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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Apr 14. 2019

5년 만에 만난, 효진이

흉측한 이 꼴로 나가도 될까?

"효진이랑 같이 볼래? 잠실에서?"


아무래도 지방이식을 해야겠어. 최근에 MTS로 얼굴을 사정없이 비볐다. MTS는 자잘한 바늘이 있는 롤러다. 바늘 길이가 1mm인 롤러로 볼, 이마를 꾹꾹 누른다. 굴린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아프다. 리도카인이라는 마취 연고를 약국에서 산다. 성관계 시 사정 지연제로 쓰는 마취제다. 약국에서 달라고 하면 약사가 깜짝 놀란다. 그걸 얼굴에 바른다. 내가 뭘 알아서 사겠나? 뷰티 유투버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 묘한 기분으로 사정 지연제를 얼굴에 바른다. 랩을 얼굴에 덮고 15분 기다린다. 마비된 느낌이 들 때, 롤러를 굴린다. 상처가 나고, 피가 나고, 딱지가 생긴다. 재생되면서 피부톤도 개선되고, 땀구멍도 작아진다. 피투성이 얼굴로 카페도 가고, 도서관도 간다. 문제는 그걸로 해결될 몰골이 아라니라는 것이다. 한 5년 전에 스컬트라 주사를 맞았다. 콜라겐이 차오르는 주사다. 그걸로 잠시 팽팽해졌다. 노화를 받아들이겠다. 계속 맞을 돈이 없으니, 성숙해지기로 했다. 남의 시선에 꽁꽁 묶여서, 평생 노예로 살 수 없다. 주사로 채워진 콜라겐이 빠지고, 노화의 속도가 가세해 터진 둑처럼 흘러내린다. 남보다 훨씬 얇은 피부가, 주머니처럼 내려온다. 여행 프로그램 촬영으로 까맣게 얼룩까지 휘덮었다. 그나마 MTS로 나아진 몰골이다. 봄의 석촌 호수와 롯데월드다. 이 꼴로 어디를 간다는 걸까?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냥 산다. 가정을 책임지는 아빠들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게 먼저. 우선순위는 가족, 재테크, 건강. 짝짓기 이후엔 다들 그냥 늙기로 한다. 그래서 더 부끄럽고, 외롭다. 강해지면 된다. 성숙해지면 된다. 뼈를 감싸고 있는 껍데기일 뿐이다. 시신경이 하루아침에 엑스레이처럼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뼈만 보겠지. 뼈가 미의 기준이 되겠지. 어머, 저 사람 턱뼈 보셨어요? 군더더기 없이, 직선으로 내려오네요. 골반뼈가 당신처럼 퍼진 사람은 처음 보오. 발가락 뼈도 어찌나 그렇게 마디가 긴지. 그런 시대가 오면 뼈의 미백이나, 길이가 미의 중심이 되겠지. 인간은 어떤 조건 때문에 불행한 게 아니다. 어떻게든 불행하겠다며, 조건을 단다. 심란한 채로, 위축된 채로 잠실 에비뉴엘 5층 김영모 제과점으로 간다. 김영모 과자점이었지. 교대 근처에도 있었다. 유행통신 기자로 일할 때, 자주 찾던 빵집이다. 그렇게 맛있는 빵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이야 뭐 날고 기는 빵집이 여럿 되지만, 김영모 제과점은 여전히 최고다. 브런치 식당이기도 한 에비뉴엘 5층 김영모 제과점엔 얼굴이 전혀 흘러내리지 않는, 매달 피부과를 찾는, 15억에서 20억 사이의 잠실 아파트를 빚 없이 장만한 이들로 가득했다. 나이 든 어르신도 물광피부로 팽팽했다. 정화누나와 효진이가 먼저 와 있다. 나는 30분이나 늦었다. 토요일 잠실이 그렇게 막히는 곳인지, 집에서 잠실 가는 버스 배차 간격이 25분인지 처음 알게 된 날이다. 정화 누나는 거의 친누나다. 모든 연애와 가족 이야기가 공유되는 사이. 효진이는 누나를 통해 알게 됐다. 둘은 영어학원에서 만났다. 효진이는 세 번 정도 봤다.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아이다. 나보다 열 살 정도 어리다. 나보다 어릴 뿐이지 삼십 대 후반이다. 효진이는


척수염을 앓고 있다. 


