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으로 가는 길
왜 그랬을까? 침대에서 나와 창밖을 보는데 '오늘은 스타벅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날 있지 않은가. 오늘 하고 싶은 일이나, 가고 싶은 곳이 뜬금없이 떠오르는 경우.
평일 루틴에 스타벅스는 원래 없다. 글쓰고 책읽기 위해 카페를 하루에 두 번 이상 가는데 스타벅스는 논외다. 노트북을 하기 불편한 자리와 비싼 커피값 때문이다. 빽다방, 이디야, 맥도널드가 평일 루틴에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타벅스에 들어서면 특유의 세련된 안락함을 느끼곤 했다. 책에 집중하기 편한 잔잔한 재즈풍의 음악, 심플해서 눈길을 잡는 소품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내부 '조도'다. 어두운 듯하면서도 차분하게 환하고, 눈이 부시지 않게 은은한 불빛을 뿌려주는 조명들에서 포근함을 느낀다. 공간의 따스한 분위기는 바깥 날씨가 흐릴 때 더욱 빛을 바란다. 오늘 날씨가 그랬다. 비 예보가 있었지만 비는 내릴 듯 말 듯하면서 하늘은 꿉꿉하게 잿빛이었다.
날씨 때문이었을까. 몸도 찌뿌둥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빡빡한 루틴에 쉼표를 찍어야겠다. 루틴에서 벗어난 스타벅스가 여행지로 느껴졌다. 집에서 가장 가깝고 일찍 문을 여는 스타벅스를 점찍어 뒀다. 집을 나서기 전에 '오늘은 쓰기 위한 책 보다 읽고 싶은 책을 읽자'라고 생각했다. 여행 갈 때 기차나, 버스에서 읽을 책을 챙기듯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한 권 골랐다. 집을 나온 발걸음이 가볍게 들떴다. 반차를 쓰고 점심때 회사를 나온 느낌이랄까.
책은 이반 일리치의 <깨달음의 혁명>이다. 무거운 주제의 책이지만 오늘 가장 먼저 생각 난 책이다. 어제 잠들기 전에 읽었던 영향이 아무래도 크다. 막연히 다음 내용이 궁금해 빨리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스타벅스에 도착해 창가 쪽 자리를 잡았다. 책을 꺼내 책갈피가 꽂아진 페이지를 펴는데 읽었던 내용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찝찝한 여운이 머릿속을 헤매는 느낌이다. 책 내용에 흡족해하며 잠이 들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평소엔 눈에 잘 띄다가 정작 필요할 때 안 보이는 갑갑함 같기도 하고, 기대감 섞은 궁금증 같기도 하다.
분명 잠들기 전에 '이래서 일리치 책을 읽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책 초반 어딘가에 일리치의 사상을 잘 압축한 내용이 있었는데,라는 긁지 못하는 가려움 같은 감정을 느끼며 눈꺼풀의 무게에 무릎을 꿇었던 순간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책장을 반대로 넘기며 글자들을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한번 읽은 내용이라서 그런지 시선이 닿은 글자들로부터 대략적인 내용들이 떠올랐다. 반대로 넘기던 책장을 다시 되돌리고 다시 뒤로가고를 몇 번 했지만 원하는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하나,라는 막막함을 느끼며 표지 앞뒤를 돌려 봤다. 입술을 한 번 굳게 다문 후 첫 장을 넘겼다. 머리말이 나왔다. 눈으로 훑지 않은 부분이다. 순간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여기였지!'
"인본적 급진주의란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태도이되, 그 태도는 인간 본성이 지닌 역동성에 대한 통찰, 곧 그의 성장과 그 본성의 충분한 발현에 관심을 가질 때 가능한 것이다."
<깨달음의 혁명>의 머리말은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이 썼다. 에리히 프롬은 정치적, 경제사회적 통념과 이념에 속하길 거부하거나 정면으로 대들면서 여전히 비주류라는 딱지를 달고 있는 일리치만의 사상을 '인본적 급진주의'라는 조어로 개념화를 시도했다. 머리글을 읽으며 머릿속으로만 맴돌던 일리치 사상에 대한 모호한 생각들이 적확한 언어를 만났다는 명쾌함을 느꼈었다.
가려운 곳을 긁은 듯한 해소감은 새로운 내용들을 읽는데 속도를 붙였다. 중간중간 담배를 피우러 가는 일도 잊은 채 책의 진도를 뺐다. 인본적 급진주의라는 개념이 어떤 구체적인 내용으로 이어질지 궁금하고 기대됐다. 선의의 오만함, 자선의 폭력성 등의 키워드가 머릿속을 채운 밀도 높은 시간이 2시간 정도 지났을까. 기재개를 한 번 크게 켜고 책을 덮었다.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니 흐린 날이 생소하다. 여기 있는 게 날씨 때문 만은 아니었던가. 식히려던 마음이 뜨거워져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