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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키핑 pt.1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by 현쥴리

캐나다에 도착한 지 보름 만에 나는 호텔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나는 한국이 아닌 캐나다에서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휘슬러에 위치한 포시즌스 호텔 객실관리부 소속 직원이 되었다. 졸업장을 받기 위해 책상 앞에 몇 시간씩 앉아서 공부했던 나의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며, 한 번도 와보지 못했던 아주 낯선 곳에서 시작된 나의 첫 직장생활이었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은 내가 대단한 일을 계획하고 캐나다로 떠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무런 계획이 없었던 나의 무사 태평한 모습이 그들에게는 무언가 완벽히 준비된 자의 여유로운 모습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알고 보니 나는, 겨우 남의 방을 치우러 캐나다까지 간 것이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나의 입사지원 리스트에는 하우스키핑이라는 직종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이 아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하우스키핑에 대한 비하가 아니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일말의 후회도 없다. 물론 현타가 오는 순간들도 간혹 존재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나는 굉장히 즐겁게 일을 했다.

IMG_7572.JPG 객실 발코니에서 찍은 호텔 전경

매일 오전 8시 30분, ‘Room Attendant’ 부서의 모든 직원들이 사무실에 모여 스트레칭과 함께 아침 조회의 시작으로 하우스키핑 일과가 시작이 된다. 큰 모니터에는 그 날의 투숙률과 VIP 명단이 띄어져 있고 매니저는 그날의 이슈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유독 ‘Please’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 매니저의 말은 ‘제발 일 좀 똑바로 해줘’로 결론이 난다. 매일 빠짐없는 잔소리의 끝에 ‘그럼 오늘도 파이팅’이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직원들은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영역으로 흩어진다.


나는 라텍스 장갑을 한 움큼 양쪽 주머니에 잔뜩 쑤셔 넣고 걸레들을 비닐에 한 봉지 가득 담는다. 그러고는 각종 청소도구들과 비품들이 채워져 있는 트롤리와 청소기를 끌고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객실로 향한다.

개인 트롤리. 시즌이 시작되면서 늘어나는 직원수에 갈수록 트롤리 쟁탈전이 심해졌다. 깔끔하게 정리된 트롤리 찾기가 어렵다.

‘똑, 똑, 똑, 굿모닝, 하우스키핑~!’

“1시간 뒤에 와줄 수 있어?”


‘똑, 똑, 똑, 굿모닝, 하우스키핑~!’

“오늘은 괜찮아, 고마워”


첫 번째 방의 문을 두둘 기는 시간은 오전 9시 언저리쯤이다. 손님이 머물고 있는 객실을 청소하기에는 생각보다 이른 시간이다. 우리들이 현장에 나타나기 전에 ‘DND (방해하지 마시오)’ 카드를 걸어놓거나 미리 원하는 시간을 신청해 놓은 경우에는 다행히도 손님들과 마주할 상황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미쳐 미리 손을 써두지 못한 손님들은 이른 아침부터 두 눈을 다 뜨지 못한 채 우리들을 맞닥 들이는 봉변을 당하고 만다. 표정과 목소리에는 ‘뭐 이리 일찍부터 와’라는 불만 가득한 표현을 내비친다.


겨울 시즌이 한창일 때에는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산으로 향하는 손님들 덕분에 방이 비워져 있을 때도 많지만 대부분은 호텔 방에서 여유로운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러 번의 노크와 인사 소리에도 아무런 기척이 없어 방 문을 열고 들어가지만,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손님을 보고 조용히 뒷걸음치며 나오기도 한다. 업무 가능한 방을 찾기 위해서 온갖 짐을 끌고 방 문을 두들기고 다닌 것이 첫 임무인 셈이다. 언젠가부터 린넨실에 숨어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때우고 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IMG_8604.JPG 태블릿을 들고 다니며 나에게 주어진 방들의 임무를 수행한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7~8개의 방이 나에게 할당된다. 객실 크기에 따라 임무수행 완료 시간이 주어진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주어지지만 일을 하다 보면 객실의 크기는 시간과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리 화장실이 하나 더 있는 방이라 할지라도 완전무결한 상태일 때에는 더 빨리 끝낼 수가 있다. 반면에 가장 짧은 시간이 주어지는 방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나오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매니저의 계속되는 호출과 때로는 기꺼이 직접 방으로 찾아와 괴롭힘을 시전 한다. 객실의 상태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열변을 토해보지만 전혀 통하지 않는다. 머리카락 한가닥과 먼지 한 톨도 포용하지 않지만 상사들은 청결도 보다는 아주 빨리 끝내는 것을 더 선호하는 듯했다. 촉박한 시간에 미쳐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들이 손님들에게 발각이 되면 그제야 시간에 상관없이 결벽에 가까운 청결함을 보여주고 오라는 너그러운 마음을 베푼다. 뭐 결론은 빨리 완벽하게 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다. 그만큼 짧은 시간 내에 완벽한 임무 완수를 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일을 시작하고 처음 3일 동안 트레이닝 기간을 가졌다. 슈퍼바이저의 뒤를 따라다니며 보고 따라 하며 배운다.


