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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발꾼 Dec 14. 2020

농사가 예술인 학교

파발여정-DMZ 여행지 4. 논밭예술학교

학교라는 이름 때문에 왠지 모르게 들어가기 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예술과 농사에 대한 배움의 자세를 갖추고 들어섰으나, 괜한 걱정이었다. 이 곳은 그리 딱딱한 공간은 아니었다. "농사가 예술이다"라는 슬로건이 눈에 띈다. 


헤이리 예술마을에 위치한 논밭예술학교는 간단히 얘기하면 7명의 예술가들이 만든 복합공간이다. 숙박공간과 키친, 갤러리 등의 공간 구성 속에서, 지난 10년 간 생태교육, 자연요리교실, 식교육 교실, 막걸리교실, 환경 친화적인 리사이클 교실 등 많은 프로그램들이 기획 및 실행되어 왔다. 그간의 활동들로부터 파생된 흔적들이 공간 속 이곳저곳에 묻어있어서 더 좋다. 또 그러한 흔적들을 다 알고 있는 '할머니 선생님'이 계셔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더 좋은 곳. 


이 곳은 매력이 많은 공간이다. 공간 곳곳에 자연과 예술이 숨어있는 곳 혹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자연과 예술 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곳. 발이 가는 대로 건물을 한 바퀴 쭈욱 돌아봤다. 산자락을 부수지 않고 계단으로 공간 구성을 해놓아서 그런지 마치 조그마한 동산을 올라갔다 내려온 기분이 들었다.


현재는 숙박 위주로 공간이 운영되며, 틈틈이 예술 전시나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도 한다. 이벤트가 없는 날이라도, 자연과 예술로 버무려진 공간이 주는 아름다움은 지속되고 있으니 한번 가보길 추천한다. 소금방, 하늘방이라는 투숙 가능한 방들이 있다. 물론, 5성급 호텔 평가기준으로 본다면 이 곳은 좋지 않은 숙박공간일 수도 있다. 대형 연회장이나, 피트니스센터, 24시간 룸서비스는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 생태, 예술, 평화를 기준으로 별을 매긴다면 이 곳은 무조건 5성급을 받으리라 확신한다. 


파주 헤이리마을에 위치한 이 논밭예술학교를 파발여정-DMZ의 네 번째 여행지로 소개한다. DMZ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놓인 이 곳은 DMZ의 예술, 자연, 생태, 평화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 숙박의 경우 아래 웹사이트를 통해 숙박 예약을 진행한 후 방문하길 바란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93-45 / https://blog.naver.com/nonbatart








<논밭예술학교 정금자 감사와의 인터뷰 문답>


인터뷰 공간 : 논밭예술학교

인터뷰 시작시간 : 2020년 8월 25일 오후 4시 23분

연령대 : 60대 후반

집으로 느껴지는 나라 : 한국


지금 있는 공간에서 자신을 묘사한다면?

할머니

논밭예술학교는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천호균 사장님과 의논하며 만들어진 공간이다. 거의 십 년 동안 이 일을 쭉 해왔던 것 같다. 사람들이나 특히 어린이들이 오면 나를 할머니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논밭예술학교에서의 할머니.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다 지내왔고 겪어왔고 경험했기 때문에 어떤 누가와도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따뜻한 할머니. 누구에게나 그런 할머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학교라서 교장선생님을 예상했다.

글쎄… 대학 졸업하고 5년 동안 교사를 했었지만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해서 빨리 그만뒀었다. 또 이 곳이 공적인 교육기관도 아니고 삶의 지혜를 공유하는 학교이기 때문에, '장' 이런 형식적인 말보다는 따뜻한 애칭이 나는 더 고맙고 반갑다. 


지금 있는 공간에서 자신의 일상을 묘사한다면?

끊임없이 바삐 돌아가는

평생이 생각하고 실천하고의 끊임없는 연속이었던 것 같다.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제 가끔은 나이가 있으니 체력이 좀 달리지 않나라는 걱정이 들 정도로 계속해서 생각하고 실천하고 구현해 나가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 있는 공간의 성격을 묘사한다면?

쌈지에서 생각하고, 하고자 했던 것들을 소비자들과 함께 소통하며 같이 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라는 생각으로 논밭예술학교를 시작했었다. 

처음부터 이곳은 생태적으로 짓자라는 생각으로 산자락을 깨부수지 않고 계단으로 만들었다. 쌈지 농부에서 생각했던 '농사는 예술이다'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예술가들이랑 협업을 하여 그 작가의 정신들을 곳곳에 불어넣어 생태적이고 예술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거기에 따라오는 먹거리나 문화행사, 여러 가지 다양한 것들을 담아내는 공간을 십 년 동안 구성해왔다. 내가 보기에는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공간이 더 절실한 공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히려 처음 우리가 의욕적으로 했을 때보다는 조금 차분해지고 침체되어서 조금 아쉽기도 하다.


