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이 안부를 묻고 일상을 나누던 어느 날. 남자 친구가 이번 주에는 대학 동창들과 만나서 1박 2일로 썰매를 타러 갈 거라고 말했다. 무슨 다 큰 어른들이 썰매를 타러 가지 싶었는데 갑자기 툭,
"옛날 여자 친구였던 동창도 오게 되었는데 가도 괜찮을까?"
라고 묻는 남자 친구.
"그걸 왜 나한테 물어 ㅋㅋㅋㅋㅋㅋ"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뜬금없이 등장한 인물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다 큰 어른이 친구를 만나는데 나에게 허락을 구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이상한 모습이었다. 그가 어린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그의 엄마도 아닌데 왜 나에게 묻는거지 싶다가 생각해보니 내가 그의 여자 친구였다. 물론 옛 여자 친구라는 존재가 민감할 수도 있겠지만 연애를 거의 하지 않다가 서른이 넘어 만난 남자 친구가 외국인에 다 큰 어른인데 나에게 갑자기 옛날 친구를 만나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니 무척 낯선 느낌.
뒤집어 생각해보면 다 큰 어른이 굳이 허락을 구하는 건 내가 여자 친구이니 특별히 물어보는 거겠지만, 자연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사실 잘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같지는 않은 그의 질문에 나는, 왜 그걸 나에게 물어?라고 넌지시 물었다.
"다른 친구들의 여자 친구들 중에서는 과거의 관계에 무척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서."
"그럼 그 여자분들은 왜 예민한 건데?"
"불안해하거나 의심하거나 그냥 기분이 좋지 않거나, 다양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왜라는 질문을 두 번이나 물었던 건 나였지만, 사실 그건 내가 이전에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남자 친구의 의견이나 다른 사람들은 옛 연인을 만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듣고 나서도 내가 느끼는 기분은 여전히 그걸 왜 굳이 나에게 묻는가였다.
어차피 장거리 커플인데, 그가 굳이 말해주지 않고 물어보지 않았으면 나도 굳이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이 아이는 굳이 긁어 부스럼을 내려고 했을까? 그러면서도 나는 우리가 멀리 있으면 있을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더 조심하며 세심하려 노력하는 게 있다면 있는 그대로, 그가 말해주는 그대로 꼬아 듣지 않고 곧게 듣고 싶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뻔한 이야기를 굳이 말했던 것은 그가 말했던 대로 필요 없는 오해나 의심을 막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나는 적어도 그 두 가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더불어 그가 우려하는 오해와 의심을 떠나서라도, 나의 기본적인 생각은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안될 때가 있는데, 네 마음을 어떻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느냐였다. 사소한 것으로 오해나 의심을 살 관계라면 지금은 무사히 넘겼다 할지언정 언젠가 또 수없이 마주해야 할 미래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보내고 싶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