발코니 문 열어 환기시키기 - 곳곳에 있는 쓰레기 처리하기 - 침대 만들기 - 화장실 (세면대, 샤워실, 욕조, 변기) - 커피 바 - 비품 채우기 - 청소기 돌기기 - 먼지 제거 - 탈취제 뿌리며 퇴장


호텔에서 정한 매뉴얼이 있지만 어떤 슈퍼바이저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일의 순서와 방법이 달라진다.


‘너 트레이너가 누구야?’

‘클라ㅇ ㅜ…ㄷ…’


이름을 채 다 말하기도 전에 다른 직원들은 ‘굿 럭’이라는 말이라던가 ‘오 마이 갓’ 하며 사라지는 반응을 보였다. ‘트레이닝 기간에 일을 때려치울 수 있겠다’라는 느낌이 들게 해주는 반응들이었다. 다행히도 일을 때려치우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다른 직원들이 심어준 선입견과 다르게 나의 트레이너인 ‘클라우디아’는 하우스키핑 일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열정 넘치는 슈퍼바이저였다. 호텔 홍보 영상에도 나오는 전설적인 슈퍼바이저 클라우디아는 온 진심을 다해 나를 비롯해 다른 동료 3명을 포함한 미숙한 신참들을 데리고 다니며 ‘하우스키핑’에 대한 직업의식을 단단히 심어주었다. 다른 직원들이 클라우디아를 두려워했던 이유는 트레이닝이 다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일을 한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직원들은 모든 방이 손님에게 넘어가기 전에 슈퍼바이저의 검사가 있다. 그녀의 높은 심사 기준에 일을 하다 말고 호출당하는 일이 일쑤였다. 객실을 기어 다니며 기어코 머리카락과 먼지를 찾아내고 마는 그녀의 집착과 열정에 우리는 두 손 두 발을 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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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청소의 꽃 = 침대 만들기

객실 청소는 크게 침대와 화장실로 나뉜다. 객실 내에 손님이 있을 경우에는 화장실로 먼저 직행하지만 없을 경우에는 자신이 선호하는 곳을 우선으로 한다. 변기를 닦아야 하는 화장실보다는 침대 시트를 바꿔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침대는 하우스키퍼들을 가장 많이 괴롭히는 존재이다. 나 역시도 침대 때문에 괴로워했었다. 30분이 넘도록 침대 하나 완성하지 못하는 나는 자괴감에 빠지는 일이 많았다. 매트리스, 이불, 배게 모두 포함 9개의 커버들을 작은 먼지 한 톨과 주름 하나 없이 각을 잡아 만드는 것은 꽤나 어려웠다. 매트리스 사이에 리넨을 끼워 넣다가 손 등이 까지기 십상이었다. 오랜 시간 걸려 완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발견된 마모된 흔적이나 오염된 부분이 발견되었을 경우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침대는 여러 방면으로 나를 괴롭혔다. 침대 때문에 울상인 나의 모습에 선배 동료들은 팁을 전수해주고 사라지기도 했다. 다행히도 수 십 개의 침대를 만들고 나서 나만의 방법을 터득했고 1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침대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가장 저렴한 객실은 1박에 50만 원, 가장 비싼 게는 500만 원까지 올라가는 이 호텔에서는 객실의 크기와 형태가 아주 다양하다. 애초에 각기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는 방들의 구조를 알고 객실로 들어간다면 호텔 직원으로서 방황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일단 객실부터 배정하고 보는 하우스키핑 사무직 직원들 덕분에 객실 방문을 열고 식은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나오기도 했다. 들어가 보지 못한 객실로 들어갔을 때 나는 길 잃은 강아지처럼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며 객실을 배회할 뿐이었다.

IMG_6923 2.JPG 주방이 있는 객실은 해야 할 일이 배로 늘어난다. 처음에는 식기세척기 사용법을 모르고 열심히 직접 설거지까지 하고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간 객실 안에 나타난 또 다른 계단, 객실 하나에 끊임없이 나타는 또 다른 방들, 직접 조리가 가능한 부엌이 딸려있는 객실, 발코니에 미니 수영장이 있는 객실, 미로처럼 되어있는 구조로 한 번에 빠져나오지 못한 방, 등등 아주 다양했다. 모든 객실에 들어가 본 동료직원들은 거의 손에 꼽힐 정도였다. 운이 좋게도 나는 대부분의 객실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각기 다른 형태의 객실을 청소해야 하는 일은 고되었었지만 새로운 인테리어와 럭셔리한 객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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