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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발꾼 Dec 14. 2020

비무장 벌들이 만들어낸 꿀

파발여정-DMZ 여행지 1. 아뻬서울(APE Seoul)

혜화동 로터리 옆 골목을 들어가다 보면 "APE SEOUL"이라는 글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벌이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 '아뻬(APE)'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곳. '벌'이 주제인 가게이지만, 이탈리아어보다는 영어가 더 익숙한 사람으로서 혹성탈출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 생각도 잠시, 입구부터 즐비하는 이상한 모양의 밀랍들과 갖가지 꿀들을 보면 오늘 왠지 벌에 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 안심하고 가도 좋다.


아뻬서울은 카페이자, 전국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그 지역의 이야기가 있는 꿀을 선별해서 판매하는 꿀 편집 가게이다. 먹어본 바로 까눌레가 기가 막히다. 무엇보다 꿀에 대해 궁금한 게 있다면 사장님께 여쭤보라. 허니 소믈리에인 사장님이 말 그대로 꿀에 대한 꿀팁들을 준다.  


우리는 아뻬서울의 이재훈 대표가 운영하는 "잇츠 허니!"라는 꿀 브랜드를 통해 개발된, 대지의 자화상(A Portrait of the Land) 시리즈 중 두 번째 에디션 <DMZ 꿀>을 소개하고자 한다.


"비무장지대는 60년 이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야생의 화원'입니다. 비무장지대의 꿀벌들은 우리가 넘지 못하는 북한 경계선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경계선 북쪽의 꿀을 보태어 날아오기도 합니다. 남북 대지의 내음이 한데 어우러져있는 이 꿀은, 남북 경계지역의 자화상입니다. <IT'S HONEY>"


우리는 직접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꿀을 통해 DMZ를 간접 체험 해보길 바라며, 파발여정-DMZ의 첫 번째 여행지로 혜화동에 위치한 아뻬서울을 소개한다. 꿀을 음미하는 동안, 벌이 되어 DMZ에 펼쳐진 꽃밭에서 날아다니는 상상을 해보자. 여차하면 DMZ를 넘어 북한을 넘어갔다 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35나길 1 / 화요일 휴무 / @ape_seoul

잇츠허니!   https://itshoney.kr/








<아뻬서울 이재훈 대표와의 인터뷰 문답>


인터뷰 공간 : 아뻬서울

인터뷰 시작시간 : 2020년 8월 20일 2시 23분 2초

연령대 : 40대

집으로 느껴지는 나라 : 한국


지금 있는 공간에서 자신을 묘사한다면?

바리스타, 양봉가, 허니 소믈리에, 허니 큐레이터, 제안하는 사람, 가이드, 사장, 친구

나는 바리스타라는 직업, 벌을 키우는 양봉가라는 직업, 꿀의 맛을 소개하는 허니 소믈리에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카페에서는 분위기나 소품, 판매하는 제품, 음료나 디저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또 건물 옥상에서 벌을 키우기도 한다.


지금 있는 공간에서 자신의 일상을 묘사한다면?

정신없는, 도전적인, 랜덤, 바쁜, 도전적인, 정신없는


지금 있는 공간의 성격을 묘사한다면?

벌, 꿀, 양봉, 커피, 잘 어질러진 방, 와비사비

시골 휴게소 같다는 사람도 있었다. 잘 어질러졌으면 좋겠다. 창조한 거는 아니고 계속 봐 온 것들을 흉내 내 것이다. 전 세계의 양봉하는 사람들이 하는 핀터레스트나 인스타 같은 것들을 보면서 멋있다고 생각해서 흉내 낸 것들이 많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것들이 또 여기에 맞게 변해간다. 어떤 장소든 처음에 구성한 후 세월이 지나면서 거기 머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묻어나게 된다. 이 공간도 그러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묻어있는 공간이다.


지금 있는 공간의 풍경을 묘사한다면?

대로변 사거리 코너에서 커피집을 한 적이 있다. 진짜 시끄러웠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시끄러운지. 기본적인 데시벨이 엄청 높았다. 여기는 차 한 대만 지나가도 되게 시끄럽지만, 거기는 항상 차들이 바로 옆에 지나다니는데 였으니까 그게 기본값이었던 거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게 되게 피곤했었던 것 같다. 여기는 정말 조용한 동네의 모습이다. 하수구 물 내려가는 소리, 매미소리, 에어컨 실외기 소리 같은 작지만 기본적인 소음들이 있긴 하다. 안에 음악소리도 조금 나고. 산속으로 들어가면 아마 여기도 또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패키지여행을 가면 짜여있는 동선대로 다니고, 처음 가보는 대도시를 가면 가이드나 인터넷을 보고 뻔한 데를 가게 된다. 근데 규칙을 어기는 순간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동네 안으로 들어가서 그 동네 사람들이 가는 로컬 가게를 발견하고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 나만 아는 것 같고 그런 장소. 그런 장소가 되는 것이 이 공간의 기획의도이다. 요새는 트렌드가 바뀌어서 매력이 충분히 있으면 어디 구석에 있더라도 찾아오신다.


