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SANTIAGO
Uterga/Estella
+5 Day / 2016.07.09
: 29.9km (Iphone record : 34.2km)
아침 5:40 분.
아직 어둑할 때 길을 나섰다. 순례길은 노란색의 가리비와 화살표 모양의 이정표가 곳곳에 있고, 순례자들도 자주 보이기 때문에 길을 잃기란 쉽지 않다. 반면에 동 트기 전. 갈림길에서 랜턴으로 앞뒤 좌우를 세세하게 살펴야 이정표를 겨우 찾을 수 있기도 하다. 우리는 잠이 덜 깬 탓도 있고 이정표를 찾지 못해 길을 한번 잃었다. 마지막 이정표를 본 지 까마득할 즈음, 우리 앞엔 보리밭이 나타났다. 밭고랑을 길 삼아 스마트 폰의 구글 지도를 이정표 삼아 밭과 밭 사이를 가로질렀다. 모든 길은 연결된다는 믿음으로.
보리밭을 한 시간 가량 헤매다 겨우 순례길의 정상 궤도로 들어서며, 만난 첫 마을엔 아침이 고요히 스며들고 있다. 놀이터와 교회의 풍경을 사진에 담고, 우리는 다음 마을을 향했다.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까지 4.5km 남았다. 우리가 한 시간에 대략 4km씩 걷고 있기 때문에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까지 이제 한 시간 정도 남은 셈이다.
열심히 순례 중인 달팽이를 만나기도 하고,
길을 걷다 보면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자연의 풍광에 눈을 뜨고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 길가에 핀 작은 꽃도 반갑기 마련이다.
새의 무리가 점처럼 흩어지던 또 다른 마을과 교회를 지나고서야
우린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 다다랐다.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 도착하자 환영합니다, 라는 한글이 우리를 환영해주고 있다.
많은 한국인이 순례길을 걷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는 이곳 호텔 바르(Bar)에서 아침을 먹고 가기로 한다. 보카 디오(bocadillo)랑 커피를 주문했는데 가격도 저렴하지만 순례길을 걷는 동안 the best of the best 보카 디오(bocadillo)였다. 순례길 동안 내내 회자되었던 맛이다. 부드러운 속살을 연상케 하는 빵에 내용물도 다양하고 맛있게 만든 보카 디오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런 맛.
오늘도 산 페르민 축제 기간이었기에
우린 아침을 먹으며 엔시에로(Encierro)를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길 곳곳에 자그마한 교회나 성당을 만날 수 있다.
유유자적(悠悠自適). 도시를 거닐다 보면 흔히 만나게 되는 풍경들이다.
바르(Bar)에 앉은 연인도 자전거를 타고 오는 할아버지도
¡Hola, ¡Buenos días!/올라, 부에노스 디아스/ 좋은 아침이에요!
또 다른 마을에 도착했을 즈음. 미사를 드리고 있는 교회가 있었고, 신실한 가톨릭신자인 베드로는 미사를 드리고 오겠다고 했다. 휘와 나는 더 더워지기 전에 걸음을 재촉하여 가기로 하고. 베드로와는 잠시, 안녕했다.
점점 불볕더위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무려 30km나 걷기 때문에 많은 마을과 바르(Bar)와 풍경과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길을 걷다 보면 각종 소원이나 기록을 남긴 돌탑도 자주 만나게 된다. 돌탑에서 발견한 Korean Buen Camino와 한글을 발견하면 그토록 반가울 수 없다. 나도 빠질 수 없어, 내 이름 석자를 남겼다. 난 사람 책을 읽는 글로벌 Reader 이니까. 이름도 美정, Park으로 한자, 한글, 영어를 고루 섞어 돌 위에 새기곤 다시 길을 나섰다.
앞에 가는 스페니시 남자와 오스트레일리아 여자에게
오늘 처음, 길에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앞으로 굉장히 자주 마주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쉬려고 바르(BAR)에 들렀다.
나는 얼음이 동동 띄어진 맥주를 휘는 얼음과 레몬이 띄어진 콜라를 마셨다.
그런데 한 집에서 자신의 키만 한 자전거를 끙차, 하며 집 밖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꼬마가 보였다. 그 모습이 하도 귀여워서 다가가 인사했다. ¡Hola, ¡Buenos días!/올라, 부에노스 디아스/ 스페인어로 '안녕, 좋은 아침이에요.'라는 의미다.
