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라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omas Dec 17. 2017

보라매 <3>

3화 - 배농, 병문안



배농


  얼마나 잠들었을까. 나는 무기력하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몸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적막이 흐르는 병실 안. 다른 환자들은 아직 자는 걸 보니 새벽 시간대인 것 같다. 그냥 꿈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눈이 떠짐과 동시에 느껴지는 통증이 이것은 현실임을 깨닫게 한다. 고통을 참으며 힘없이 침상에 누워 있었다 보니 오전 회진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침상에 앉아서 선택의, 주치의 외 레지던트로 추정되는 두 명의 의사까지 총 4명과 얼굴을 마주했다. 이들은 내 병을 꿰뚫어 볼 듯한 표정으로 나를 관찰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오늘 피부과 진료를 잡았으니 갔다 오라고 했다. 피부과에서는 어떤 진단을 내리는지 벌써부터 겁이 난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대충 씻은 다음 피부과 진료를 받으러 갔다. 의사 선생님운 어제 붙여 놓은 드레싱을 살짝 드러내더니 내 진료 기록을 모니터로 확인했다. 우선 배농을 어느 정도 하고 항생 연고를 줄 테니 드레싱 할 때마다 발라달라고 주치의에게 부탁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선 다른 진료실로 이동해 봉와직염 부위의 농을 짜냈다. 어제 받은 고통의 연장선에서 나는 한 번 더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는 일상적인 일인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배농을 시켰다. 그리고 환부를 진정시키기 위해 빛을 쪼이는 기계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진료 대기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여기 피부과 환자들 중에선 내가 제일 중증 환자인 듯하다. 나는 왼뺨에 또다시 손바닥 만한 드레싱을 받고 나서야 병동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농을 짜낸 곳은 마치 심장이 달린 것처럼 쿵쿵거렸다. 내 가슴도 불안함에 진정되지 않았다. 낫기는 하는 걸까. 저녁부터 항생제 주사는 하루 4번으로 늘어났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큰 병원에 와서 입원할걸 후회감이 들었다.





병문안


  병실에서 저녁을 먹고 좀 누워있으니 고갱이에게 연락이 왔다. 퇴근하고 잠시 들린다고 했다. 내 첫 병문안 게스트는 고갱인가. 그러고 보니 고갱이는 내가 군대에 갔을 때도 가장 먼저 면회를 와준 친구였다. 면회소에서 녀석이 사들고 온 피자를 먹고 탁구를 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갱이 보라매 병원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에 간호사가 흉부 ct 촬영을 하고 오라고 했다. 패혈증으로 전이되고 있는지 검사하기 위해 오더가 내려온 모양이다.

  1층에서 만난 고갱은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원래 집 근처 피시방에서 만나 롤 한 판 하는 게 우리들이 주말을 맞이하는 방식인데 병원에서 보게 되다니. 나는 지난 일주일 사이 벌어진 일들을 쭉 들려줬다. 고갱이도 군대 있을 때 봉와직염에 걸려봤다고 했다. 엄지 손가락에 염증이 생겼었는데 재발하고 또 재발해서 두 달간 고생했다고 했다.

  "그때 너무 아파서 그냥 엄지 손가락 절반 없어도 되니까 염증만 없어졌으면.. 했다니깐."

  "근데 그게 얼굴에 났다고 생각해봐. 미친다 진짜.."

  참으로 웃픈 광경이었다.

  고갱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올라가서 피검사, 가래 검사, 소변 검사를 했다. 열은 계속 나고 오늘 배농 한 뒤로 통증은 더 심해진 것 같다. 고통에 불타는 금요일 밤. 불금도 이런 불금이 없다.

 


(4화에 이어서)










매거진의 이전글 보라매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