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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가람 Mar 29. 2022

마시기 전 딱 하나만 신경 쓴다면

와인 스타일에 따라 온도 맞추기

 지각 한 번 해보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낸 나에게 이를 알려준 건 술이었다. 대학교 신입생에게는 왜 그리 아침 수업이 많은지. 그때의 나에게 결석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기에 지하철 화장실에서 토하면서도 꾸역꾸역 수업에 기어들어갔다. 그날도 숙취 가득한, 어느 때와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필름이 끊긴 걸 보니 아마 주량을 또 훌쩍 넘은 모양이다. 친한 스님이 술을 주시기에 "땡중 땡! 중~!" 노래를 부르다가 주변에서 입을 틀어막은 게 마지막 기억일 뿐.

 

 자책과 숙취로 머리를 감싸고 있던 나에게 옆에 앉은 친구가 스윽 음료수를 내민다. "데*와"였다. 다른 데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비주류 음료수인데 유독 이 학교 자판기에선 빠지지 않는 독특한 음료수. 밀크티 맛이 난다는 말만 들었을 뿐 한 번도 마셔본 적 없었다. 자판기에서 갓 뽑아 따끈따끈 했다. 친구의 센스에 감사하며 꿀꺽 마셨는데 아... 전 날 마시던 안주가 밀려 나온다. 뜨거운 물에다가 향수를 타고 설탕을 투하한, 흡사 고문받는 맛이었다.


 데*와 고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착하디 착한 언니가 필기노트 빌려줘서 고맙다고 데*와를 사 왔다. 해당 음료업체가 이 학교 학생들에게 최면이라도 건 것일까. 게다가 언니는 내가 절대 거절할 수 없는 마법의 말을 덧붙인다.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일부러" 사 왔다고.......

 마시고 죽자는 생각으로 질끈 눈을 감고 마시기 시작하는데, 이질적인 향이 싹 가라앉아있다. 지나치게 달던 맛도 향과 잘 어울리고 텁텁하게 느껴졌던 밀도도 낮아졌다. 언니가 건네 준 데*와는 손을 데자마자 얼어붙을 것 같이 찼다.


 전통적으로 맛은 단맛,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 기름진 맛의 6대 미각(혹은 기름진 맛을 제외하여 5대 미각)으로 분류해왔다. 우리 혀의 미뢰는 그 이상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벨기에 루벤대학 연구팀이 온도가 달라졌을 때 음식의 맛을 다르게 인식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골 아픈 연구결과까지 읽기엔 나의 인내심이 짧아서 간략하게 통용되는 법칙을 공개한다.


 온도가 상승하면 단맛은 강하게 느끼고 짠맛과 쓴맛은 약하게 느낀다. 신맛은 온도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고 한다. 뜨거운 아이스크림이나, 차가운 국밥을 상상해보면 온도의 중요함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번거로운 일처럼 보이나? 하지만 소주와 맥주를 마실 때에도 냉장고에 "시아시"된 것을 따지는 게 반도의 문화인데, 와인 마실 때 온도 따지는 일은 일응 당연해 보인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인 앤디는 지붕 보수 작업 도중, 악질로 소문난 교도관에게 골치 아픈 그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주겠노라 거래를 제안한다. 그가 원한 대가는 동료들에게 차가운 맥주 3병씩 줄 것.

 폭행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거래를 성사시킨 앤디 덕분에 죄수들은 작업 도중 지붕 위에 앉아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를 마신다. 그리고 이어지는 앤디의 동료 레드의 독백이 이 장면을 명장면으로 끌어올린다.


우린 마치 자유인처럼 앉아서 
햇빛을 받으며 마셨다.
 우리들  지붕을 고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우린 부러울  없었다.


 그런데 만약 교도관이 건넨 맥주가 뜨뜻미지근한 온도였다면?

 글쎄, 이 영화의 명장면은 꽤 달라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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