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것 투성인 장거리 연애에서 확실한 것 하나

장거리 연애 그다음은?

by 따뜻한 선인장

필리핀에서의 생활을 일단락하고 논문을 쓰러 한국에 들어왔을 때, 나는 아마 시골에서 살아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작은 항구도시에서 떠난 적이 없었지만, 막상 지금은 고향에 가도 남아 있는,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매일같이 도서관과 집을 오가며 가족과 남자 친구와 매일같이 지내는 것, 그렇게 몇 달을 지내다 보니 이런 단순한 삶이 나에게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논문 쓰기를 마치고 필리핀에 다시 돌아온 순간, 나의 사회적 자본들, 인맥들은 오히려 내 고향보다 필리핀에 더 많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거의 격일이 멀다 하고 밥을 혼자 먹은 적이 없고, 논문과는 부차적으로 이런저런 아는 분들의 부탁과 초대로 통역 알바도 하고 강의 알바도 하게 되었고, 그런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활동들이 내 마음 한편을 무겁게 만드는 것을 알았다. 흠... 왜 그럴까. 며칠, 몇 주를 뭔가 찜찜한 마음으로 보내며 그 원인 모를 무거움이 무언지를 생각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강의와 통역 알바를 하고 난 뒤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독일에서도 일을 찾아보면서 한국에서도 일을 찾아보면 어떨까?"


열심히 독일에서 일자리를 찾아보던 남자 친구에게 나는 문득 한국에서 일하는 것은 어떤지를 물었다. 그동안 내 마음 한편을 무겁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장거리 연애의 미래와 나의 커리어 사이에서 벌어지는 간극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고, 함께 배우고 일하고 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이런 경험들이 쓸모가 있고 인정을 받는 곳에 있는 것이 나에게 편하고 유용할 것 같다는 생각은 필리핀에 머물수록 더 커져갔다. 이렇게 내가 했던 것들이 인정받고, 또 사람들이 나를 찾아주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모든 노력들이 쓰이기는커녕 언어부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독일에 간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 한 켠에서부터 버거운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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