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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Jan 30. 2022

태국 국민 영화의 배경이 서울이라고?

한류를 따라 서울을 찾는 이들을 다시 만나면

2011년 동남아 배낭여행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태국 방콕의 카오산로드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 그곳에서 만난 한 태국 사람에게 '헬로 스트레인저'라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태국어 제목은 '꾸언믄호'인데 거의 다 한국에서 촬영한 영화야. 태국에서 완전 인기 많았고..." 2010년 8월 개봉한 이 영화는 관객 수 130만 명을 달성했는데 당시 200여 개에 불과했던 태국의 스크린 수와 한 해에 100만 영화가 1~2편 나올까 말까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기록이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자마자 영화를 볼 방법을 수소문했는데 한국에서 개봉도 안 한 영화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구글링을 통해 겨우 다운로드를 하였지만 그나마 딸려 있는 자막은 영어라 불편을 감수하며 봤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20대 남자 당(찬타빗 다나세비 분)과 20대 여자 메이(능티다 소폰 분)은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 함께 한국으로 패키지여행을 가게 됐다. 당은 실연을 당했는데 친구들이 그를 골탕 먹이고자 한국에 보내버렸고, 메이는 한류에 푹 빠져 남자 친구에게 친구와 함께 가는 여행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혼자 떠나온 참이다. 이 여행에서 다양한 사건이 일어나고, 일이 꼬이고 풀리며 두 사람은 감정을 주고받는다.


영화는 당시 태국 젊은이들이 한국에 대해 갖고 있던 모든 환상을 하나도 빠짐없이 담아냈다. 주인공은 한국 드라마 속 연인처럼 커플룩을 입고 명동을 걸어 다니고, 슈퍼 주니어의 '쏘리쏘리'가 나오는 홍대 클럽에서 마음껏 춤을 춘다. 실제로 서울의 클럽에서 '쏘리쏘리'가 나올 리 없다는 사실은 눈 감아주자. 낮에는 스쿠터를 타고 흩날리는 벚꽃을, 밤에는 스키장에서 생애 첫눈 구경을 한다. 45일 동안 한국에서 촬영한 이 영화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가득 담고 있다. 여기에 로맨스와 감동까지 더했으니 태국 젊은이들에게 좋은 반응이 있었던 이유를  알만 하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도 그랬지만 특히 태국에서 한류에 대해 실감할 일이 많았다. 내 또래 사람을 만나면 모두 SBS에서 방영했던 예능 '엑스맨'과 '러브레터' 이야기를 했다. 태국에서 꽤 오랜 시간 SBS 일요일 예능을 방영한 모양인데, 유재석과 강호동은 그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서울에서 열리는 빅뱅 콘서트에 다녀왔다는 친구는 "내가 알아듣는 가사는 'Bigbang is back'이 유일하다"라고 농담을 했다. 꼬창이라는 섬에서는 잠시 PC방에 들렀는데 중학생쯤 되는 남자아이가 손예진과 이민호가 주연으로 나온 드라마 '개인의 취향'을 보고 있었다. 술집이나 클럽에서는 자연스럽게 한국 가요가 흘러나왔다. 그들에게는 어색할 게 없는 풍경이었지만 나에게는 늘 새롭고, 신기하고, 놀라웠다.


10년도 더 된 시절의 이야기다. 그때도 한류가 거품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계속해서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 드라마를 보는 지구 반대편 나라의 소년 소녀를 상상해도 어색할 게 없다. 어린 시절 '나 홀로 집에'를 보고 미국에 가보고 싶었던 나와 지금 지구 상 어딘가에서 BTS의 노래를 들으며 서울을 꿈꾸고 있는 사람은 시공간을 넘어 분명 닮은 구석이 있다. 


직장이 명동에 위치한 까닭에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외국인 관광객을 볼 일이 많았다. 저마다 서울에 대한 꿈과 환상을 갖고 먼 길을 왔을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내 나라를 찾아온 여행자가 늘 반갑고 고마웠지만, 현생에 치여 지친 순간에는 '여기 뭐 볼 게 있다고 오는지...' 하며 냉소했던 순간도 있다. 코로나와의 싸움이 끝나고 모든 게 제자리를 찾으면 서울은 다시 설렘을 안고 온 여행자로 가득 찰 것이다. 그런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그날이 오면 조금 더 다정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봐야겠다고 다짐한다.





Photo by Floren Irah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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