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상황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쉽게 자기를 의심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 나는 완전히 전자에 해당한다. 너무 대단한 일에는 잘 도전하지 않고, 도전하더라도 실패할 때를 대비한다.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나의 무능함에 주목하는 편이다. 지난해에도 회사가 잘 안 될 때 왜 더 집중하지 못하는지 나 자신을 한심하게 여겼다. 그 결과 멘탈은 더 너덜너덜해졌고 점점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나에게는 재산이 하나 있었으니 긍정심리자본이라고 불리는 것 중 하나인 '회복탄력성'이다. 다운된 상태가 길어지다 보니 사람을 만나는 일도 피하게 되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평소와 달라진 내 모습이 불편했다. 일부러 노력해서 사람들을 더 만났다. 그러자 약간 충전이 되면서 정신이 차려졌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를 찔러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 밖에 없었다. 나 자신만 나에 대한 공격을 멈추면 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도나도 하면서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고, 신기해하는 사람이 있다.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바로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최근에 만난 선배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선배는 내가 신입생일 때 나와 같은 수업을 듣는 열네 살이 많은 선배였다. 선배는 대학생일 때 사업을 벌이고 주식투자도 해보다가 학교를 너무 오래 쉬어 재입학을 해야 했다.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은 거침없이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우리 회사 대표도 회사를 한 번도 다녀보지 않고 창업을 했고, 내 남편도 아무도 안 쓰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결정할 때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에 신경을 적게 쓴다.
내 이야기를 들은 선배는 나에게 '그럼 너도 이제는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 쪽으로 건너오게 된 거야?' 하고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아니라고 했다. 선배 그렇게 되려면 다시 태어나야 돼요. 저는 그냥 저를 의심하는 부류의 사람이고요 거기서 약간 레벨업 한 것뿐이에요.
한 때는 세상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가 될 때도 있었다. 나도 저렇게 열심히 해야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른 사람인가, 한탄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게으르다는 평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스스로는 늘 내가 게으르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나만의 속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나라도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다. 만약 더 열심히 하고 싶다면 좀 더 하면 그만이고, 그게 안된다면 지금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이구나, 하면 그만이다. 주변 사람들 보다 내가 더 빠른가 느린가 가늠하지 않고 내 속도를 느껴볼 수 있어서 고효율 에너자이저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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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심리자본이란
루산스(Luthans)에 의해 체계화된 개념으로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긍정적 심리 특성이다. 조직 효과성에 기여할 수 있는 점에 주목해서 '자본'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1. 낙관주의 :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성향
2. 자기효능감 : 특정 과업을 잘 해낼 수 있다는 개인의 믿음
3. 희망 : 긍정적으로 동기부여된 상태
4. 회복탄력성 : 역경, 좌절 등의 상황에 빠졌을 때 이를 극복하고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성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