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는 걸까?
발리에서 우연히 만난 우리가 장거리 국제연애를 이어가는지도 어느새 2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 2년이 되는 시간 동안 우리가 실제로 만난 것은 딱 세 번의 여행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발리, 내가 그를 보러 간 독일, 그가 나를 보러 온 우리나라. 우리는 석사 논문에 치여 그 해 봄, 잠시 휴식차 떠났던 발리에서 우연히 만났고, 그를 알기 전 내가 미리 끊어두었던 유럽행 비행기표 덕에 그 해 여름에 다시 독일에서 재회하고 사귀기로 했다. 그 후 나보다 먼저 석사 생활을 마친 그가 그해 가을 한국을 방문했고, 어느새 한 해가 지나 우리에겐 다시 가을이 찾아오고 있었다.
거의 한 해가 지나는 동안 만나지 못했던 우리가 제법 장거리 연애를 잘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미스터리였다. 굳이 좋을 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매우 나쁜 것도 우리에겐 없었다. 그저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에 집중했고, 하루의 작은 시간을 서로 나눴다. 나에겐 끝내야 할 논문이 있었고, 그에겐 찾아야 할 일이 있었다.
원래는 졸업을 일찍 했던 남자 친구가 일을 먼저 시작하면 재정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휴가도 생기면 내가 있는 필리핀으로 여행을 올 줄 알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생각과 달리 흘러가고 있었다. 진즉 끝났어야 할 내 논문 심사는 복잡한 현지의 절차적 문제로 2학기째 내 발목을 필리핀에 묶어 두었고, 같은 시간 남자 친구의 취업 소식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렇게 나는 논문에 발이 묶여, 남자 친구는 취업에 발이 묶여 서로를 만나지 못하게 된 시간도 1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서로에게 괜찮아질 거라고, 이 기나긴 터널의 끝이 있을 거라며 반년의 시간이 넘게 힘을 주었고, 여름이 시작되던 어느 날, 적어도 나의 4년의 지난했던 석사 생활은 끝이 나는 듯했다.
우리가 애초에 생각했던 그가 먼저 일을 찾고 내가 나중에 일을 하게 될 것이라던 예상이 점차 그가 아직 일을 찾지 못해도 내가 먼저 졸업을 할지도 모른다는 뜻밖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고, 논문 디펜스 날이 다가오니 점점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시나리오인 만약 그가 일을 찾지 못하고, 내가 일을 찾게 된다면 확실한 것 하나는 그곳이 독일은 아닐 것이라는 것이었다. 적어도 전공을 살려서 일을 이어간다면 적어도 그곳은 영어권이나 한국이었다. 6년이 넘는 필리핀에서의 해외생활에 지치기도 했고, 지난했던 석사 생활에 지칠 때로 지친 나는 사실 한국에도 가고 싶었다. 그러다가도 지난 시간 동안 필리핀에서 발견한 동남아시아에 대한 매력에 대한 기억이 스쳐 지나가면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등지의 다른 동남아시아에 대한 궁금함과 호기심이 생겨나 일자리들을 찾아보게 되는 것도 내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었다.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것. 그것도 외국에 살고 있는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것이었다. 거의 2년이 다 되어가도록 장거리 국제연애를 어쩌다 보니 제법 잘, 예쁘게 이어오고 있었지만 지금까진 그야말로 '장거리' 연애였기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아마도, 이 친구가 내가 앞으로 어디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있어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는 장거리 연애 중에는 미처 알지 못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그 고민이 정말로 코 앞에 다가온 듯했다. 싱글이었다면 너무나 뻔히 보였을 내 석사 생활 이후의 거취가 외국인 남자 친구 한 명으로 다시 멀리 사라지는 듯했다. 동시에 나도 그렇지만 그건 남자 친구에게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우리의 국적이 너무나 다르게 느껴졌고, 독일과 한국이 정말 멀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