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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외교관의 마음

당신이 속한 '나라'는 무엇인가요 '

by 왕씨일기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자주 해주시던 말씀이 있다.


"눈에 띄는 일은 하지 말고, 항상 조심해야 한다. 너는 외국인이니까 사람들은 그 자체에서 색안경을 끼는 부분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고, 혹여나 어떤 일에 휘말렸을 때는 배척당하기 쉬운 위치에 있다는 걸 언제나 잊으면 안 된다".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될 수많은 상처의 순간 속에서 자식을 보호하고 싶었던 아버지는 자주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삶에서 오는 이 진실된 충고를 듣고 자란 나는 훌륭히도 소심하고 나의 '색'을 드러내지 않는, 한껏 움츠린 채로 사는 어른이 되었다. 어디서 부조리한 일을 당해도 참고, 내 이름이나 얼굴이 드러나는 일, 나아가 나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일은 피할 수 있으면 모두 피했다. 고개를 숙이고 큰 소리를 내어 자기주장을 하기보다는 큰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주어진 것에 적당히 수긍하면서 살아왔다.


어느 날은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일본 국적을 가진 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 일이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항상 자신감 넘치고 당당하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 사는 그 언니가 언뜻 걱정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언니는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며 사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고. 남들과는 다른 점들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대하는 것들이 무섭지는 않았느냐고.


그때 언니가 해주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우리는 매일 한국 국적의 평범한 한국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내지만, 그 각 개인들의 삶에서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만날 일은 생각보다 드물고, 심한 경우에는 우리를 만났던 그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서 '나'같은 사람은 단 한 명밖에 못 만날 수도 있는 거라고. 그렇다면 내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 그 사람이 가지게 되는 이 '한국에서 태어난 외국인'의 이미지를 전부 결정짓게 되는 것이니 나는 더더욱 엄격하게, 또 당당하게 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내가 대변하게 되는 수많은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순간 머리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 언니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기 전까지 나는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항상 나의 '정체'를 숨기기 급급했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는 나의 행동이, 나의 태도가, 내가 이룬 것들이 내가 속한 집단을 대변하는 유일무이한 단 한 사람이라는 무거운 짐을 진다고 생각하니 자세를 바로 세울 수밖에 없었다.


'나'라는 사람은 내가 이미 만나온, 그리고 앞으로 만나나 갈 모든 사람들에게 '화교'란 이런 사람들이구나,라는 어떤 기준점을 세워주는 대변자가 된다. 이건 한국, 대만, 일본과 같이 세계지도에 나와있는 하나의 국가를 떠나서 이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외국인', 나의 경우는 '화교'라는 나라의 외교관으로서 한국이라는 타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것을 깨닫게 되니 내가 '삶'을, 나의 '신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언제나 나 스스로가 1인 외교관이라는 마음을 되새기며 살아가는 것, 나의 '집단'을 대변하는 사람으로서 충분히 올곧게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계속 되물으며, 부끄럽지만 나름의 대의를 품고 살아가게 되었다.




살아가다 보면, 나와 같은, 또 나와 같지 않은 수많은 '소수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소수자'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집단을 대변하며 살아가고 있다.

티브이 매체에서든 어디서든 그런 사람들을 보게 되면, 그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를 대변하는 외교관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나 또한 한 사람의 나의 '나라'의 1인 외교관으로서

항상 응원을 하게 된다.


"우리 오늘도 힘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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