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ONLY LIVE ONCE
CAMINO DE SANTIAGO
Roncevaux/Larrasoana
+2 Day / 2016.07.06
: 25km (Iphone record : 30.7km)
이른 아침, 다시 길에 올랐다.
비 예보가 있어 배낭에 레인커버를 씌운 채 걷기 시작했는데, 비는 내리지 않았다.
어제는 돈키 서비스 덕분에 실제 배낭의 무게와 심적 부담감이 오늘의 절반이었데, 오늘은 배낭에 쌀과 라면과 같은 비상식량과 꽁꽁 얼린 얼음물까지 넣고 보니, 배낭의 무게가 족히 13kg 는 되는 것 같다. 모든 게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인생의 무게라고 생각하니 장비(壯悲)한 마음마저 든다. 그렇다고 여행 초반인 지금. 배낭 속 짐 중 어느 것 하나 버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늘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30km가량 걸을 예정이다. 아일랜드를 떠날 때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하는 경외심이 들었다. 특히 국경을 넘어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은 더욱 그렇다. 작년에 나는 한국에서 잘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유럽에서 일 년 살아보기'라는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기 위해 영국 옆의 섬나라 아일랜드로 떠났다.
이십 대에는 가족과 회사라는 족쇄를 차고 젊은이들이 흔히 간다는 유럽 배낭여행 한 번 가지 못했다. 해외여행이라곤 몇 해 전 필리핀 세부로 휴양 삼아 떠난 게 전부였으니. 어린 친구들처럼 어디론가 훌쩍 떠나 무언가 도전해보고 싶은 열망이야 가득했지만, 늘 현실의 벽에 부딪쳐 주저앉아 있었다. 돌이켜보면 누구도 내게 떠나지 말라고 한 적은 없는데. 스스로가 만든 현실이라는 장벽 속에 '언젠가'라는 막연한 허상만 붙잡고 살았던 것이다. 마치 로또에 당첨되길 바라면서 로또를 한 번도 산적 없는 사람처럼.
그때도 나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막상 떠나거나 시작하면 별 거 아닌데, 시작 전에는 늘 두렵다. 서른이 넘어 한국으로부터 이역만리 떨어진 아일랜드에서 일 년 간 살면서 체득한 것이 몇 있는데. 그중에서도 무언가 도전할 때 뒤따르는 두려움은 허구(虛構)라는 것이다. 아직 가보지 않았고, 해보지 않았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막연히 드는 두려움. 실체는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 아일랜드도 스페인도 나와 국적이 다르고 머리 색이 다를 뿐 모두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에 더 할 것도 덜 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떠나 보면 뜻밖의 인연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들에게서 도움을 받기도 하고 내가 도움을 주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 처음에 낯선 곳도 이내 익숙해지고 좋은 인연들과 생활을 쌓게 될 것이다. 고로, 나는 할 수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속 그리스인 조르바가 내게 말하는 것 같다. '머릿속으로 너무 많은 계산을 하지 말라'라고.
가슴속 열망했던 것들을 하지 못한 채 살면서 내내 미련을 남기는 것보다는, 조금 서툴고 완벽하지 못해도 부딪치며 열망했던 것을 하나씩 해보며 살자. 나에게도 서른이 넘어 직장을 관두고 유럽에서 일 년 살아보겠노라 했을 때는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YOU ONLY LIVE ONCE. 머뭇거리기엔 인생은 짧다.
순례길은 마을을 통과하기도 하고 개울을 건너 산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다시 건초 작업이 한창인 들판으로 나기도 한다. 매일 25km가 넘는 길을 걷는다는 건 분명 고역이긴 하지만 걸으며 마주하는 자연의 풍경과 소리는 그야말로 신의 축복이다. 또한 만나는 순례자들마다 부엔 까미노(Buen Camino)하고 인사를 나누다 보면 어느덧 걷는다는 것이 그저 힘들지만은 않다.
길에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나오리라는 믿음이 있으며, 곳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자연과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있다. 나 혼자 힘든 게 아니라 저들도 분명 힘들 테지만 저렇게 잘 견디고 있지 않은가 하는 동질감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 저마다의 인생의 무게라 일컫는 배낭을 메고 고행을 치르면서도 모두 스스로 택한 길이기에 불평을 하기보다는 주어진 것에 감사할 것이다. 걷다 보면 순례길은 우리 인생과 참, 닮았구나 싶다.
