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달토끼 Dec 04. 2020

당신의 크리스마스는 어떤 의미인가요?

떨림이 있었던 그 날들.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원래 핼러윈 끝나면 캐럴 트는 거야!"     

코로나가 다시 괴물처럼 기승을 부리기 직전, 카페에 울려 퍼지는 달달한 캐럴을 들으며 친구가 한 말이다. 종교하고는 거리가 먼 친구이지만 우린 같이 캐럴을 흥얼거렸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오기 시작할 때면, 왠지 모를 설렘에 기분이 들뜬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따뜻한 코코아를 마셔야 할 것 같고, 그동안 못 봤던 사람들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감이 생겨 행복해진다. 크리스찬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일까?

              



 어렸을 때는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이 있는 크리스마스가 참 좋았다. 물론 매년 그전에 맞이했던 내 생일과 어린이날도 기다려졌지만, 착한 어린이만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특별함에 깜빡 속아 더 특별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산타할아버지에 대한 추억 몇 가지가 생각난다. 지금 누가 들으면 '세상에 이런 일이!'하고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난 5학년 때까지 산타를 믿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나의 동심을 지켜내려 노력하신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나? 친구들이 12월 이맘때쯤 두 파로 나뉘어 언쟁이 일어났다. ‘산타는 있다파’ vs ‘산타는 없다파’! 나는 전자 쪽에 붙었는데, 산타의 부재에 대한 증거까지 들이미는 반대편 친구들의 얘기를 듣고 나서는 반은 설득당했었다. '산타가 없어. 산타는 아빠였네.' 하지만 쉽게 부모님께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동안의 믿음이 무너져 내리는데, 인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며칠간은 심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해에는 내가 갖고 싶은 선물을 부모님 중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산타할아버지가 주는 선물이 아니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다른 빨간 날과 다를 이유가 없었다. 뾰로통해하며 느지막이 잠에서 깬 크리스마스 날 아침, 신기하게도 내가 1년 내내 갖고 싶었던 인형의 집이 내 방문 앞에 있었다. 반짝이는 핑크색의 인형의 집! TV CF에서 매일같이 나오는 바로 그 장난감이었다.     

'엄마한테 소원을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아셨지? 산타는 엄마도 아빠도 아니다. 진짜 산타할아버지가 있는 게 맞았어!'     


 그런데 얼마 못 가 산타에 대한 믿음이 또다시 흔들리게 되었다. 저학년 때는 ‘산타는 있다파’ 친구들의 수가 더 많았는데, 점점 ‘없다파’의 친구들 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매년 이맘때마다 산타 부재에 대한 언쟁이 벌어졌다. 점점 같은 편이 없어지고 '산타는 사실 아빠다.'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너무 많아졌다. 그때부터 정확히 말하자면 내 마음속에서 산타를 반은 믿었고 반은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김없이 밤 10시면 자라고 나를 방으로 보내는 우리 엄마 때문에 몰래 문을 살짝 열고 TV를 훔쳐보았다. TV 채널이 돌아가더니 어느 한 장면에서 잠깐 멈추었고, 세상에! 핀란드 산타 마을에 대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산타가 실제로 있었다! 너무 놀랍고 그동안 반이라도 믿어왔던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나는 산타를 다시 믿기로 마음먹었다. 산타할아버지를 다시는 배신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믿음을 전파(?)하고 다녔다. 그렇게 5학년이 되었고 결국 부모님이 먼저 지쳐서, 산타할아버지의 비밀을 털어 놓아주시고야 사실을 바로 알게 되었다. 사실 인형의 집 선물도 매일 같이 만나던 사촌 언니가 엄마한테 힌트를 줬다고. 산타 마을 할아버지들이 날아다니지는 않는다고. 아빠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사실 엄마, 아빠가 산타 숨기는 거 진짜 힘들었어. 노력 많이 했다. 하하!"

