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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Apr 03. 2019

여행작가의 신들린 위로 - 찬란한  불안의 힘

목포 해양 대학에서 만난 260명의 청춘  

목포해양대학교. 작년에 이어 두 번 째다. 제2 공학관 6층. 260명. 나는 이제 곧 이들을 사로잡을 것이다. 신이 내린 말발로 곧 정신이 혼미해질 것이다. 너희들 어머니, 아버지랑 비슷한 나이지만 형 같고, 오빠 같고, 언뜻 멋있을 거야. PC방, 술, 야동. 청춘은 늘 잠이 부족하지. 앉아만 있다 나오자. 실컷 졸자. 그런 마음으로 왔겠지. 이 강연자는 뭘까? 빠져든다. 배틀 그라운드보다 재미난 강의라니. 넷플릭스보다 더 궁금해지는 강의라니. 무슨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 봐, 빠져들고 있잖아.


아니, 나는 이들을 사로잡을 수 없을 것이다.


나답지 않게 떨고 있다. 커피만 네 잔을 마셨다. 세 잔에서 끝내려고 했다. 강의를 기다리는데, 어찌나 초조한지, Grazie라는 교내 카페에서 한 잔 더 마셨다. 1,800원 아메리카노. Grazie는 이탈리아 말로 감사하다는 뜻이다. 정말 Grazie한 가격이다. 바다가 각각의 빛으로 영롱하다. 청춘이라든지 혹은 4월의 봄을 상징하는 일렁임이다. 항구와 서해 앞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1,800원 카페라니. Grazie!  매일 와서, 매일 보고 싶은 풍경이다. 곧, 강의가 시작된다. 첫 번째 강의 때 나는 무대에 벌러덩 누웠다. 사지를 바르르 떨었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만난 무장강도 사건을 재현했다. 안 먹히는 강의였다. 시간아 빨리 가라. 학생들은 내 눈을 피하고, 마음껏 무료해했다. 나의 나불거림은 파장 같은 거였다. 거슬리는 파장, 혹은 소음. 오로지 관심은 강의가 언제 끝날까 뿐이다. 그래서 발라당 누웠다. 무장 강도가 칼을 들고 내게 달려온다. 나는 빛의 속도로 발라당. 손과 발을 하늘로 향하고, 다 가져가세요. 저는 떨겠습니다. 산티아고 공원에서 창백하게 누웠던 나를 재현했다. 광주에서 같이 온 젊은 부부도 그 자리에 있었다. 방콕에서 식사를 하며, 시작된 인연이다. 광주에서 나를 재워준 예쁜 부부다. 존경하는 박민우 작가님이 어떻게 강연하나 보고 싶습니다. 괜히 오라고 했다. 나는 쥐어짜고 있었다. 이렇게 발라당 눕는 강연자 봤어? 기가 막히게 떨지 않니? 광주 부부와 눈이 마주쳤다. 나만큼이나 마주친 눈을 어디다 둘지 몰라하고 있었다. 굴욕이나 망신을 이렇게 잘 표현하는 순간은 없다. 박제라도 해서, 영구 전시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Grazie 카페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이십 대들 뿐이다. 내게도 이십 대가 있었다. 하지만 믿기지 않는다. 절대로 섞일 수 없는 늙음이 절반 남은 아메리카노를 멍하니 본다. 신이 내린 세치 혀라 자부했다. 말재주는 글재주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나를 전혀 모르는 스무 살, 게임과 수다가 좋은 청춘들에게 나는 소음일 뿐이다. 그들의 마음은 우주의 끝이다. 영원히 닿을 수 없다.


두려움은


0과 같다. 나는 사라졌다. 기고만장, 건방진 나는 없다. 펑펑 울면서 도망가고 싶은, 중년의 남자다. 좋은 징조라면,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끓고 있다는 것. 뻔하면 안 된다. 처음 십 분. 십 분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 십 분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260명을 홀릴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필요하다. 제2 공학관 6층. 나는 침을 삼킨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진정된다. 두려움도 어쩌지 못하는 막다른 길이다. 마이크를 손으로 툭툭 쳐본다. 성능이 어찌나 좋은지, 깨끗한 소리가 퍼진다. 침을 한 번 더 삼킨다. 무섭게 느껴지던 260명에게 친근감을 느낀다. 내가 일방적으로 키운 공포였다. 너희들이나 나나, 아프고, 두렵다.


"친구 할머니가 고대병원 응급실에 누워 있었어요. 의사는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했죠. 전 세계에서 흩어진 가족들이 비행기를 타고 서둘러 와요. 할머니는 한 달 뒤에 퇴원해요. 임종을 준비하라던 의사가 석 달 후에 죽어요. 할머니는 5년을 더 살고요. 우리는 예측해요. 예측하고, 대비하고, 안심하죠. 예측은 완벽하지 않아요. 불안을 껴안는 건 어떨까요? 코알라는 유칼립투스 이파리를 씹으며, 똑같은 하루에 안심하죠. 변화는 없어요. 뇌는 콩알처럼 쪼그라들고, 위만 튼튼해져요. 스스로 살아남는 몸부림을 모른 채, 천천히 멸종되고 있죠. 삶을 책임지는 건 얼마든지 있는 유칼립투스 잎이 아니라, 당장 굶을 수도 있다. 불안에 있어요. 두려움에 있어요. 매일의 불안을 힘차게 안고, 뛰세요. 여행은 불안을 사는 거예요. 짐을 싸서는 불안한 세상 속으로 달려드세요. 나를 재워줄 방이 있을까? 이 사람을 믿어도 될까? 이걸 먹어도 될까? 불안하고, 불편하죠. 심장이 뛰죠. 움직이고 있어요. 성장하고 있죠. 삶은 예측하는 게 아니라, 뭐라도 하는 거예요. 머릿속을 채웠던 걱정을 지우세요. 뭐라도 하세요. 어디든 가세요.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찬란한 불안을 껴안으세요. 여러분의 뇌는 젊어지고, 위는 작아질 거예요. 제가 여러분을 도울게요. 지구에 널린 재미를 차례로 만나세요."


2000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숨을 죽인다. 여차하면 발라당 누우려고 했다.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인다. 청춘은 나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Grazie 카페에서 간절히 바라던 내 모습이다. 나만 아는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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