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다. 사람 마음은 간사하다. 자신에게 피해를 준다 싶으면 쌍심지를 켜고 간섭하다 정작 그것이 없으면 허전하다. 바로 몇 달 동안 우리 집을 자기 집처럼 여기며 산 비둘기 이야기다.
비둘기가 아파트 베란다에 자기의 거처를 마련한다는 이야기는 익숙한 이야기다. 근데 그게 내 일이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새로운 이야기다 되는 것이다.
봄에 비둘기가 우리 집 근처 나무에서 기웃거렸다.
첨에는 별일이 아닌 줄 알았다. 한데 어느 날 나뭇가지를 물고 날아든 비둘기를 목격했다.
아차! 싶었다. 그 길로 비둘기를 쫓아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주후 비둘기 새끼의 울음소리를 들었고 비둘기 새끼의 모습을 목격했다.
막대를 들고 쫓아내려 하였으나 새끼 비둘기는 아직 날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측은한 면도 있어 새끼가 독립할 때까지 두고 보기로 했다.
어미 비둘기는 아침, 저녁으로 날아들어 새끼를 돌보았다.
늘 출근길과 퇴근길에 마주쳤고 공동현관을 들어설 때는 우리 집 베란다를 보게 되었다. 어떨 때는 내려다보는 어미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어느 날 새끼 비둘기와 어미 비둘기가 보이지 않았다.
됐다 싶었는데 웬걸, 이들은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다시 왔다.
안 되겠다 싶어 베란다 문을 열어 비둘기를 쫓아냈다. 가만히 두면 비둘기는 그곳을 자신의 아지트로 삼는다고 했다. 할 수 없었다. 영원히 비둘기 집으로 우리 집이 선택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몇 번 쫓아냈더니 이들은 위층에 둥지를 텄다.
창문 밖으로 내다보는 나의 눈과 내려다보는 비둘기 눈이 마주쳤다.
웃음이 나왔다.
위층을 걱정했다.
그런데 위층 사람들은 비둘기 둥지에 대해 관대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뭔가 부산하더니 어느 날부터 비둘기가 보이지 않았다.
비둘기 똥이 공용현관을 더럽히는 일도 없게 되었다.
그런데 좀 섭섭한 느낌도 있었다.
물론 비둘기 똥 치우는 것도 그리 유쾌한 감정은 아니었지만 우리 집에서 태어난 비둘기가 잘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있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감정을 이야기하니 아내는 빈 둥지 증후군이라 했다. 사람한테 느끼는 감정을 비둘기에게 느끼게 될 줄 몰랐다. 희한하다. 인간의 마음이란 그런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