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후, 문득 떠오른 대학교 친구의 여행 이야기
한 달 동안의 병원 생활이 끝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유전적인 이유였거나 혈관이 기형인 부분이 있거나 혹은 몸에 갑작스러운 이상이 생겨서 뇌출혈이 왔는지 다양한 시술과 검사들을 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 1월 1일, 새해에 눈 길 위에서 넘어진 그 사고 때문인 듯했다. 아직 머릿속에 고인 피도 남아있고, 혈관 문제도 남아있어 의사 선생님은 3개월 동안 기다렸다가 추후 상황을 확인해보자고 하셨다.
드디어 집에 오게 되면서 사람들이 말해준 것처럼 기왕 이렇게 된 것, 편히 쉬어야지 싶었다. 지금까지 못 본 책 마음껏 읽고 드라마도 마음껏 보고 좋은 음악도 많이 들어야지 했다. 그런데 그 모든 쉼의 활동이 뇌출혈 환자에겐 뇌가 움직이는 일이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책을 읽는 것은 눈이 하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머리가 아팠다. 책을 보는 것은 눈이었지만 그 눈이 본 것을 나라는 사람의 기억 속에 들어오게 하는 것은 뇌가 하는 역할이었다. 음악도 마찬가지였고 드라마도 같았다. 움직여보고 싶었지만 몸의 균형을 잡는 것도 귀, 그리고 결국엔 뇌가 하는 일인 것도 처음 느꼈다.
처음 퇴원할 때 마음먹었던 것과는 달리 내가 편히 쉬면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졌다. 조용한 방에 누워 가만히 천장을 보는 것. 그것이 다였다. 가끔씩 친구들과 연락을 하느라 핸드폰을 봤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던 나는 그것도 무척 슬퍼졌다. 한창 날아다닐 나이인 스물다섯 살에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방안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는 것이라니. 무척 우울해졌고 그러면 어김없이 왼쪽 손이 딱딱히 굳어지며 구부러지는 것 같았다. 그게 무서워 나는 계속 속으로 괜찮아 괜찮아를 속삭였다. 한참을 스스로 다독이다 보면 눈이 녹듯 손도 조금씩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면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온몸의 힘이 다 빠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살아서 무얼 한담.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이렇게 매일같이 챙겨주시는 분들이 들으면 무척 슬플 이야기였기에 입 밖으로 내본 적은 없었지만, 매일매일 나 스스로와 싸우고 달래고 보채고 지치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잘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일은 아니었다. 병원에 있을 땐 싫든 좋든 함께 병실을 쓰는 사람들도 있고, 또 진료를 해주시는 의료진 분들도 있으니 이래저래 눈길이 향할 일들이 여러 가지였는데 집에 혼자, 방안에만 누워있으니 우울한 생각만 들었다. 나만 힘든 것 같고, 나에게만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 같고, 책도 못 보고 그렇다고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과 만날 수도 없으니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힘든 사람이 나인 것만 같았다.
'그런데 죽는다면, 지금 죽는다면 어떨까'
생각을 할수록 알게 된 것은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