5년 전에 정화누나 매트리스를 보러 간 날,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한샘 가구 전시장을 1층부터 5층, 오르락내리락했던 날이다. 결정장애가 심한 누나는 반품할 게 뻔한 매트리스를 찾고 있었다. 효진이와 나는, 그런 누나를 열심히 도왔다. 그래야 쇼핑이 빨리 끝나니까. 날씨가 좋아서, 커피가 맛있던 날이기도 했다. 효진이가 아프다는 소식은 누나를 통해 알게 됐다. 결국 하반신을 전혀 못 쓰는 아이가 됐다. 휠체어를 타고 왔다. 마르고, 작아져서는 나를 반겼다. 걷던 아이가, 휠체어 아이가 되었다. 환하게 웃었다. 오빠, 보고 싶었어요. 반가워요. 책 선물 고마워요. 커피는 제가 살려고 했는데. 오빠 다음에 또 봐요. 그땐 제가 살게요. 맛있는 걸로 살게요. 효진이는 나를 보고 싶어 했다. 서둘러 와서는, 빈자리가 안 나는 김영모 제과점에 자리를 찜했다. 집이 잠실이지만, 나보다 더 어렵게 왔다. 붐비는 사람을 뚫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를 타기까지 수많은 문턱을 넘어야 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서울의 모든 장소가 까마득하다. 효진이도 거울을 봤다. 거울을 안 보는, 만남은 없다. 파운데이션이 곱게 잘 먹었다. 프라다 백은, 너무 예뻐서, 나도 몇 번을 봤다. 나를 어떻게 볼까? 효진이에게도 스쳤던 질문이다. 효진이는 민우 오빠를 봐야 한다. 그 마음이 다른 모든 걸 이겼다. 문턱이 가로막으면 휠체어 앞쪽을 들어야 한다. 번쩍! 너무 가볍다. 40kg이 안 되는, 아이의 무게로, 번쩍 들려진다. 효진이의 입술이, 눈가가 자잘하게 떨린다. 나는 그 와중에도 내 얼굴이 궁금하다. 화장실에서 실컷 거울을 보고 싶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크게 벌려서 흘러내리는 얼굴을 잠시라도 잡아두고 싶다. 나는 정말이지 그럭저럭이기만 하면 된다. 그럭저럭 괜찮아져서는, 조금 더 잘생겨지기만 하면 된다. 조금 더 잘 생겨져서는 완벽해지고 싶어, 발광할 테지만, 지금은 그냥 그럭저럭이기만 하면 된다. 김영모 제과점에서 에그 베네딕트와 파니니 샌드위치를 먹었다. 에그 베네딕트는 효진이 메뉴인데, 에그(달걀)를 거의 먹지 않았다. 내가 맛있게 먹었다. 양이 줄었다고 한다. 라면 반 개도 겨우 먹는다고 한다. 적십자사에서 일한다. 장애인 전형으로 당당히 합격했다. 도움이 꼭 필요한 이들을 선별하는 일을 한다. 스트레스가 많다고 한다. 곧 아반떼를 사서, 운전대를 잡을 것이다. 효진이를 만나려고, 직장 친구들이 일부러 잠실로 온다. 효진이는 그런 아이다. 곤두서 있지 않다. 늘 들어준다. 따뜻하고, 깊다. 송파동 경성 광장이란 카페에서 아이스 비엔나커피를 마셨다. 커피 위의 휘핑크림이 부드러웠다. 이 크림 때문에 인기라고 효진이가 말했다. 유난히 잘 생기고, 예쁜 커플들이 많았다. 가끔 대화가 끊겼다. 새로 내야 할 방콕 맛집 책 제목 때문에, 빛나는 우윳빛 청춘들 때문에, 내 몰골 때문에 마음이 잠시 어딘가를 다녀온다. 정화 누나의 햇님이가 죽었다. 8년 가까이 곁에서 머물던 아이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반려견 아이가 저 세상으로 갔다. 모두가 아는 형이 대장암 4기고, 모두가 아는 또 다른 형이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힘차게 늙고, 죽어간다. 석촌호수의 벚꽃은, 마지막 불꽃을 불사른다. 바람은 불지만, 더 바라면 안 되는 4월의 날씨다. 한 달 후면 조지아로 떠난다. 효진이를 한 번 더 볼 생각이다. 나를 혼내지 않고, 나를 성장시켜줄 아이가 송파동 임광 아파트에 산다. 우리는 모두 힘차게 늙는다. 힘차게 죽어간다. 그걸 명심하는 순간, 나의 무게는 벚꽃처럼 가벼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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