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발꾼 Dec 14. 2020

거친 듯 섬세한

파발여정-DMZ 여행지 5. 로우 갤러리 X 이세현 작가 스튜디오

파주 출판단지에 위치한 로우 갤러리를 찾아갔다. 스프레이로 휘갈겨 써놓은 듯한 'RAW'라는 간판 앞에서 이세현 작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친(raw) 사람일 거라 생각했지만 문을 열어주는 순간 내 생각과는 정 반대의 사람이 있었다. 소년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안으로 초대했다.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작은 전시공간. 때때로 그곳에서 기획전시를 열거나 자신의 작업을 걸어놓는다고 한다. 그곳을 지나치니 작업공간이 나왔다. 우선 눈을 사로잡는 것은 역시 작업들이었다. 군 복무 시절 야간투시경을 통해서 보았던 붉은 DMZ산천의 이미지로부터 시작한 붉은 산수 시리즈가 이곳저곳 다양한 크기의 캔버스 위에서 강렬하게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붉은색=강렬'이라는 고정관념에 갇히는 걸 싫어함에도, 이세현 작가의 붉은 작업들은 정말 강렬이라는 형용사가 잘 어울렸다. 붉은색 이어서일까? 아니면 산수화라는 형식의 효과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작업을 들여다보기 시작하자 곳곳에 숨어있는 디테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산수화의 형식을 띄고 있는 근사한 풍경화 작업 속에는 작가의 말처럼 '삼라만상'이 콜라주 되어있었다. 구름으로 묘사되는 감정의 표현부터 세월호의 모습까지. 


작업이 실제로 일어나는 공간을 지나가니 휴식공간으로 보이는 방에 도달했다. 곳곳에는 흥미로운 것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자개장과 도자기, 조각 작업, 그리고 작업에 참고할 자료들인지 벽에 가지런히 붙어있던 알 수 없는 사진들. 사진 중에는 테이프 힘이 다했는지 한쪽이 떨어져서 덜렁거리는 사진도 간혹 보였다. 정돈된 듯 안된 듯 작가의 흔적과 성향이 잔뜩 묻어있는 공간이었다. 이세현 작가를 따라 옥상에 올라가 양쪽으로 멀리 보이는 북한과 서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짧은 탐방을 통해 작가의 작업세계를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투시경을 통해 DMZ를 바라봤던 작가. 그리고 작가를 통해 재해석된 DMZ를 바라보는 우리. 서로가 만나 실제로 갈 수 없는 DMZ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지금 이 시대를 잘 대변해주는 대화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는 이세현 작가의 작업을 통해 현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눈으로 재해석한 DMZ를 체험해볼 수 있다고 생각하며, 파발여정-DMZ의 다섯 번째 여행지로 파주출판단지에 위치한 로우갤러리 X 이세현 작가 스튜디오를 소개한다. 개인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보니 방문 전에 반드시 연락을 하길 바란다.


경기 파주시 회동길 41-3 / 010-4939-1080 (이세현 작가연락처)








<이세현 작가와의 인터뷰 문답>


인터뷰 공간 : 로우갤러리 X 이세현 작가 스튜디오

인터뷰 시작시간: 2020년 8월 24일 2시 35분  

연령대 : 50대

집으로 느껴지는 나라 : 대한민국


지금 있는 공간에서 자신을 묘사한다면? 

일상을 향유하는 사람

나는 이 공간에서 일상을 향유한다. 늘 어슬렁거리며 무언가를 하고 있고,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이 곳은 나의 하루와 모든 작업을 시작하고 끝내는 공간이다. 

공간에 대해 얘기하자면, 이 곳은 나에게 새로운 분들을 많이 만나는 만남의 공간이기도 하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미술과 관련된 사람들이다. 아무래도 그분들은 내 작업을 보고 싶어 하시고, 작업실을 궁금해하신다. 그래서 작업실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다. 또 이 공간에서 다른 작가들 전시를 기획하기도 하면서, 나의 창조적 행위뿐 아니라 다른 젊은 작가들의 창조적 행위 또 그들과의 만남을 통한 새로운 창조적 행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제 보니 이 공간을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일상의 공간, 만남의 공간, 창조의 공간. 


지금 있는 공간에서 자신의 일상을 묘사한다면?

습관과 습관에서 벗어나려 하는 욕망, 이 두 가지가 뒤섞여있는 것 

습관이라는 것은 일상 속에서 중요한 것이다. 꾸준하게 무언가를 해야 할 때는 습관이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한다. 습관은 나의 일상을 유지하는, 창조의 밑바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창조자의 입장에서는 습관에서 넘어서는, 자기만의 우연의 순간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 두 행위가 일상에서 구심력과 원심력처럼 작용한다. 이 공간은 어쩌면 이 두 행위가 하나로 부닥치는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 있는 공간의 성격을 묘사한다면?

