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

추진력 있는 남자, 지구력 있는 여자

by Jeoney Kim

옛날 옛날에

빠릿빠릿하고 추진력 있는 남자와

느리지지만 지구력 있는 여자가

강사와 수강생으로 만나게 되었어.


그런데 어느 날 학원에서 여자가 앉은자리에

코딩 프로그램이 고장 난 거야.


그래서

여자는 메모장을 열어서 코딩을 시작했어.

여자의 그런 모습을 발견한 남자는

여자의 처세에 반하게 됐어.


코딩 프로그램이 고장 나도 실습하는 걸

포기하지 않고 메모장이라도 열어서

조용하고 묵직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 일이 있었던 날

여자는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남자로부터 문자를 한 통 받았어.


그 내용이 뭐였냐면,

"오늘 메모장으로 코딩하느라 많이 힘들었죠?!

메모장으로 코딩을 하다니, 사실 좀 놀랐어요."


그날 이후로 남자는

마치 원래 있었던 습관처럼 매일

수업이 끝나면 문자하고

수업이 끝나면 문자하고

그랬던 모양이야.


그렇게 두 사람은 물 흐르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게 되었어.


남자는 늘 주도적이고

추진력 있고 빠릿빠릿했어.

일의 우선순위가 정해지면

남은 건 몰입하는 일뿐이었어.


여자는 남자의 그런 모습에

완전히 매료되었어.

자신에게는 없는 능력을

남자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야.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가족이 되기로 했어.


그런데 그거 아니?

연애할 때 좋았던 점이

결혼하고 나면

가장 힘든 점이 되기도 해.


연애할 땐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그 모습이 유난히 크게 보여.


그런데 빛만 있는 세상은 없어.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기 마련이지.

연애 기간이 조금씩 길어지면

그 그림자가 슬슬 보이기 시작해.


결혼하고 나면

그림자가 아주 또렷이 보이고

결혼 생활이 10년 이상 지속되면

배우자 인생의 이면을 마주하기도 해.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이면을 보았어.


여자는 조용하고 묵직하게

늘 자신의 할 일을 해 왔지만

그 속도가 매우 느렸어.

그래서 남자는 늘

속도가 느린 여자를 걱정했어.


그런데 이제는 걱정하지 않아.

그게 그녀의 모습이라는 걸 받아들였거든.


속도가 느린 대신 주변도 챙길 줄 알고

감정의 기복이 있긴 하나, 그 속도마저 느렸어.

그래서 감정 기복이 마구 널뛰진 않는 거지.


남자는 늘 우선순위가 있고

추진력과 몰입력이 좋았어.

그래서 불가능할 것 같은 일도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처리하는 능력이 탁월했어.


그러나

그렇게 몰입할 땐 너무 앞만 봐.

그리고 그렇게 하고 나면 바로 탈진하는 거야.

스스로 나가떨어지는 상태가 돼버려.

부스터라도 단 것처럼 추진력 있게 일할 땐

감정 상태가 매우 하이텐션이었다가

그 상태가 일단락되면

완전히 무기력한 사람이 돼버려.


여자는 살면서

이렇게나 감정 기복이 널 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남자의 이면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야.


여자는

남자의 이면에 적응하기가 매우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녀가 가진 특유의 묵직함으로 잘 견뎌왔어.


그리고 이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아.

그는 그렇게 작동하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였어.


남자와 여자는

이렇게 서로의 이면을 보고

수도 없이 겪어 내면서

서로를 더 깊이 알게 되었어.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나 견디기 힘들었던 서로의 이면에 대해,

참 이상하게 닮아가는 부분이 생기기도 했어.

이건 아마도 견딤을 넘어 적응까지 했나 봐.


관계의 영향력이란

참으로 신비한 미지의 세계 같아.

(알 수 없는 미묘한 웃음)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남기고 싶은 말이 있어.


세상에는

토끼도 필요하고, 거북이도 필요하다는 거야.


모든 사람이 다 제 멋대로 울퉁불퉁하게 생겼어도

서로 굴곡이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


서로 도와 가면서, 보완하면서 살자, 우리!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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