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 만난 사이>
업종에 따라 정도에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사회에 속해 일을 시작하게 되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처음 듣는 지역에서 자란 사람, 성격이 아주 다른 사람, 목소리가 좋은 사람, 함께 있으면 기 빨리는 사람 등등. 갓 스무 살을 넘겨 알바를 하러 오신 분들부터 나보다 나이가 서른 살 많은 부장님들까지 연령대도 참 다양하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2019년부터는 휴대폰에 낯선 번호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다시는 연락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번호도 혹여 다른 일로 다시 마주치게 될까 지우는 것을 주저하게 됐다.
한때는 체력과 인류애가 넘쳐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에게 다정할 수 있을 것 같은 날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었을 거다.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도, 대학 친구들처럼 연령과 입장을 떠나 밑도 끝도 없이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일을 챙기고, 고민을 털어놓거나 과자를 건네고, 고맙거나 서운한 마음을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입사를 하고 그런 마음이 사라지기까지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회사 사람들은 친구들이 아니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세상에는 아주 많았다. 몇 번의 감정 소비가 있은 후에는 기력과 마음을 가장 덜 쓰는 관계의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왜 이렇게 유독 일로 만든 사람들은 어려울까. 일반적인 조직에서, 사원과 팀장, 부장 같은 직책에 따른 역할이 다르고 회사가 각각에게 요구하는 퍼포먼스의 결과가 다르다. 부장, 팀장, 과장, 사원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팀은 결국 같은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입장은 전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라는 거다. 듣고 싶은 말이 전부 다르다. 그러니까 한 번씩 서로의 상황을 이해해 주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을지라도 정신없고 팽팽한 업무시간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기란 너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분명한 점은, 회사에서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나고 인연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커다란 행운이라는 것이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만 공유할 수 있는 공감대나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합이 잘 맞는 사람들과는 또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간혹 일이 아닌 취미 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만약 조금의 근력이 있다면 잘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마찰에서 나를 돌아볼 수도 있다. 최근에 퇴사를 한 나로서는, 전 직장의 사람들에게 손익을 따지지 않고 안부를 묻거나 반가운 얼굴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