어수선

나의 마음과 같이 정리된듯하지만 늘 정리가 안되어있는, 야누스적인 공간이다. 내 성격도 그렇다. 착하고 사람들하고 잘 지내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쁜 놈이다. 작업에도 정 반대의 성격을 실어 넣곤 한다. 어떻게 보면 청소가 잘되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청난 먼지가 쌓여있고 어수선하다.


지금 있는 공간 풍경을 묘사한다면?

이 곳은 완성된 작품도 있지만, 내가 새롭게 꿈꾸고 있는 것들에 대해 영감을 주는 사진이나 물건이 많이 놓여있는 수수께끼 같은 공간이다. 마치 모르는 곳을 찾아가는 여행에서 오는 즐거움처럼, 보이는 것 너머에 구석구석 어수선하게 숨겨있는 것들 속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지금 있는 공간에서 소통한 사람 중 기억에 남는 한 명이 있다면?

한 명을 꼽는다면, 영화배우 조여정 씨. 

그분이 나의 작업을 좋아해 주셔서 수소문해서 연락을 주셨다. 이 공간에 직접 연락을 해서 자신을 밝히지 않고 약속을 잡고는 찾아오셨다. 우선 내 작업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크셨다. 배우로서의 자세, 영화에 대한 열정, 예술가로서의 자세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는, 저렇게 자기 관리가 잘 되어서 성공하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DMZ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

DMZ는 작업의 원천. DMZ의 풍경에서 작업이 시작되었으니까. 

실은 작업실을 여기 파주 출판단지에 구한 것도 DMZ 때문이다. 물론 여러 가지 고려한 부분이 많지만, 가장 큰 원인은 여기 파주에서 DMZ까지 매우 가깝기도 하고, 심지어 옥상에서 북한이 보이기도 한다. 예술 관계자들이 작업실에 많이 왔었는데,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하다 보면 DMZ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고, 그럴 때면 옥상에 가서 저게 북한이라고 보여주곤 한다. 우리는 북한, DMZ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보곤 하지만, 막상 DMZ가 이렇게 가깝게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옥상에서 한쪽으로는 서울의 여의도와 반대쪽으로는 북한이 보인다. 굉장히 아이러니하다. 이 작업실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일상이 분단과 멀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 준다.


어떤 분들이 작품을 좋아하시는 것 같나? 이유가 있다면? 

나의 작업의 기본적인 출발은 겸재 선생님의 수경 산수에서 출발했고 형식은 우리가 어려서부터 익히 보아왔던 동양화, 한국화 속 산수화의 풍경과 닿아있다. 그렇다고 그게 고답적이거나 퇴행적인 작업이 아닌 그 안에 현재의 삶,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 지금 현재 대한민국 자연의 아름다움, 아니면 한국사람의 정서 이러한 삼라만상을 담고자 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내가 내셔널리스트는 아니지만, 민족적인 예술의 부흥, 독창성, 자기만의 아이덴티티가 강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작업을 많이 좋아하신다. 


북한 미술에 대한 의견?

사실 미술은 특정시기에 행해지는 행위다. 예를 들어 인상파라던가 모더니즘, 미국의 앵포르맬이나 팝아트, 이런 것들 모두 서구의 특정시기에 발현된 미술이다. 중국은 중공 시대, 소련은 소비에트 연방 시대, 러시아의 특정시기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데올로기로서 서로의 체제에 대해 분쟁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를 역사에서 지울 수는 없다. 그 자체가 없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거다. 메인스트림은 아니지만, 어떤 지역에서 특정한 시기에 생활했던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예술적 행위, 프로파간다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도 있고 개인에 의해 만들어졌을 수 도 있지만, 어쨌든 그 시기의 주류적 정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행위의 결과물로서 북한 미술도 매우 중요하다. 내가 남한 사람이고 북한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북한 미술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이 어떤 시기에 존재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걸 우리가 보관하고 보존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예술이 다양해지고 풍성해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 파주시에서 북한 미술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뤄주면 어떨까 생각한다. 지금은 왜 이런 걸 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더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면 분명히 중요한 문화 역사적 자료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죽어 없어지더라도 특정한 시기는 남아, 없어질 수 없으니까.


인터뷰 종료시간 : 2020년 8월 24일 3시 5분 

이전 11화 농사가 예술인 학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