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로 사랑하기 위해 써내려 본 버킷 리스트

다시 기회가 주워진다면

by 따뜻한 선인장



어느 날 문득 떠오른 대학시절 친구의 인도 여행 이야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래서 하기 싫은 나에게 무언가를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했다. 그게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신기하게도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 것만큼은 사실 누구에게느 가능한 일이었나.


혹시나 내가 다시 회복해서 예전처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한 번 인도에 가고 싶었다. 친구가 말한 대로 바라나시의 골목에서 라씨를 마시며 지나가는 시체를 바라보며 죽음에 대해 무덤덤해지고 싶었다. 내가 다시 건강해진다면, 혹은 곧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동안 하지 못했던 해보고 싶은 것을 적어보는 것. 문득 이런 것이 버킷리스트가 아닐까 싶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적어보려다가 우선은 무엇을 내가 할 수 있을지부터 생각해보기로 했다. 왼손이 얼떨떨한 것이 아직도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느낌이었지만 병원에서는 딱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었다. 우선 뇌출혈 때문에 읽는 것도 듣는 것도 자유롭진 않으니 성경을 왼손으로 적어보기로 했다.


'성경을 읽고 있는 와중에 나를 죽이진 않으시겠지.'


내 나름대로 생각해 낸 두려움 방지 및 왼손 재활 운동법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책상에 앉아 노트를 꺼내고 펜을 잡았다.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마음이 닿는대까진, 한 페이지는 채워보려고 했다. 성경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사람이라 책상에 앉아 무작정 펼쳐지는 페이지의 성경을 적어보기로 했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평소에 내가 귀가 닳도록 들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구절이 나왔다. 너무 자주 사용되지만 너무나 드물게 가능한 비현실적인, 빛바랜 구문. 그럼에도 왼손으로 글씨를 써 내려가기 위해 나는 이 문구를 노트 위에 띄엄띄엄 서서히 써 내려가고 있었다. 예전 같았다면 찰나의 순간처럼 짧게 써내려 갔을 그 문구를 영겁의 세월을 걸려 겨우 마친 느낌. 얼마나 펜을 세게 눌러썼는지 한 문장을 쓰고 나서도 손에서 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한참을 걸려 글을 써내려 가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나도 모르게 같은 문장만 반복해서 쓰고 있었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몸이라는 단어가 몸이 아프다 보니 나도 몰래 자꾸 보였던 것 같다. 무언가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몇 번이나 계속해서 적힌 삐뚤빼뚤한 그 문장을 한참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노트 속 글자들이 하나씩 움직이며 애너그램처럼 재배치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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