비가 올 듯 오지 않는 스페인의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들판을 지나 한참을 걷다 보니 마을이 나타났다. 산티아고의 길을 걷다 보면 중간중간 마을을 만나게 되는데, 마을에는 반드시 교회나 성당이 있기 마련이다. 스페인 인구의 70% 이상이 로마 가톨릭을 주교로 가지고 있으며 특히나 성모 마리아에 대한 숭상이 남다르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또한 스페인에서는 규모가 작으면 교회, 크면 성당이라는 것 외에 한국에서 느꼈던 교회와 성당의 이질감은 없었다.
마을을 만나면 기쁜 이유는 바로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인데. 더운 날씨에 체력이 고갈될 때쯤이면 중간중간 나타나 주는 바르(BAR)는 참새방앗간 같은 곳이다.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바르(BAR)에서 시원한 얼음이 동동 띄어진 맥주나 콜라를 한잔씩 하는 것은 태양이 활활 타오르는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 같다.
마을에 도착하여 시원하고 꿀 맛인 음료수로 목을 축인 후에는 크레덴셜(Credential)에 스탬프를 찍는다.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자 등록을 할 때 받는 크레덴셜에 내가 거쳐가는 마을의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데, 교회나 바르(BAR)에 가면 순례자를 위한 스탬프가 마련돼 있다. 각 마을의 특색에 맞게 교회와 바르(BAR)에 따라 다양한 문양을 가지는 것이 이채롭다.
모든 휴식이 끝나면 마을을 떠나기 전. 교회나 성당에 가서 이 길을 무사히 마치길 나와 함께 걷는 이들의 안녕과 멀리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의 평안을 비는 일도 잊지 않는다.
더위에 지친 나의 맥주 사랑은 마을을 만날 때마다 계속되는데 라라 소아나(Larrasoana)에 도착하기 전 또 다른 마을 주비리(Zubiri)에서도 맥주로 영혼을 달랬다. 주비리(Zubiri) 마을은 예뻤지만 우린 라라 소아나(Larrasoana)까지 가기로 했기에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목적지로 향했다.
스페인의 작렬하는 태양을 머리에 이고 드디어 이 틀째 순례길을 마치고 라라 소아나(Larrasoana)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공립으로 운영되는 무니시펄 알베르게에 머물기로 했다. 알베르게의 시설은 다소 열악했지만 굉장히 나쁜 수준은 아니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하는 것이다. 세탁기가 있는 알베르게가 대부분이지만 사용자가 많아서 기다려야 할 수도 있고, 세탁기와 건조기 비용을 이중 부담해야 하므로 경비를 아끼고자 한다면 손빨래를 추천한다. 비용은 보통 세탁 €3, 건조 €3인데 알베르게마다 건조가 조금씩 더 비싼 경우도 있다. 손빨래를 하면 볕이 좋은 날에는 세네 시간이면 빨래가 마르기에 충분하다.
샤워와 빨래를 마치면 일행은 슬슬 식사를 하기 위해 모인다. 레스토랑에 가서 먹을지 슈퍼마켓에서 장을 봐서 요리를 해먹을지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머문 알베르게는 취사가 가능했고, 모두 피곤한 상태여서 누가 요리를 할 지 머뭇거리는 사이. 휘가 토마토 파스타를 해주겠노라 해서 슈퍼르메르카토(Supermercato)에 가서 장을 보기로 했다.
마을의 작은 슈퍼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볐는데 어떤 중년 여성이 계란을 사면서 자신이 필요한 개수는 이만큼이라며, 남은 계란을 모두 베드로에게 주었다. 그래서 베드로가 얻은 세 개의 계란 후라이와 휘가 만든 토마토 파스타로 맛있는 저녁 상이 차려졌다.
알베르게의 공용 주방과 다이닝 테이블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오늘의 고단함을 맛있는 식사로 달래고 있었고, 마당 한가운데에는 아빠가 모두 다를 것 같은 네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이 어미 고양에게 재롱을 부리며 밥을 달라고 야옹거렸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서 바르(BAR)의 벽면에 걸린 대한민국 국기와 아일랜드 국기가 나를 보며 웃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응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부엔 까미노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