이런 공간이 지금 시대에 절실하다고 했는데, 도시가 아닌 파주에 머무는 이유는

지형이나 위치 같은 것들이 단순히 하나만 갖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디엠지 안에 있거나 더 산속에 있거나 그러고 싶지 도시 속으로 갈 생각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자연을 그대로 담아낸 공간이기 때문에 이거를 딱 떨어트려서 도시에 있다고 한다면 더 이상 논밭 예술학교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있는 공간의 풍경을 묘사한다면?

고요함 속 소리 없는 아우성들이 있는 곳

한 바퀴 쓱 돌아보면 새소리도 들리고, 올라가다 있는 빨간 지붕을 보면 꽃사과의 열매가 후드득 떨어져 있고, 또 샛길에는 마타리라는 노란 꽃이 피어있고, 또 연못에는 아무도 봐주지 않지만 수련꽃이 아침에 피었다가 네시쯤 되면 또 오므라 들고, 자세히 보면 물고기도 왔다 갔다 하고, 또 어제 조그맣던 호박 줄기가 하룻밤 지나서 이십 센티나 길어져있고… 


지금 있는 공간에서 소통한 사람 중 기억나는 한 명이 있다면?

지금으로부터 한 4년 정도 되었는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너무 유명한 외국박사님이 어떤 제약회사의 초청으로 한국에 오신다고 했다. 그분은 유태인이면서 세계적인 암 권위자셨다. 그 박사님이 100프로 비건이셔서 그릇도 생선을 담았거나 고기를 담았던 그릇이면 안된다고 하더라. 그때는 여기서 예약형 레스토랑을 잠깐 하던 때였고, 그분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메밀전병과 야채, 그리고 잡채. 근데 그 박사님의 한 가지 부탁이 더 있었는데, 우리 음식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는 거였다. 그래서 야채를 넣고 만드는 떡볶이를 직접 만들어보는 그 박사님을 위한 프로그램을 한번 하게 됐다. 그 유명한 암 전문 박사가 머물 곳을 수배하다가 결국 여기를 왔다는 것도 재미있었고, 음식을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는 것도 독특해서 기억에 남는다.


DMZ를 바라보는 정금자 감사의 모습은?

몇 년 전에 천호균 사장님이 맛집에 대한 원고를 쓸 일이 있어서, 늘 같이 동행했었다. 같이 인터뷰를 하며 내가 메모를 하기도 했는데, 파주가 접경지역이다 보니 나름대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떤 식당은 북한에서 잠깐 내려왔다가 주저앉게 된 사람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위에는 식구들도 남아있고, 자기는 잠깐 왔다 금방 갈 줄 알았다고 했다. 자기가 북한에서 먹던 음식들을 만들어서 사람들한테 팔고 생계를 유지하다가 여기에서 식당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여기에서 10년이 넘게 살다 보니,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슴에 더 와 닿고,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는데, 옛날에 헤이리마을에 '딸기가 좋아'라는 거를 조민석 씨와 만들 때, 우리가 왜 여기에다가 이런 걸 만들어야 할까?라는 고민을 했었다. 그때 통일이 되어서 남북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되는 바람을 담아서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그때는 내가 여기에 와서 살게 될지도 몰랐고, 그냥 그런 공간을 만들어 아이들한테 통일에 대한 생각을 은연중에 심어주면 어떨까 생각을 했었다. 결국 여기에 와서 살게 되고, 천호균 사장님과 이 근처에 평화마을이란 것을 하게 되고... 돌이켜보니 이런 것들이 다 연결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쌈지 농부를 하면서 민통선 안에 농부님들, 유기 농사를 짓는 분들이 계시면 가끔 가보기도 한다. 가면 너무 평화롭고 아름답고 그렇다. 나도 거기서 살고 싶지만, 거기 빈 집이 없단다. 그곳은 아무래도 일반 지역이랑 다르기 때문에 제약도 많지만, 여러 가지 혜택도 많고 자기들끼리의 커뮤니티도 있어서 재미있게 사시는 것 같더라. 만약에 이사를 간다면 그쪽 동네에 가서 작은 갤러리 같은 것을 했으면 좋겠다. 평화 관련 전시만 해도 얼마나 많을까?


헤이리 마을에 대해서 간단히 얘기하자면? 

우리도 완전 초창기 멤버는 아니다. '딸기가 좋아'가 있는 곳은 공동묘지가 있었어서 비워뒀던 곳이었다. 그때만 해도 여기는 정말 허허벌판이고 집도 얼마 없었다. 조민석 씨가 딸기 설계도면으로 건축 비엔날레에서 상을 받고 나니 건축과 학생들이 그렇게 많이 왔다. 그리고 오픈을 하니 애들이 정말 많이 왔었다. 그때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많이 없었어서, 딸기 때문에 아이들이 헤이리를 간다고 했었다. 헤이리는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길, 건물 형태, 건축가 풀, 재료, 꽃의 색들에 대해서도 상세한 지침이 있는 계획된 자치마을이라고나 할까. 


인터뷰 종료 시간 : 2020년 8월 25일 오후 4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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