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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Mar 14. 2019

벼랑 끝, 살고 싶습니다

스물세 살, 죽어야 했을까?

쏘살리토 캘리포니아

"포, 포대장님의 이, 이임사를 쓰고 이, 있습니다."


1995년 강원도 양구, 이등병 박민우는 포대장의 이임사를 쓰고 있었다. 국문과니까 이런 대접을 다 받네. 선임의 갈굼, 지긋지긋한 작업에서 열외다. 포대 전원의 가슴을 후벼 팔 이임사를 쓰겠어. 내가 아무리 잘 보여봤자, 떠나실 포대장님이다. 그게 좀 아쉽다. 행정보급관(당시엔 인사계)이 뭐 하냐고 물었다.


"다시 말해 봐!"

"포, 포대장님이 이임사를 쓰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둘러댔어야지. 포대장이 이임사를 이등병에 맡겼습니다. 아, 입을 꿰매고 싶다.


"뭐, 포도대장? 그럼 인사계는 똥싸계냐?"


해석이 안 된다.


"당장 군장 싸!"


군장을 싼다는 건, 벌을 의미한다. 연병장을 돌아야 한다. 죄인이 되어, 고문관이 되어, 웃음거리로 전락함을 의미한다. 군장을 싸고 행정실에 무릎을 꿇었다. 하사관들이 돌아가면서 내게 기합을 줬다. 앉아, 일어서, 팔 굽혀 펴기 실기. 이 새끼, 요령 피워? 여전히 상황 파악은 안 됐다. 굉장한 잘못을 한 건 틀림없다.


"그러니까 너네들이 간부들을 그렇게 부른다 이거지?"

"죄,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뭐, 주십쇼? 쇼? 여기가 중국집이야? 어서 옵쇼? 이런 거야, 엉? 이등병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야? FDC 전부 군장 싸라고 해!"


합쇼체가 최고의 존칭입니다. 이딴 말을 했다간, 끝장이란 것쯤은 알고 있다. FDC. 포탄의 거리, 방향 등을 계산하는 사격 지원반이다. 나는 FDC 막내였다. 내 옆으로 병장, 상병, 일병. 하늘 같은 선임들이 군장을 싸서 앉았다. 함께 연병장을 뛰었다. 병장도, 상병도 아무 말이 없었다. 나중에 따로 보자. 일병만 나를 보며 눈을 부라렸다. 종일 연병장을 돌고, 나는 행정실로 다시 불려 갔다. 다시 무릎을 꿇었다. 나만 남겨졌다. 다들 밥 먹으러 갔다. 엄청난 반성이 더 필요했다. 나는 너무 잘못했는데, 뭘 잘못한지는 몰랐다. 억울하다니? 죄를 가르쳐 주십시오. 제대로, 빌겠습니다. 살려만 주세요.


"밥 먹으러 가!"


밥때가 지났다. 둔덕에 있는 취사실까지 천천히 걸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와 같이 걸었다. 일종의 감시병이었다. 걸었나? 존재도, 기억도 의미가 없다. 홀로 식판에 뭔가를 담아서 먹었다. 먹었나? 밥을 먹고, 나왔다. 내무반으로 들어가야 한다. 내무반의 모두와 눈이 마주쳐야 한다. 식당 옆 창고가 보였다. 들어갔다. 자재가 잔뜩 쌓인 창고였다. 불빛은 없었다. 쭈그려 앉았다. 어둠이 익었다. 천장이 보인다. 줄을 매야 하는데, 줄이 안 보였다. 줄만 매면 된다. 줄만 매고, 잠시만 버티면 된다. 목이 부러지고, 숨통이 끊긴다. 내무반으로 다시 들어가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죽을 수 있다. 선임들이 나 때문에 군장을 쌌다. 포도대장? 인사계, 똥싸게? 모두 처음 듣는 말이다. 아닙니다. 억울합니다. 인간에게나 허락되는 사치스러운 고민. 나는 벌레고, 개돼지다. 죽어 마땅한 존재다.


결론적으로 밧줄도 없었고, 죽을 용기도 없었다. 창백한 콩나물이 되어, 눈도, ㅋ도, 입도 없이 흔들흔들 내무반으로 걸어갔다.


"괜찮냐?"


군장을 풀고 씻는 중이었다. 병장 병희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중학교 동창이다. 일찍 입대했다. 동갑인데, 이제 곧 제대라니. 같이 마주해도 되나? 쓰레기의 어깨를 이토록 따뜻하게 다독여 주다니. 나는 100% 치욕이다. 너무 가벼워져서 서럽지도 않았다.  


무게가 한계를 넘었다. 어떻게든 사세요. 그런 말은 헛웃음만 나온다. 직각으로 우뚝, 파도다. 흰 거품을 말아 올리며, 고래의 꼬리처럼 내리꽂는다. 숨도 쉬어야 하고, 팔도 저어야 한다. 생각할 시공간이 없다. 그래서 살았다.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나? 죽지 못해 사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우리의 고통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모든 고통은 부당하며, 모든 고통은 억울하다. 살고 있으니, 큰 성과다. 어차피 죽는다. 그 말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어차피 죽을 테니, 파도와 한 번쯤은 겨뤄 봐야지. 군장을 매고 터덜터덜 내무반으로 내려오던 나는, 거대한 파도와 사투 중이었다. 내 삶의 큰 성과와 마주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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