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문안 중 기억나는 말들
나만큼 놀란 지인들의 병문안
삼월의 시작을 병원에서 맞이하는 것도 뜬금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병원에 있어야 하는 이유인 뇌출혈은 더욱 경황이 없어서 나는 병원에 생각보다 더 오래 머물러야 했다. 우선 다니던 직장에 갑자기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하고, 뇌출혈인데 아직 원인을 찾는 중이라 얼마나 병가를 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연락을 드렸다.
대부분 지인들의 반응은 나만큼이나 황당해하고 놀란 기색이 역역했다. 뭐라고?라는 반응과 왜? 네가 왜?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지만 나 역시 알 수 없는 답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나 뇌출혈이라는 병이 듣기 쉬운 단어일까 싶었지만, 뇌출혈을 걸리기에 나는 아직 너무 젊은 나이인 듯했다.
병원에 입원하고 난 뒤, 절대 안정이라는 명패가 사라지고 나서부터 놀란 지인들이 하나 둘 병문안을 와주셨다.
나를 보러 와주신 분들의 얼굴 하나하나 보며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새삼 내가 속한 모임에서 나는 가장 막내이고, 어리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에서도 나는 가장 신입이었고, 가족들 중에서도 여전히 조카들보단 이모들이 많았고, 교회 청년회에서도 가장 어린 나이였다.
예전에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만나기 위해 내가 어딘가로 나가야 했고, 시간을 내어서도 다 같이 만날 수가 없는 경우도 있었는데 병원에 입원을 하고 나니 나는 가만히 병실에 있는데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찾아와 주는 것이 좋았다. 비록 내 몸은 뇌출혈이 왔다고 하지만 내 마음만큼은 여전히 건강했던 때와 전혀 다를 바 없이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매일같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에 뇌출혈이라는 병도 잊은채 내가 왜 굳이 병원에 있어야 하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병문안 가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가져오는 것
그러나 나는 내가 인정하기 싫었을 뿐이지 환자였고, 만남의 첫 기쁨은 평소처럼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대화를 하다 보면 세끼 꼬박 먹고 맞는 약과 주사 기운에 어지러웠고, 속이 메슥거웠고, 오래 앉아 말을 할 수 있는 기운이 떨어져 누군가 앞에 있어도 자주 눕다가 잠이 들게 되었다. 분명 뇌출혈에 따른 증상이었고 쇠약해진 기운 때문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단순히 그 이유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실에 있으며, 병문안을 와주시는 분들을 만나며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은 병문안을 갈 때 무언가를 항상 들고 오셨고, 그래서 무엇을 사 갈지 고민을 했다. 어떤 음료수를 살지, 어떤 꽃을 살지, 어떤 간식을 살지. 병실이나 환자에게 괜찮을, 좋을 것들에 대해 사람들은 고민을 했고 가져왔다. 그런데 병실 침대에 누워 있으며 알게 된 사실은 방문객들이 그렇게 생각을 해서 가져오는, 눈에 보이는 음료수, 꽃, 간식들이 있는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하지 않았지만 항상 같이 가져오는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말, 위로의 말이었고 걱정의 말이었다.
특히나 병이 크고, 그런데 나이는 어린 환자일수록 방문자들의 마음은 안타깝고 안쓰럽고 걱정스러운 듯 보였다. 내가 처음 6인 병실에 들어왔을 때, 나머지 다섯 분은 모두 할머니들이셨는데 그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아이고, 젊은 아가씨가 무슨 뇌출혈이래"라며 걱정해주시는 말이었다.
병이 있고, 아직 낫지 않았고, 그런데 방법도 아직 요원하다면 걱정이 가장 먼저 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생각의 흐름이었다. 그리고 지극히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생각의 흐름이었기 때문에 당사자인 환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병실에 있는 환자들은 자신에게 갑작슬 닥친 병뿐만이 아니라 걱정 때문에라도 근심의 늪에서 하루하루 허우적 댄다. 병원에 있으면 환자가 할 수 있는 것이 걱정 말고는 딱히 없기 때문에 환자들은 걱정하는 것만큼 걱정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괜히 텔레비전을 켜놓고, 괜히 복도 한 바퀴를 돌고, 괜히 더 방문객들이 기다려진다. 그렇게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걱정은 잠시 사라지는 듯하니까.
그런데 오는 분들마다 간식과 꽃과 음료수와 함께 항상 들고 오시는 것이 걱정이었다. 아직 이렇게 큰 병을 겪기엔 너무 어린 동생, 딸 같은데, 게다가 언제쯤 어떻게 나을지도 알 수 없으니 그들의 마음 속에도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걱정이겠지만 그게 나에게는 시간이 갈수록 힘들었다.
매일매일 사람들을 병실에서 만난다는 의미는 다른 말로 하면 매일매일 나는 걱정을 듣게 된다는 뜻이었다. 한 사람이 하나의 걱정의 말만 해도 열명을 만난 나는 열개의 걱정을 듣게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걱정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일과였는데 그 노력이 누군가 찾아오면 또 금세 흔들렸다.
게다가 걱정의 말만큼이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 생겨났다. 위로의 말. 아무래도 종교를 가진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해지는 말이 있었다.
신은 견딜 수 있는 아픔만 주신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견딜 수 있는 아픔이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끝이 있을 거란 위로의 의미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신은 정말 나를 사랑하신다면서, 나의 머리카락 수도 모두 아신다면서, 내가 지금 이 아픔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정말 모르실까.
생각할수록 앞 뒤가 맞지 않는 말처럼 들렸다. 그 말을 곱씹어볼수록 아픔이 잘못되었기보다 내가 잘 참지 못하는 사람처럼 화살이 나에게로 꽂이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아픔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내가 견디지 못해서인가? 신이 더 멀게만 느껴지는 말이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