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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작 Mulgogi Oct 24. 2023

밥에 대한 단상,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인과 김정수 화가의 공통점

김정수, <진달래>, 2007년, 100×72.7cm


긍정적인 밥

함민복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나는 밥을 좋아한다.

어쩔 땐 애인보다 밥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애인의 김 빠진 탄산음료와 같은 밍밍한 위로보다야  

뱃속에서 온전히 나를 따뜻하게 덮여주는 밥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그런지 친해지려면 밥을 먹는 횟수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밥을 함께 먹으면 먹을수록 정겨움이 늘어난다고 믿는다.


에쿠니 가오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ㅡ 항상 같은 사람과 밥을 먹는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먹은 밥의 수만큼 생활이 쌓인다.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결혼을 테마로 한 에세이) 中 ㅡ 와 같이


 먹은 밥의 수와 생활, 혹은 정겨움의 비례한다는 것에 지극히 공감한다.



그래서 '밥'이란 단어가 들어간 이 시를 읽는 순간

시와 사람의 마음, 그 사이를 밥이란 매개체로 연결한 시인의 마음도 밥 못지않게 따뜻하다 싶다.  

게다가 그냥 밥도 아닌 긍정적인 밥이라지 않는가.


시가 헐값이라 속상하다가도 

그 시가 국밥처럼 사람들 마음을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도 멀었다는 시인의 겸양 앞에서

나는 이 시를 읽은 것이 아니라 밥처럼 시를 따뜻하게 배 불리 먹었다고 전하고 싶다.


시를 쓰는 시인도 긍정적이게 하고, 읽는 사람도 긍정적이게 하는 시.

그야말로 밥같이 따뜻한 시.




밥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밥 중에서도 엄마 밥은 단연 최고다. 궁중 음식처럼 오색 찬란한 빛깔에 가지 수많은 맛 좋은 음식이 아니어도 좋다. 엄마 밥에는 밖에서 사 먹는 음식에는 들어있지 않는 엄마의 푸근한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거기엔 저녁 반찬은 뭐 해 먹지 와 같은 매일을 살림 걱정에 자식 걱정하는 엄마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는 손 맛이 있다.


그러다 우연히 여성지에서 김정수 화가의 <진달래>란 그림을 발견했다.

진달래가 소복이 쌓인 고봉밥 같은 그림,

마치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먹냐며' 투정 부리는 내게 엄마와 할머니가 담아주시던 밥과 닮아 인상적이었던 그림은 여전히 할머니 댁에 가면 내게 고봉밥을 담아주시는 할머니의 기억이 떠올라 시선을 멈춰 서게 했다.


진달래가 밥을 대신하여 소복이 쌓여 있는, 그건 바로 어머니와 할머니의 분홍 빛 고운 마음인가 보다.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고 마음이 몽글몽글 해지는, 마음 = 사랑.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을 읽자니 김정수 화가의 <진달래>가 저절로 떠올랐다.

둘의 따뜻한 마음이 참 닮았다. 


시와 그림을 다시금 번갈아 듣고 보며 따뜻한 영감과 함께 엄마와 할머니 마음도 생각해 본다.

역시 따뜻해지는 그 무엇이 밥과 진달래로 연상된다.   


* 미술 평론가이자 행복한 그림 읽기의 조정육 선생님의 칼럼을 보면 김정수 화가에 더욱 반해 버렸다.

기회가 되면 <엄마가 차려주신 밥상> 진달래 화가 김정수 님의 그림을 한번 찬찬히 살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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