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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작 Mulgogi Jul 08. 2017

내 인생의 무게는 13kg가 아닌 10kg면 충분하다

CAMINO DE SANTIAGO

Larrasoana/Trinidad de Arre

+3 Day / 2016.07.07

: 10.5km (Iphone record : 21.3km)

오전 5시 10분, 우리 일행이 알베르게를 나설 때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매년 7월 6일부터 14일까지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 있는 팜플로나(Pampelune)에서는 도시의 수호성인인 산 페르민(San Fermín)을 기리는 산 페르민(San Fermín) 축제가 열린다. 스페인 삼 대 축제 중의 하나인 이 축제가 바로 어제부터 시작되었다.


축제 기간 동안 팜플로나(Pampelune)에는 대략 백만 명의 사람이 몰려든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다 보니 숙박할 장소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고,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관광객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만큼은 10km만 걸어 팜플로나(Pampelune) 직전 마을에서 숙박을 하고, 잠시나마 산 페르민(San Fermín) 축제를 즐기기로 한다.

그런데 비가 예사롭지 않다.


비옷을 입고 등산화의 끈을 단단히 동여매고 알베르게를 나섰지만 비 내리는 산 길은 매우 위험해 보였다. 해뜨기 전이라 한 치 앞이 잘 보이질 않는데 휘와 나는 랜턴마저 없어서 베드로가 가져온 두 개의 작은 랜턴 불빛에 의지하며 걸어야 했다. 산속에서 무언가 동물의 형체가 튀어나올 것도 같았고, 옆에 난 개울가에서는 비가 많이 내린 탓에 물소리가 범람할 듯 선연하게 울려 퍼졌다.


나의 앞에서 휘가 작은 헤드형 랜턴으로 길을 밝히며 걷고, 뒤에서는 베드로가 조금 더 큰 손전등으로 우리 셋의 발길을 비춰 주었다. 배낭의 무게와 함께 내리막 길에서 각자 미끄러질 뻔 하기도 여러 번. 그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염려하며 지켜주고 있었다. 이 친구들이 없었다면 혼자 이 길을 어떻게 걸었을까 생각하니 두 친구가 참, 든든하고 고마웠다.


그때, 베드로가 말했다. " 누나, 이 길 다 걷고 나면. 군대도 가실 수 있을 거예요."라고. 우스갯소리였지만 공감이 가서 우리는 키득키득 웃으며 다시 걸어나갔다. 순례길을 걷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나와 한 약속을 이 길의 끝에서 지키게 된다면, 나는 나와의 신뢰를 한 뼘 더 쌓게 될 것이었다. 그 신뢰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 세상 어디에 가더라도 나는 이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어려움을 잘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산속을 거의 빠져나왔을 때 즈음.

멀리 동이 터 올랐고, 마침 비도 멈추어 주었다.

빗 속 산행을 뒤로 멀리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다.

비가 그친 후라 그런지 풀숲을 걷는데 싱그러운 내음이 콧 끝에 감돈다. 언젠가 꿈속에서 봤던 거 같은 연보랏빛 꽃 길을 지나고. 이번엔 황금빛 노란 보리인지 밀밭이 나타났다. 너무 아름다워 꿈속 같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하며 길을 계속 걸어나갔다.

그런데 아침 빗 속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 탓일까. 아니면 점점 타오르는 태양과 날씨 탓인지. 긴장이 서서히 풀린 나의 다리는 좀처럼 내 마음 같지 않다. 마을로 진입하기 전, 마지막 고비인 내리막 길에서 정신력으로 버티다시피 한 체력이 바닥이 나버린 것이다. 그대로 주저앉을 것 같은 다리를 겨우 끌다시피 하여 마을 초입의 다리를 건너자마자 Refuge Freres Maristes라는 알베르게에 도착하게 되었다.


