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 이재명
검찰 출입기자 시절이었다. 팀장 선배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자신이 쓴 기사와 관련한 소송전(戰)에 휘말리고 있었다. 팀장은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며 박유하 교수를 향한 욕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 시절 팀장의 시각은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과 닮았다.
지난 2015년 2월 17일,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가 출판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자, 이재명 시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어쩌다 이런 사람과 하나의 하늘 아래서 숨 쉬게 되었을까”라며 “청산해야 할 친일 잔재”라고 썼다. 그 이틀 전 이재명 시장은 박유하 교수의 기사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이 여자.. 아직도 교수직 유지하고 있는가요?"라는 글을 올렸다.
9년 가까이 지나고, 지난 22일 서울고법 민사12-1부(장석조 배광국 박형준 부장판사)는 고(故) 이옥선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9명과 유족 등이 박유하 교수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2심에서 1심과 달리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앞서 1심은 1인당 1천만원씩 총 9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앞서 박유하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 등으로 기술해 고(故) 이옥선 할머니 등으로부터 2014년 6월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출판·판매·발행·복제·광고 등을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과 함께 1인당 3000만원씩 총 2억7000만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했다.
아울러 2015년 11월에는 허위사실로 서술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찰로부터 기소당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23년 10월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2심으로 돌려보냈고,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박유하 교수에게 씌워졌던 손해배상, 명예훼손 혐의가 법원에 의해 반박된 셈이다.
박유하 교수가 책에 쓴 내용을 허위사실로 확신했던 이들은 불쾌할 테다. 법원은 박유하 교수의 불편한 견해를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로 인정했다. 그러면서 상식적인 방향성을 제시했다. 손해배상 2심 재판부는 "피고의 견해가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할 수는 있지만, 이는 학계와 사회의 평가 및 토론 과정을 통해 검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과거 박유하 교수를 친일파로 단정 짓고 거칠게 몰아세웠던 이들은 이제라도 사과를 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생각이 편협했거나 확증편향적이었고, 다른 목소리에 폭력적이었다고. 박유하 교수의 견해는 욕먹을 짓이 아니라 꼼꼼히 검증하고 이성적으로 토론해볼 대상이다. 불편하지만 진실의 한 단면을 드러낸 목소리일 수도 있다.
자성의 목소리를 기대해본다. 기자질을 관두면서 그간 수박 겉핥기식으로 기사를 썼다는 죄책감이 크다. 특히 누군가를 비판하는 내용의 기사를 썼을 때를 떠올리면 이런 죄책감이 뼈를 때린다. 금태섭 전 의원에 따르면 과거 이재명 시장은 박유하 교수를 비판하는 SNS를 올린 후 '책을 읽어보기는 했느냐'는 질문에 "냄새만 맡아도 된다"고 답했다. 당시 이재명 시장은 <제국의 위안부> 읽지 않았던 것이다.
장정일 작가는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출판 금지 가처분 결정 이후 한겨레신문 칼럼에 아래처럼 썼다.
"<제국의 위안부>는 우리가 외면하려고 하는 일제 36년의 성격을 마주 보게 한다. 위안부 논쟁에서 일본을 이기는 방법은 그들보다 우리가 더 많이 아는 것이고, 백전백패하는 방법은 일본이 아는 것을 우리가 모르는 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