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in 1993.03.21
시간의 흐름이 이상하다고 눈치챈 것은 내 나이 10살 때였다. 당시 나는 독일에 살고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에 사는 한국인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그때마다 우리는 내 방의 침대와 유리창 사이 약 가로 2미터, 세로 50센티미터 정도의 좁은 공간에서 인형놀이를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엄마들이 커피를 마시며 밀린 회포를 풀기까지 딱 한 시간 반. 그 한 시간 반이 정말이지 유난히도 빠르게 흘렀다. 이제 막 방금 인형들을 꺼내서 기가 막히게 재밌을 오늘의 놀이를 세팅해놓고, 그 전개과정이 절정을 향해갈 시점에,
“희수야~ 아줌마 가신대~”
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면 신경질적으로 시계를 쳐다보게 되는 것이다. 말도 안 돼. 5분 정도밖에 흐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는데, 시침은 늘 정확히 한 시간 반이 지나간 시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사태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찾은 방법은 시계를 보는 횟수를 컨트롤해서 시간의 흐름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인형놀이를 할 때에는 10분에 한 번씩 시계를 쳐다볼 것>이라는 나만의 그라운드 룰이 생겼다. 끝내주게 재밌는 인형놀이를 하면서도 나는 늘 초조하게 시계를 보았다. 때로는 너무 집중한 나머지 시계를 보는 것을 까먹었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시곗바늘은 내가 안 보는 틈을 타서 쏜살같이 달려가 있었다.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늘 아쉬웠고, 그런 순간들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게 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두 번째로 시간의 이상한 흐름을 눈치챈 것은 중학생 때였다. 어른들은 늘 연말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 그렇지 않니? 1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어!”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늘 나의 지난 1년은 꽤나 알차고 계획대로 흘렀으며, 나는 그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조목조목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더라도 “1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어!“라고 말을 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늘 다짐했다. 그리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왜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첫 번째 가설은 다음과 같다. 나이가 들수록 1년이 짧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1년의 길이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n 년의 시간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즉, 열 살이 느끼는 1년의 길이는 자신의 인생의 10분의 1이라면, 서른 살이 느끼는 1년의 길이는 30분의 1이고 여든 살에게는 80분의 1인 것이다. 이렇게 1년의 길이가 n분의 1(n=나이)로 각자 개개인이 느끼는 자신의 나이에 반비례한 상대적 개념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1년이 짧게 지나갔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이 가설이 맞다면 나이가 들수록 불가항력적으로 1년의 길이가 짧아지게 된다.
두 번째 가설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연말에 1년간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본다. 이때 마치 스마트폰 속 앨범을 보는 것처럼 추억들을 떠올리는데, 문제는 그 앨범이 구글 포토 앱이라는 사실이다. 1년간 반복적으로 일어난 일상들, 예를 들어 매일같이 출퇴근해서 9시간을 버티고 앉아있었던 사무실에서의 시간들은 비슷한 사진으로 간주되어서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되어 버린다. 반면에 새로운 경험이거나 특별했던 이벤트는 마치 많이 찍은 추억이자 사진처럼 앨범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많다.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경험을 할 확률은 줄어들고,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될 비슷비슷한 일상적 경험들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구글 포토 앱처럼 1년을 되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장면이 점점 줄어들며 외치게 되는 것이다.
“와, 미친 거 아냐?
1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어!”
그렇다. 방금 저 말은 서른을 코앞에 둔 이희수가 외친 말이다. 올 한 해가 어떻게 갔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렇게 내가 가장 되기 싫었던 그 어른의 모습이 나였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올 한 해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장면이 몇 없다. 재택근무가 많았던 탓에 내 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이제는 익숙하게 3일간 꼬박 집 안에서만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은 0에 수렴했고, 그렇기 때문에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관점에 자극을 받을 일도 없었다. 일기장에는 수도 없이 '아무런 생각이 없다. 아무런 감각이 없다.'라는 내용만 적었으며, 그마저도 나중엔 적지 않게 되었다.
익숙하게 유튜브에 들어갔고, 추천해주는 영상을 보면서 재미없어했다. 넷플릭스에 들어가서는 10분도 채 보지 않은 채 영화를 끄고 다른 영화를 고르기 일쑤였다. 나의 몸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했지만, 편안하게 늘어난 몸의 길이와 다르게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짧게 흘렀다. 아무런 생각 없이 흘려보내서 짧게 흩어지는 날들은 지나가고 나면 온통 부스러기 같았다. 이 날이 그날인지, 저 날이 이날인지, 구분이 되지도 않았다.
그렇게 올해의 나는 10분에 한 번씩 시계를 보며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으려 노력하지도 않았고, 나의 머릿속 구글 포토 앱에 새로운 이벤트의 사진을 최대로 늘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한 켠의 마음에서는,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은 욕심이 옛날보다 줄어들었다. 어릴 적에 시간을 더욱 알차게 낭비 없이 꽉꽉 채워서 쓰고 싶었던 것에 비해, 이제는 그저 그 흐름에 맞춰 살아가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여전히 시간에 지지 않기를 바란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었던 그 마음이 사라지지 않길 바란다. 시간의 흐름에 탑승해서 그에 맞춰 둥둥 떠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나의 흐름에 맞춰 시간을 활용할 수 있기를 여전히 바란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주인공 팀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부디 스포가 아니길 바라며 말하자면, 주인공은 점점 더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게 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지금 스쳐 지나가는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팀과 같이 시간에 대한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바라건대 30대에는 시간이 짧아져야 할 때와 길어져야 할 때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그렇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얻고 싶다. 가끔 어떤 시간은 마음 편히 빠르게 흘려보내고, 또 어떤 중요한 시간은 그 순간을 영원처럼 늘려버릴 수 있길. 그것이 올해 노로바이러스로 삭제되어버린 나의 크리스마스날, 산타할아버지가 몰래 나의 위장에 심어주신 능력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2021년 12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달간의 시간은 나에게 체감상 올 한 해 같았다.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을 늘 놓치지 않아야 했고, 매일같이 22명의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엿가락처럼 잔뜩 늘렸던 한 달은 나의 머릿속 구글포토 앱에 많은 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그만큼 아주 오래도록 간직될 것 같다. 이 자리를 빌어, 21명의 서른이들과 매 편 열일해준 4개의 돌멩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30±1 THE END
[어바웃 타임]
written by LEE HEESU
@urheesulee
이희수, born in 1993/03/21