 나의 동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전에도 그 후에도 우리 가족들은 크리스마스면 성당에 갔다. 어렸을 때 거의 성당에 끌려다녔는데, 미사를 본 후에 달콤한 케이크를 꼭 사주셨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이브 때엔 항상 케이크를 사서 생일 축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초를 끄는 의식을 하는 그 시간이 참 좋다. 성당 미사 참석은 안 해도 온 가족이 모여하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커팅식은 한 번도 빼먹은 적이 없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다음 새해를 잘 보내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다. 가족 모두가 서로에게 덕담을 해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떤 때는 아빠가 케이크를 사오시고 어떤 때는 동생이 사온다. 어느 날 우연히 동생 SNS에 업로드된, 크리스마스마다 찍었던 케이크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모두 같은 제과점의 같은 모양 케이크였기 때문이다. 올해까지 같은 케이크를 사면 6년째! 역시, 밥을 매일 같이 먹은 식구라서 입맛이 같나 보다. 슬라이스처럼 얇게 썰어 가득 뿌려 채워 놓은 초코 가루. 그 안에는 생초코로 코팅되어 윤기가 좌르르 하다. 빵은 겹겹이 쌓였고,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달콤하고 고소한 생크림과 상큼한 딸기잼이 맛을 더해준다. 케이크 위에 놓인 산타나 트리 모형의 예쁜 장식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제대로 내준다. 그 제과점이 매해 같은 케이크를 만들어 온 것도 놀랍다. 앞으로도 쭉 같은 케이크를 만들어준다면 우리는 계속 그 케이크를 살 것 같은 느낌이다.


<매년 같은 크리스마스 케이크>

 어른이 되고 술을 배우고 난 후에는 크리스마스 미사를 자주 빠졌다. 사실 성당에는 끌려간 것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는지가 너무 궁금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이브 모임에 많이 참석했다. 솔로일 때는 솔로끼리 모여서 술을 마셨고, 데이트할 때는 데이트를 하며 술을 마셨다. 그렇게 점점 성당에서 한동안 멀어졌었다.


 남편은 결혼 전에 종교가 없었기 때문에 남편에게 크리스마스는 '데이트하는 날' 말고는 의미가 없었다. 실제로 남편은 '결혼 전 크리스마스는 그냥 빨간 날 중 하루였어.'라고 말한 적도 있다. 결혼 후 첫해 크리스마스엔 가톨릭 신자가 아닌 남편이 특근이라 혼자 ‘나 홀로 집에 3’을 보며 보냈다. 두 번째 해엔 그래도 크리스마스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트리도 사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서 나누어 가졌다. 세 번째 해엔 드디어 남편이 세례를 받은 후라 함께 성당에서 보냈다. 그때부터 나도 다시 크리스마스를 빨간 날만이 아닌 의미 있는 날로 지내게 되었다. 성당 축제도 같이 즐겼고, 부모님이 참가하는 성당 구역별 댄스 경연대회도 관람했다. 미사 후엔 모든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고 케이크의 초도 껐다. 그렇게 모든 가족이 다시 성당에서 뭉치게 되었다.


 이번 크리스마스가 남편과 맞이하는 네 번째 크리스마스이다. 엄마는 의미 있는 크리스마스를 만들고 싶다고 초등학교 때 많이 해보았던 ‘시크릿 산타 놀이(마니또 놀이)’를 가족 다섯 명끼리 해보자고 하셨다. 남편이 세례 받고 맞는 두 번째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에 설렘을 주고 싶다고 하셨다. 이 놀이로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 전통이 또 하나 늘었다. 우리만의 크리스마스 파티라니. 이번 크리스마스가 너무도 기대된다. 무엇보다 우리 가족 다 같이 맞이하게 되는 크리스마스라는 것이 기쁘고, 뿌듯하다. 판공성사(1년에 두 번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전에 해야하는 가톨릭 신자의 의무 고백성사)를 일찌감치 봤는데 또 다시 고백성사를 보지 않기 위해, 남편이랑 그때까지 싸우지 않아야겠다.




 내 지인들도 이번 크리스마스를 따뜻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신앙생활을 하는 분이든 하지 않는 분이든 누구나 즐거운 크리스마스니까! 코로나 때문에 지인들을 만날 수 없을 테지만, 코로나 덕분에 가족끼리 똘똘 뭉칠 기회가 되는 크리스마스였으면 좋겠다. 어렸을 때처럼 선물을 받기 위한 날이 아니라,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기쁨의 크리스마스를 준비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잠이 보약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