밤 10시 가요무대가 시작되면 트로트가 자장가인마냥 할머니들은 하나 둘 취침에 들어가셨다.


이렇게 모든 프로그램들이 끝나고 나서야 병실에는 어둠과 함께 적막이 찾아왔다. 공영방송의 드라마나 트로트나 뉴스 같은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제야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모든 불이 꺼지고 복도에서 비추는 빛만 가느다랗게 들어오는 병실. 창 밖으로 비치는 불빛 만이 내가 원래 살았던 곳, 나도 아프기 전의 삶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게 창밖의 건물, 사람들, 불빛들을 한참을 바라보는데 어느 순간 창 밖의 사물들이 아닌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힘없이 하얀 환자복을 입고 앉아 있는 한 사람. 그런데 그 모습이 내가 알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니라 어느새 할머니로 바뀌어 있었다. 깜짝 놀라 재빨리 다시 병실로 시선을 돌렸다. 분명 나는 스물다섯 살의 나인데 방금 전 창밖에 스친 모습 속엔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나처럼 앉아 있었다.


하루 종일 할머니들의 일과를 따라가느라 나와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것은 다르고, 보고 싶은 것은 다르고, 심지어 세포가 퍼져가는 속도도 모두 다르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 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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