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인 남자, 정착민인 여자의 국제연애

아무리 해외에 오래 살아도 낯선 질문

by 따뜻한 선인장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거나 적어도 비슷비슷한 것 같지만, 또 가끔은 독일과 한국 사이의 거리만큼에 더불어 화성과 금성만큼 머나먼 혹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 같은 사이가 남자 친구와 나의 관계 같았다. 서로 다른 언어체계, 생각 세계에 살던 한 외국인 남자아이와 연인관계가 되면서 참 신기한 것은 그 낯선 아이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익숙하다고만 생각했던 나라는 사람이 낯설어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가장 신선한 '다름'을 발견했던 것은 우리가 처음 만났던 여행에서부터 시작됐다. 우리는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산에 오르는 등산 프로그램을 신청했었다. 팸플릿에 있는 여행 업체에 전화를 하면 해당 시간에 우리가 머무는 숙소까지 픽업을 왔다. 그렇게 픽업된 여행사의 모임 장소에 대기하다가 다른 여행자들이 모두 다 모이면 그들과 함께 커다란 벤을 타고 산 입구까지 함께 가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어느 카페에서 각자 다른 숙소에서 모인 다양한 나라의 여행자들이 모였고 우리를 포함한 열 명의 사람들이 한 벤에 탔다. 우리는 맨 앞좌석에 앉아 가만히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데, 남자 친구가 갑자기 뒤에 있는 커플과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얘기지?'

영어가 아닌 언어로 대화 중이라 나는 아는 수가 없어서, 가만히 그들의 대화가 끝나기까지 기다렸다가 무슨 일인지 물었다. 뒤에 앉은 커플이 러시아어로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남자 친구가 그 답을 알아서 그들에게 러시아어로 대답을 해줬다고 한다.


“어? 너 독일 사람이라며. 러시아어도 하는 거였어?”


열 명의 승객들이 각자 자기들끼리 자기들 언어로 수다를 떨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너무 다양한 언어라 나는 그 언어들이 언어보다는 그저 소리에 가깝게 들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남자 친구에겐 그 소리들이 의미를 갖은 언어로 와 닿았고, 그 대화들을 알아듣고 있었다. 그렇게 남자 친구는 봉고차에 탄 첫째줄 사람들과는 러시아어로 이야기하더니, 둘째 줄 사람들과는 스페인어로 농담하다가, 셋째 줄 사람들과는 독일어로 대화하더니, 놀라서 가만히 멍~하고 쳐다보는 나에겐 다시 영어로 해맑게 “Why?” 하고 묻고 있었다.


“너 정체가 뭐야... 이과라면서”

언어를 몇 개를 하는 거야라고 물으니 남자 친구는 그의 짧지만 나름 기나긴 개인사를 풀어냈다. 18세기 즈음에, 독일인 공주님이 러시아의 왕에게 시집을 갔단다. 그때 그 러시아 왕이 그 공주님에게 러시아의 어떤 땅을 그녀에게 주었고, 그때 독일 사람들이 러시아로 넘어간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그 지역의 독일계 러시아인으로 구 소련 지역에서 태어나 러시아어를 초등학교 때까지 배우게 되었다. 그러다가 소련연방이 무너지고 러시아에 있는 사람들 중에 독일에 직계 가족이 있으면 이주를 할 수 있는 기간이 있었는데, 그때 남자 친구는 독일로 넘어가 지금까지 독일어를 자국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영어는 자신이 좋아하던 것들을 보다 보니 자연스레 배우게 된 언어가 되었고, 스페인어는 학교에서 배워서 아주 간단한 회화밖에 못한다곤 했지만 그래도 그는 언어 전공도 아닌데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4가지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언어를 4개나 배우면 어렵지 않아?라는 나의 질문에 남자 친구는 영어를 알면 독일어는 나름 배우기 쉬운 언어라고 설득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 중 하나로 언제나 꼽히는 러시아어에서 그 보단 덜 어려운 독일어, 그보단 또 조금 덜 어려운 영어를 배운 남자 친구에겐 새로 배웠던 언어들이 모두 그전에 배웠던 언어들보단 조금씩은 쉬웠던 모양이었다.


내가 한국어를 하고 영어도 해서 그는 당연히 나도 영어와 한국어가 비슷한 느낌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영어를 쓰고 공부해도 한국말처럼 '우리나라 말'이라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영어를 쓸 때마다 나는 무슨 단어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한국어처럼 생각 없이 영어가 나오지도 않았다. 나에겐 모국어와 모국어 이외의 언어는 하늘과 땅 차이였기 때문에, 나에겐 모국어는 그만큼 너무너무 지배적이었고 그래서 이 친구에겐 모국어는 어떤 언어 일지 궁금했다. 어떻게 보면 태어날 때부터 배운 언어는 러시아어이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배운 언어가 모국어가 아닐까 싶다가도, 또 그다음 십 년은 독일어만 사용하고 독일이 집이고 국적인 지금은 독일어가 모국어일 것 같기도 한데, 과연 이 친구에게 모국어는 어떤 언어일까 궁금했다.


"넌 모국어가 무슨 말이야?"

"모국어?"

잠시 생각하던 남자 친구.


"내가 '지금' 사용하는 언어"


‘저게 무슨 말이지’

생각하는 게 다르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걸리는 시간과 생각의 과정이 내가 무슨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확연히 다른데 어떻게 내가 '지금' 사용하는 언어가 아무거나 내 모국어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모국어', 내 언어, 우리말이라는 그 특별한 무언가가 모국어에는 있는데 그 차이를 이 아이는 모르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내가 느끼기에 가장 편한, 마치 내 몸, 내 존재의 일부 같은 모국어처럼 가장 비슷한 고향이라는 개념을 이 아이는 어떻게 생각할지 또 궁금해졌다. 우리는 보통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 생각하고, 또 오랜 시간과 추억이 모두 남아있는 곳을 제2의 고향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친구에겐 러시아와 독일, 어느 곳이 고향일까?


"넌 그럼 고향은 어디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이번에도 역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답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


‘아... 이럴 줄 알았어. 이런 질문이 안 통해’


사실 한민족, 대한민국 사람들은 전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독특한 민족 중 하나이긴 하다. 우리에겐 한민족, 한 핏줄 등 공통의 가치와 문화를 같은 조상의 조상의 조상을 통해 한 곳에서 오랫동안 정착해 이어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정착문화가 지극히 정상이고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민족들만큼이나 많은 지구촌의 다른 한편에는 끊임없는 이주와 이민에 의해 한 나라의 역사가 이어져 온 곳도 많았다.


우리나라도 분단이 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하지만 분단이 되기 전에는 또 교통과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국경을 넘어 아주 새로운 문화권에 정착하는 게 쉽진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나를 비롯한 우리 세대는 윗세대에 비해 해외여행에 익숙하고 유학을 자유롭게 나설 수 있는 것이 분명했고, 나는 그중에서도 아프리카와 다른 아시아 지역과 유럽까지 다양한 해외 경험을 했지만 신기하게도 그러한 다양한 경험이 나의 한국인 정체성을 바꿀 만큼 강력하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남자 친구는 그 정체성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왜 나에게는 그리도 어려운지, 불가능한 것인지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가장 실례로, 어느 날은 남자 친구와 미래에 대해, 우리가 어디서 살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남자 친구가 살고 있는 독일이나 내가 살고 있는 한국, 혹은 제3국에 정착하는 것은 어떨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별일 아닌 듯 남자 친구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만약에 네가 독일에 살게 된다면 비자를 받고, 시간이 지나면 국적을 바꾸는 게 좋을 거야"


순간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국적을 바꿀 수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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