알베르게 도착한 시간이 오전 열한 시쯤이었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염려되었다. 다행히 호스피텔로가 우리를 알베르게 내부로 안내해주었다. 알베르게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에 기념 촬영을 하는 곳이 있었는데 호스피텔로는 우릴 단상 앞에 나란히 세우더니 기념 촬영을 해주었다. 발바닥에서는 불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나의 속도 모르는 친절한 호스피텔로는 사진을 찍고, 다시 찍길 반복하며 나에게 웃으라고 한다. 어깨와 무릎이 콕콕 쑤시고, 발목도 온전하지 않음이 느껴졌다. 지칠 대로 지친 나의 모습은 사진 속에 고스란히 보이는 듯하다.

알베르게에 우리가 거의 첫 번째로 도착한 순례자들이었다. 일찍 도착하면 좋은 위치의 가장 위생적일 것 같은 침대를 선점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짐을 풀자마자 시원한 물에 샤워를 하고, 오늘은 너무 고생한 탓에 손빨래는 패스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우리는 라면 두 개와 짜파게티 하나를 끓여 먹었다. 무려 아일랜드 한인 마트에서 산 후, 이틀 동안 삭신이 쑤시며 챙겨 온 보람이 있는 맛이었다.


이제 라면으로 배도 든든해졌겠다. 호스피텔로에게 받은 마을 지도에서 우체국부터 찾아 나섰다. 우체국에 가서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묵을 한인 민박집으로 배낭 속의 불필요한 짐을 보낼 것이다. 산티아고 한인 민박 집에 일박 투숙을 하면, 민박 집에 도착할 동안 짐을 맡아준다고 한다. 산티아고의 길에는 이러한 한인 민박 집 외에도 이 마을 우체국에서 큰 마을의 우체국으로 짐을 보내면 일정기간 동안 짐을 보관해주는 시스템이 있다. 하지만 한인 민박 집으로 보내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할 것 같아서 그리 하기로 결정했다.

아일랜드에서 우연히 산티아고를 다녀온 친구를 만나 짐을 꾸리는 tip과 중간중간 꼭 먹어봐야 할 음식과 특별히 조심해야 할 지역에 관한 정보를 받았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꼭 필요한 물품만 꾸린다고 꾸렸고, 떠나기 전 배낭의 무게가 대략 11-12kg였다. 그런데 매일 걷는 동안 얼음물과 먹을 과일을 챙기다 보니 13kg 정도 되었던 것이다.


우체국에 가서 불필요한 짐을 택배로 보냈다. 무게와 부피를 차지하는 여분의 청바지. 꽤 두툼한 영어 단어 책. 스타벅스 다이어리. 탐스슈즈. 도시락 통 등. 생각해보니 이런 것들은 순례길에서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보내는 짐을 저울에 달아보니 3kg나 되었다.  


순례길에서 배낭은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라고 했던가.


지난 이틀 동안. 무엇 하나 버릴 수 없어 끙끙거리며 13kg나 되는 배낭을 메고 온 내가 미련스러웠다. 우리가 살면서 '이건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혹은 내가 감내해야 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숙명의 관계인 가족이 그러할 수 있고, 사회나 회사에서 매일 주어지는 의무와 책임이 그러할 수 있겠다.


삶의 무게를 책임감 있게 짊어지고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이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인지 아닌지를 잘 구분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굳이 내가 전부 짊어지고 가지 않아도 될 일에 대한 고민과 걱정으로 자신의 삶을 짓눌렀던 적은 없는지.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혼자서 감내하려 했던 적은 없는지. 이번 일을 계기로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


내 삶의 무게는 13kg어치는 아니었던 것 같다. 10kg면 충분했던 것을 나는 왜 3kg나 더 짊어지고 가려했는지. 이제 삶에 있어서도 더 이상 짊어지지 않아도 될 일에 대해 스스로의 삶을 짓 누르는 일은 그만두고 싶다. 좀 더 홀가분하게 살아나갈 것이다.


발목과 어깨가 너무 아파서 고생했지만, 짐을 보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렇게 인생에서도 조금은 비우고 조금은 내려두기로 한다.


우체국에서 짐을 부치고,  빵가게에서 배를 채우고 나니 체력이 금세 충전되었다.

오후에는 버스를 타고 팜플로나 시내로 가서 산 페르민(San Fermín) 축제를 즐길 것이다.


부엔 까미노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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