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하게 알고 있던 세계와 직접 그 세계에 발을 담그게 되었을 때의 괴리가 가장 큰 영역이 육아가 아닐까. 내가 가지고 있던 이상은 아이와 함께 숨 쉬는 순간 현실로 변한다. 그렇게 나는 어린이집 하원을 하는 순간, 진짜 나를 만나게 된다. 보기 좋은 껍데기는 회사에 놔두고, 진짜 나의 본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지만 피할 수 없다.
보통 하원시간이 4시 정도이지만, 월요일에서 금요일로 가면서 오후 4시로 맞춰져 있던 하원시간은 자연스럽게 오후 5시로 향한다. 이게 하루에 3시간씩 운전하며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아빠의 비애라고나 할까. 고속도로에 사고가 발생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하원시간은 강제 오후 5시다. 생각보다 고속도로 사고가 많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내려오는 눈꺼풀을 위로 치켜올려주는 건 졸음껌이다. 출근할 때 8개, 퇴근할 때 8개, 하루에 졸음껌만 16개 정도를 씹는다. 그렇게 도착시간이 계속 늘어날 때, 난 와이프에게 전화를 걸어 말한다.
"키즈노트에 하원시간 늦는다고 알림장에 좀 써줘!"
"응 알겠어."
그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고, 운전을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 몸뚱이는 어린이집 문 앞에 도착해 있다.
"새싹반 OO요~"
"네~ 아버님!"
작년만 하더라도 걸어 나오지 못했던 아들이 이제는 뛰어나온다. '우리 아들이 정말 많이 컸구나'라고 감성에 젖어있는 그때, 아들이 내 얼굴을 보면서 말한다.
"엄마!”
그래. 아무리 내가 매일 하원을 해도 엄마를 찾는 아들. 순간 정신이 바짝 든다. 이렇게 감성에 젖어있다간 오늘도 집에 제 때 들어가긴 힘들다. 선생님께서는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들 중에서 부모님이 알아야 할 내용들이나, 추가적으로 어린이집에서 활동했던 이야기들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신다. 어떻게 보면 내가 회사를 다니는 것처럼 선생님들도 이곳이 직장이신데, 이렇게까지 우리 아들을 잘 지도해 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게 아들과 나는 어린이집을 나와 자연스럽게 놀이터로 향한다. 분명 나는 신문에서 저출산 국가라고 들었는데, 이곳만 보면 분명히 저출산 국가는 아니다. 세상에 모든 아이들이 밖에 나와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특히 날씨가 더 좋은 날에는 놀이터가 문전성시다.
놀이터를 한 곳만 갈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어른들이 1차로 밥을 먹고 자연스럽게 2차로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것처럼 아들은 어린이집 앞에 있는 놀이터를 1차로 시작해서, 아파트 안에 있는 놀이터에 2차로 꽉꽉 채워야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뭔가 나의 루틴에 아들이 들어와 있는 게 아니라, 아들의 루틴에 내가 갇힌 느낌이랄까?ㅎㅎㅎ 그렇다고 놀이터를 가지 않을 수도 없다. 이제 3살이 되니 아들의 에너지가 너무 폭발적으로 늘어나다 보니, 놀이터 1,2차를 하지 않는 날에는 저녁에 잠에 들지 않고 나의 수면 시간을 위협하기도 한다.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는 나에게 놀이터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애증의 공간이다.
1차 놀이터에는 전 연령이 모두 모여있다. 아직 걷지 못하는 아이부터 이제 막 걸음마를 한 아이, 그리고 뛰어다니는 어린이들, 막 하교를 하는 학생들, 그 부모님들,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거의 세대 대통합의 모습을 여기서 목격할 수 있다. 그만큼 아들도 여기서 보는 모든 게 매일 신기한가 보다.
2차 놀이터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여기서는 본인의 놀이터 놀이 스킬을 향상하거나, 개미와 각종 곤충들과 함께 소통을 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2차 놀이터에서 1차 놀이터에서 못했던 것을 하나 두 개씩 해보기도 하고, 개미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본다. 그러다 갑자기 나를 보고 말한다.
"아빠, 그네!"
"그네 태워줘?"
"같이"
그렇게 한 동안 그네를 타고 시계가 6시를 넘길 때쯤 아들에게 말한다.
"이제 집에 가자~!"
"아빠! 집에 안 가!"
그리고선 울기 시작한다. 그래!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