그랬더니 이 꼬마가 낯선 이에게 경계도 없이, 웃으며 따라 ¡Hola, ¡Buenos días!/올라, 부에노스 디아스/라고 인사를 한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했더니 흔쾌히 포즈를 취해주고 있다. 모두 길을 비켜라. 꼬마 드라이버가 나가신다.
다시 걷다가 보니 포도나무 사이로 멀리 또 다른 마을이 보인다. 또한 우리와 잠시 안녕했던 베드로가 미사를 마치고 잰걸음으로 부지런히 걸어와, 바르(Bar)에서 쉬고 있는 우리를 다시 만났고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함께 걷게 되었다.
길을 걸을 때 노란색 가리비와 화살표는 모든 순례자에게 산티아고로 향하는 이정표가 된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노란색, 가리비, 화살표만 보면 왠지 걸어야 할 것 같은 기분마저 드는 때도 올 것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아기자기 예쁜 마을. 스페인은 집집마다 꽃을 가꾸기도 참, 좋아하나 보다.
노랑으로 페인팅된 벽면에 어여쁜 화분들이 걸려 있는 집 앞에서 나도 잠시 쉬어간다. 순례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비록 힘들긴 하지만 나의 얼굴에서 가슴이 시켜서 하는 일이라는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기운이다.
곳곳에서 비치된 스탬프를 크레덴셜에 찍는 일도 길을 걷는 묘미 중의 하나다.
담장 위의 꽃과 볕에 말리는 빨래는 마을과 조화를 이루고 평화로운 오후를 그려내고 있었다.
만나는 벽마다 부엔 까미노(Buen Camino)이다.
과거에 많은 사람들이 걸었고, 현재도 걷고 있으며, 미래에도 걸어갈 이 길 위에서
마치 주문처럼 새겨진 무수히 많은 응원의 메시지를 보고 있자면 힘이 난다.
오후 2시에서 3시. 가장 볕이 뜨거운 시간. 우리는 또 다른 마을에 도착했다.
아직 갈 길은 멀고 배도 고파와서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심사숙고해서 고른 레스토랑에서 빠에야와 피자와 맥주를 마셨다.
점심을 먹는 동안 신발은 벗어 볕에 잘 말려 두고, 발도 잠시 휴식을 취하게 한다.
잘 먹고, 잘 쉬어야지. 또 잘 걸을 수 있다.
가장 뜨거운 태양을 피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다시 에스테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번엔 대체로 평지였다.
길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풍경들에 민들레 갓털도 곁들여 담아 본다.
태양과 나무가 함께 춤을 추며
아기 당나귀와 엄마 당나귀에게 여유로운 오후를 선사한다.
아기 당나귀는 우리에게 '부엔 까미노(Buen Camino)' 하고 말하려는 것 같다.
드디어 오늘의 긴, 여정을 마치고 에스테라(Estella)에 도착했다.
시원한 물에 목을 축이고, 알베르게로 향했다. 스페인에서 영어가 잘 안 통할 때가 많아서 문제가 생기면 손짓 발짓을 모두 동원해야 할 때가 있다. 오늘 알베르게의 스태프 아주머니는 영어를 잘 하시고 아주 친절하시다. 한국어로 'thank you'가 뭐냐고 물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알려드렸더니 곧잘 따라 하신다.
샤워와 빨래를 하고 마지막 비상식량인 너구리 라면과 검정 현미밥을 해 먹었다. 오면서 몇 번이나 만났던 일본인 친구가 라자냐(Lasagna)를 만들었는데 우리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베드로는 교회에 가보겠다고 나가고, 휘와 나는 얼음에 레몬이 동동 띄어진 콜라를 한잔씩 하며 느긋한 여유를 즐겼다. 휘는 탄산에 중독된 거 같다며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제 얼음에 레몬을 띄어 마실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떤다. 나는 그 말에 동감한다.
오늘은 무려 30km를 걷는 긴 여정이기도 했지만 산티아고의 길 중에서도 가장 이채로운 하루였다. 아침에 길을 잃긴 했지만, 컨디션도 무난해서 30km 여정도 거뜬히 마쳤고. 중간중간 만났던 아기자기하고 예쁜 마을과 성당들. 그리고 귀여운 스페니시 꼬마와 당나귀들이 그러했고, 지금 마시고 있는 이 탄산과 얼음과 레몬의 조화가 그러하다.
가끔, 길은 잃어도 좋은 것이 되었고
사람들을 만나면 먼저 인사하는 법을 배운다.
자아, 좋은 밤 보내세요!
¡Buenas noches! /부에 나스 노 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