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상은 만족스러운 취미다. 종종 공상을 통해 현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피아니스트라는 첫 목표를 소중히 다뤄 피아노를 공부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지 골몰하는 건 가장 쉽고 빈번한 주제다. 엄마가 말하는 '진짜 콩쿠르'에 입상해 비범한 연주자가 되어 전 세계를 누비고 있을까? 타고난 천재의 범주에 들지 못해 매 순간 괴로웠을까? 악기가 삶이고 삶이 곧 악기인 과정이 매우 지난해서 피아노는 애증의 대상이 되었을까. 좋아하는 게 일이 되면, 그 좋던 것도 금세 싫어질걸? 하는 어른의 이야기가 상상의 방울을 톡 건드려 비눗방울이 터지듯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 아, 피아노는 남겨놓은 아쉬움 덕에 아직까지 좋아하고 있는 거구나.
2.
얼마 전 지인과의 대화에서 <헤어질 결심>을 좋아하는 사람은 절대 성공하는 드라마를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박찬욱의 영화를, 특히나 <헤어질 결심>을 취향의 범주에 넣어둔 사람이라면 지적 허영에 취해 대중성에는 한껏 거리를 두고 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맥락에서였다(정확한 워딩은 좀 더 폭력적이었으나 복기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파 자세히 적지 않겠다). 자칭 '헤친자(헤어질 결심에 미친 자)'가 되어 보낸 상당한 시간을 부정당하는 듯했다. 프로듀싱 필모그래피에 제목만 말해도 모두 알 법한 굵직한 작품 하나를 새겨 넣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에겐 청천벽력과 같았다.
3.
지인은 나와 비슷한 취향으로 묶인다. 다른 건 모르겠으나 적어도 콘텐츠라는 범주 안에선 같은 결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소위 '대박 나는' 드라마를 만들 수 없는 걸까. 서로의 상처를 보듬다 지독히 현실적인 지점에 귀결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정확히 구분하자고. 내가 아무리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감명 깊게 보았다 한들 조나단 글레이저가 될 수 없다. 취향은 취향대로 남겨두고 실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4.
평생토록 '가슴이 떨리는 일을 하라'는 조언을 들어온 대한민국의 삼십 대는 이상과 동떨어진 현실에 이따금씩 괴로워진다. 어쩌면 너무 좋아하는 것들은, 손을 뻗어도 쉬이 도달하기 어렵다는 위치에서 생긴 아쉬움이 불러낸 감정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또 한 번 스스로의 평범함을 마주한다. 나는 특별해지고 싶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