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현 소설, <수상한 퇴근길>
* 출판사 서평단을 통해 제공받은 책이지만 주관적으로 작성한 감상평입니다:)
'희망퇴직'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회사에서 잘리게 된 고 대리.
하지만 잘렸다는 이야기를 아내와 딸에게 차마 하지 못해
매일 출근 시간에 양복에 구두를 차려 입고 집을 나선다.
울리지 않는 전화, 막막한 미래, 그리고 아내와 딸을 향한 죄책감과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그의 발걸음을 한없이 무겁게 한다.
그래도 갈 곳 없는 고 대리의 출퇴근길은 매일 계속된다.
책이 시작되자마자 주인공인 고 대리는 회사에서 잘린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책이 꽤 두꺼운데 주인공이 벌써 잘렸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는 거지???
뭔가 다른 드라마틱한 일이 생길까?
사실을 말하자면 고 대리에게는 드라마틱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
그는 이제 연락 오지 않는 회사 사람들에게 분노하고,
당장 갈 수 있는 취직자리가 없는 현실에 초조해하고,
그럼에도 아내와 딸과 보내는 오붓한 시간이나
혼자 집에서 낮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즐거워진다.
그리고 우연히 아파트 단지에서 알게 된 '분리수거남'과의
악연 같은 만남이 계속되며 조금씩 편협했던 생각에서 깨어난다.
마치 우리의 일상이 흐르는 것처럼, 우리의 생각이 변하는 것처럼,
우리의 하루가 매일 똑같은 것 같지만 매일 다른 것처럼 고 대리의 하루도 흘러간다.
<수상한 퇴근길>은 400페이지가 넘는 꽤 많은 분량인데도 전혀 두껍게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쉽게 읽히기도 하지만 홀린 듯 계속 고 대리의 삶을 쫓아가게 된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데도 그의 내일이 궁금하고,
그의 생각이 궁금해지고, 그의 찌질한 모습에 한심해했다가도
어느새 그를 응원하게 된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힘이 그런 부분인 것 같다.
우리 주변에 일어날 수 있는 일, 너무나도 평범한 주인공,
그리고 그의 모든 내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성장하는 고 대리의 모습을 보며 함께 배우게 된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힘들게 자신이 버는 돈의 가치를 알고,
누구도 처음부터 잘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살아가다보면 쉽게 잊는 지극히 당연한 것들을 고 대리와 함께 다시 찾아가는 기분이랄까.
"언젠가 좋은 날 오겠죠." 이 말을 희망처럼 내 마음에도 새긴다.
좋은 날이 올 거예요.
아니, 고 대리에게 너무나도 착한 아내와 사랑스러운 딸이 있는 것처럼,
평소라면 친해지지 않았을 분리수거 남과 친해지며 새로운 것들을 배우게 되는 것처럼.
어쩌면 좋은 날은 이미 내 곁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들여다보지 않아서 모르는 것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