지금 있는 공간에서 소통한 사람이 있다면, 그중 흥미로운 한 명?

양봉하시는 분들 중에 궁금해서 조용히 왔다 가시는 분들이 계시고, 그렇게 보여서 먼저 물어보면 대답해주시는 분도 계시다. 론니플래닛에 나와있어서 벌이나 꿀에 관련된 외국분들도 오신다.

한 분은 스웨덴분인데 되게 무뚝뚝하다. 보통 겉으로라도 친근하게 얘기하시기 마련인데, 항상 화난 사람처럼 무뚝뚝하다. 근데 안 올 것 같은 표정을 하고 몇 번을 계속 왔다. 몇 번 대화를 나누었다가 잊어버리고, 또 나중에 와서 이야기를 하다가 그 사람이란 걸 깨닫기도 하고, 그렇게 몇 번... 마지막에 왔을 때는 꿀을 가지고 왔다. 스웨덴에 자기 집에서 만든 거라고, 되게 수줍게, 라벨링 안 된. 그분도 벌 키우는 분이셨다.


DMZ를 바라보는 이재훈 대표의 모습?  

낭만주의자라고 해야 하나.

내가 바라보는 DMZ는 생태, 대자연, 있는 그대로, 정글이다. 자연은 사람이 개입하지 않으면 알아서 잘 살아간다. 사실 민통선 안에 우리가 꿀을 하러 간 곳도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다. 그곳만 해도 그렇게 청정한데, 그것보다 더 깊은 DMZ가 있는 것이다. DMZ를 생태 보존지구로 선포해서 민간인의 손이 닿지 않게 하면 진짜 좋을 것 같다. 완전한 야생 정글, 남북관계가 완화되더라도 그냥 놔두었으면 좋겠다.


DMZ 꿀을 위해 들어간 민통선 안은 어땠나?

들어가는 입구에 군인들이 있고, 안에는 농사짓는 분들이 계셨다. 해지기 전에 나와야 했다. 비가 조금 오는 날에 갔는데 진짜 맑은 느낌을 받았다.


DMZ 꿀 특징?

데이츠 같은 맛, 단맛이 응축된, 대추야자, 말린 무화과, 말린 대추, 투명하진 않고 약간 탁한 앰버, 호박색 같은 색. 기본적으로 멀티 플라워, 잡화꿀이라고 하는데 랜덤 하게 블랜딩 된 거다. 자연스럽게.

주요 밀원은 족제비 싸리라는 외래종인데, 비무장지대를 구성하는 여러 식물 가운데 하나라고 추측하고 있다. 여러 가지가 섞인 꿀이고, 단맛이 확 올라오는, 요구르트와 잘 어울리는 맛이다. 주스보다는 엿에 더 가까운 단맛이라고 할 수 있다. 캐러멜 바나나 같은 느낌도 있고….

 

DMZ에서 만든 그 꿀을 먹으면 거기 있는 꽃의 넥타가 변한 꿀을 먹는 것이다. 꿀은 사실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실제로 꿀을 통해 그 장소를, 혹은 많은 것들을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거다. 유치하지만 티브이 광고에서 보던 오렌지나 망고를 먹고 상상 속에서 플로리다로, 열대지방으로 여행을 가는 것처럼, 이러한 판타지를 디엠지 꿀을 통해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어렵겠지만, 그런 취지로 기획된 제품이다.


DMZ는 사실 여기서 별로 안 멀다. 생각보다 안 멀다. 외국분들은 DMZ에 관심이 많다. 근데 DMZ의 이야기가 한국사람한테는 진부하게 들리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DMZ 꿀을 보며 자연적인 것보다는 군사적인 것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게 아쉽다. DMZ 꿀을 통해서 한 번 두 번 사람들 간의 이야기가 연결되길 바란다. "DMZ는 위험한 게 아니다"부터 시작할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

오프라인 꿀 큐레이션을 하고 싶다.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좀 어렵지만 사람들이 와서 꿀을 먹어보고 추천하고, 블랜딩하고 섞어마시기도 하는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해보려 한다.



인터뷰 종료시간 : 2020년 8월 20일 3시 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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