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짐이 많든 적든 거리가 멀든 가깝든, 살고 있는 공간을 옮기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이사를 하기 전에는 며칠이고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공간들을 둘러보고, 이것이 정말 최선인지 끊임없이 재고, 여러 번 해 보아도 늘 새로운 계약과 법과 후기들을 공부하고, 돈을 마련한다. 이때부터 이사가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거다. 어찌어찌 계약을 마치고 나면 조금쯤 붕 떠 있는 일상을 살아내면서 잘 쓰지 않는 물건들을 버리고, 중요한 물건들을 챙기고, 펼쳐져 있는 짐을 박스에 차곡차곡 담아 분류하고, 이사를 하기 직전에는 여행을 온 것처럼 최소한의 물건들만 사용하면서 산다. 살아오던 공간을 정리함과 동시에 새로운 공간에 대한 계획도 세워야 한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게 되면 모든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무사히 이삿짐을 전부 집에 집어넣고 나서도 몇 달 동안은 조금씩 짐 정리를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또 이사를 해야 하는 날이 다가오는 거다. 내 집이 없기에 드는 수고로움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열 번 조금 넘게 이사를 다녔던 것 같다. 가장 멀리 갔던 이사는 서울에서 스페인으로 했던 이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캐리어 하나, 작은 캐리어 하나에 나의 삶이 전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짐이 적었는데. 열 달을 살았지만 갈 때도, 올 때도 그랬으니 당시의 나는 휙휙 잘 버리면서 다녔던 것 같다.
최근에는 처음으로 포장이사를 했다. 애인과 결혼을 하고 나니 짐이 두 배가 아니라 세 배, 네 배가 되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는 물건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캐리어 하나에 몽땅 집어넣을 수 있던 나의 짐이 커다란 이사 트럭 하나를 훌쩍 넘게 채울 만큼 많아졌다. 놓고 쓸 땐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물건이 많다는 것은 불편하기도 한 일이다.
이사할 때마다 짐을 풀고 싸기를 반복하다 보니 깨달은 것이 있다. 생각보다 내가 꾸준히 잘 사용하는 물건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걸치고 다니는 옷은 정해져 있고, 한 번에 놓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양도 정해져 있으며, 읽지 않고 쌓아놓는 책과 쌓아 놓고 들여다보지 않는 물건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대부분 아마 앞으로도 사용하지 않을 확률이 높은 것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막상 버리려고 하면 아깝고, 언젠가 쓰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게 되는 것 같다. 나는 그런 것들을 언제쯤 내다 버릴 수 있을까. 다음 이사는 조금 더 가벼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잘 버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