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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nny Sep 27. 2024

9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콤한 순간은 있다.

아이들에게 치유를 받다.

 우리 반에 도움 반 아이가 있다. 지적 연령이 평균 아이들보다 한 6년 정도 어리다. 하지만 받아쓰기를 항상100 점을 맞을 정도로 잘하고 글씨도 가지런하게 예쁘게 잘 쓰며 수학 연산 능력이 뛰어나 얼마나 계산을 빠르고 정확하게 잘하는지 모른다. 우리 반 도움 반 아이는 다른 장애를 가진 아이에 비해서 많이 우수한 편이기 때문에 도움 반에 따로 내려가 지원을 받지 않고 통합 학급으로 우리 반에서 계속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눈도 정말 예쁘게 생겼고 얼마나 순한지 모른다.

 그런데 도움 반 아이는 체육 시간 때마다 눈물을 쏟아낸다. 게임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와 상황에 대한 판단력이 어려우니 도움반 선생님께서 옆에서 도와주시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나름대로는 얼마나 힘들까 싶다. 공을 피해야 하는 게임에서도 공을 늘 맞고 울고, 특히 소음에 약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즐거워 소리를 지르면 함께 흥분하여 소리를 지르거나 대성통곡하기 시작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늘 반복해 주는 말이 있다.

“괜찮아. 너무 잘하고 있어.” (내가 누군가에게 위로를 해주면서 정작 나에게는 위로를 해주지 않고 있었다.)

아이의 눈에서 늘 세상을 보려고 한다. 온통 이 아이에겐 매 시간이 긴장과 불안의 세상일 것이다.


  오늘 체육 시간이었다. 술래잡기 게임을 하는데 또 눈물이 그렁그렁 눈에 맺힌 채 자기 혼자 이제는 펑펑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이 얼마나 짠한지 등을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아이고. 그래도 작년에는 많이 울었는데, 이제 눈물도참고 너무 대견하다. 공 맞아도 괜찮으니까 불편한 거나 선생님이 도와줬으면 하는게 있으면 말해줘~. 많이 컸다 우리 00이.”  

조금씩 조금씩 눈에 띄지는 않지만 그래도 성장해 주는아이가 참 대견하다.   

 


 우리 반 교실에 1학년 꼬꼬마 친구들이 두리번 두리번 뒷문을 서성거리며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쉬는 시간에 반짝이는 눈을 하고는 놀러를 왔다. 그 때 나한테 눈을 마주치면 부끄러워 피하던 아이가 갑자기 브레이브 걸즈의 “Rrollin”을 추길래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쳐주었다. 그게 그렇게 좋은지 다른 친구 무리들을 이끌고 와서 한 번 더 쳐달라고 한다. 얼마나 귀여운지 내가 잠시 아이들과 순수한 세계로 초대받아 건너갔다 온 느낌이다.     

 

 초임 시절 옆 반 6학년 여자 학생이 엄마가 어릴 때 돌아가셨는데 2학년 때부터 자살 시도를 해서 손목에 자상이 가득했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곁에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그 아이에게 대구로 초대하여 그 아이가 좋아하는 김광석거리에 데리고 가서 김광석 노래를 실컷 듣게 해 주고 밥을 먹었다. 그 아이는 벌써 대학생 2학년이 되어 잘 살고 있다. 엄마가 없는 시기에 엄마의 역할을 조금이라도 해주고 싶어, 예쁜 옷들을 가득 사서 그 아이의 집에 택배로 보내주었던 기억이 난다.   

  

 가끔씩 내가 맡았던 2학년 짜리 아이들이 벌써 고3이 되어 보고 싶다고 편지를 보낼 때마다 나도 아이들 앞에서 조언을 해주는 어른이 되었구나 싶다.


 비를 맞으며 가는 우리 반 아이를 운전하다 발견하고는, 무너지기 직전인 으스러진 집까지 태워다 주는데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펑펑 운 적도 있다. 나는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삶으로서 교사의 삶에 스며들어 나도 함께 커가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게는 운동장에서 내가 올 때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산을 쓰고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내가 오면 멀리서부터 달려와 반겨주는 아이들이 있다. 순수하게 전하는 나의 진심을 알아주는 영혼들이 있어 나는 행복하구나 싶다. 고맙고 벅찼지만 놓치고 있었던 그 소중한 순간들을 힘들 때 하나둘씩 새겨본다.

      


 선생님이라 아이들 앞에 설 때면 늘 어른이 된다. 하지만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기도 하지만, 거꾸로 누군가를 치유해 주고 치료해주는 과정에서 내가 오히려 힘을 얻고 보람을 얻기도 한다. 순수하게 때 묻지 않은 아이들과 함께 동화될 때마다 내가 왜 이 직업을 떠나지 않고 10년째 하고 있는지 다시 깨닫고는 한다.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음에, 내 자그마한 손길과 관심 하나에 누군가의 인생이 버려지지 않고 꽃 필 수 있다면 인생의 보람과 행복을 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랴.


 장마가 계속되던 내 마음에서 오늘도 거꾸로 아이들에게 선물을 받는다. 정화되는 이 마음으로, 아이들의 한없이 해맑은 웃음을 떠올리며 한 주를 또 보내야겠다. 아이들이 참 사랑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진중하게 임하는 자에게 달콤한 순간이 반드시 있음을 마음 그득하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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