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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Nov 14. 2022

밥에 진심인 사람

<밥>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먹는 것)에 참 진심인 것 같다. 잘 먹는 사람을 복스럽게 먹는다고 이야기하고, 먹방 프로그램이 성행하고, 안부를 묻거나 관용적으로 쓰는 말뿐만 아니라 욕을 할 때에도 밥 소리가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밥은 먹고 다녀? 밥 사라, 입에 풀칠은 한다, 밥그릇 지키기 바쁘다, 국물도 없을 줄 알아라,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 죽도 밥도 안 되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냐, 금강산도 식후경, 밥맛 떨어진다, 이런 밥통...


 이런 '밥'들은 주로 식사나 끼니를 뜻하겠지만, 밥 중의 밥은 역시 따뜻하고 차진 쌀밥이 제일이 아닐까 싶다. 더군다나 마음 어딘가가 헛헛할 때라면, 면이나 빵보다는 역시 밥이다. 참기름과 간장만으로도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낼 수 있는 갓 지은 밥. 계란과 김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다. 고슬고슬하게 볶은 돼지고기 소보로와 좋아하는 야채, 버섯, 해산물을 올려 지은 냄비밥. 국물이 없어도, 한 그릇으로 충분히 속이 따뜻해진다. 소고기, 삼겹살, 곱창, 떡볶이 등등의 마지막에 방점을 찍는 볶음밥은 약간 모자랐던 위장에 무언가를 더 시키지 않아도 부담스럽지 않은 훌륭한 안주다. 씹을수록 달고, 입에 착착 감기고,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자극적으로 주린 배를 채워 준다.


 유튜브를 보거나 뭔가를 끄적거리며 혼자 먹는 밥을 좋아하긴 하지만 지금까지 혼자 먹은 밥보다는  둘 이상이서 모여 먹은 밥이 더 많은 것 같다. 둘이 먹는 밥은 혼자 먹는 밥과 좀 다르다. 귀찮다고 거르던 식사를 번갈아 챙기게 된다든지, 혼자 먹을 때에는 반찬통에서 그대로 집어 먹던 반찬을 둘이 먹으니 그릇에 덜어 먹게 된다든지, 배달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을 수 있다든지 하는 것들이 그렇다. 그래서인지 나와 애인은 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로 살이 많이 쪄 버리고 말았다. 지금도 엄마는 함께 밥을 먹을 때마다 너희가 밥반찬이라고 말하곤 한다. 떨어져 있다가 얼굴을 보면서 밥을 먹으니 한 그릇 먹을 밥도 두 그릇 먹게 된다고. 혼자 살 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말인데, 둘이 살기 시작하고나서부터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다.


 그러니까 밥은 그 자체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먹을 때 행복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여건이 되는 한 집에 초대하는 손님들에게 밥을 차려주고 함께 술을 마신다. 내놓는 요리에 조금 더 정성을 들이고, 입맛을 알아 가고,  먹고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게 고작 몇 분이나 몇 시간에 걸쳐 사라져 버리는 음식일지라도, 조금 사치스럽고 소비적이고 풍요로운 것과 시간이 우리 사이에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으로 살아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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